편집자 주(註)= 상사에게 치이고 후배에게 쫓기며 동분서주하는 직장인. 야근은 좀처럼 줄지 않는데 지갑은 날로 얄팍해진다. 가족 앞에서도 어깨에 각이 잡히지 않고 왜소해져가는 이들은 무엇을 위해 회사에 다니고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살아갈까? 직장인에 대한 각종 설문조사를 토대로 이들의 속을 들여다본다.
◇직장인 88% "나는 갑 아닌 을"
우리나라는 대다수 직장인이 자신을 힘없는 존재로 여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직업능력개발원(직능원)이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한국의 직업, 한국인의 직업의식' 세미나에서 나온 내용이다. 직능원은 이 연구를 1998년부터 4년마다 수행했으며, 2018년에는 1천500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88.1%는 자신을 '갑'이 아닌 '을'로 인식했다. 이런 경향은 학력이나 고용 형태와 그다지 관련이 없는 대신, 고령층(60세 이상 78%)보다 젊은 층(30세 미만 98.8%), 남성(86.2%)보다 여성(90.7%), 비임금 노동자(54%)보다 임금 노동자(93.5%)에게서 뚜렷했다.
이는 연령에 따라 수직관계가 형성된 직장이 많고, 결혼·출산 등으로 승진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많으며, 매달 정해진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대부분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지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는 가족이 줄곧 1위에 올랐다. 주목할 점은 여가의 중요성이 꾸준히 늘고, 일이나 학업, 능력개발, 종교생활 등의 비중은 꾸준히 감소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 대해서는 28.7%만 공정하다고 답했다. 이는 직업의식에도 영향을 미쳐 "성실히 일하면 인정받는다"는 생각이 약화되고, "승진하려면 능력보다 연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화된 것도 시사점이 크다.
직업을 갖는 이유도 내재적 가치보다 외재적 동기가 중요해졌다. 1998년에는 노후 대책, 사회적 지위 확보, 인정 등의 외재적 동기가 각각 3, 9, 10위였으나 2018년에는 2, 5, 8위로 높아졌다. 내재적 동기인 '일 자체가 좋아서'는 7위에서 10위로 떨어졌고,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비율도 2014년 40.6%에서 2018년 33%로 급감했다.
직능원 측은 "초등학교 때부터 직업윤리와 진로체험 교육이 강화돼야 하며, 기업들은 직원의 직무수행 태도 향상을 위해 성과급, 포상, 복지 등 필요한 제도와 정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2년 차 미만 직장인 61% "나는 취반생"
취업난이 심화됐지만 힘들게 입사한 새내기 직장인 중에는 회사에 다니면서 다시 취업을 준비하는 '취반생'(취업반수생)이 적지 않아 보인다.
취업 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44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년 차 미만의 신입사원(141명) 10명 중 6명(61%)은 "다시 취업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이들이 취반생을 택한 이유(복수응답)는 더 나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72.1%)다. 그 다음은 근무환경이 열악해서(33.7%), 기대했던 업무와 실제가 달라서(29.1%), 연봉이 적어서(27.9%), 급하게 취업해서(19.8%) 등이다.
이들이 취반생으로 생활한 기간은 평균 4개월이며, 이때 힘든 점으로는 직장생활과 병행하느라 부족한 취업 준비 시간(52.3%), 직무에 대한 불확신(16.3%), 절박함 부족(12.8%) 등이 꼽혔다.
그러나 전체 응답자의 77.3%는 취반생이나 '돌취생'(퇴사 후 취업준비생으로 돌아온 사람)을 긍정적으로 여겼다.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지면서 직무 적합성이 더 중요해지고, 이직도 활발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취반생이나 돌취생으로 이직하는 게 신입 입사보다 쉽기 때문(53.7%)이란 시각도 많다.
그러나 전체 응답자의 51.9%는 '이직에 성공하면 삶의 만족도가 달라질까'란 질문에 "비슷할 것"이라고 답했다. "좀 더 만족스러울 것"이란 응답은 43.3%로 절반이 안 된다.
◇직장인 5명 중 4명 "나는 감정노동자"
감정노동이란 자신의 감정과 무관한 직무 수행을 가리킨다.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일이 대표적인 감정노동이다. 그러나 일반 직장인들도 5명 중 4명꼴로 자신을 감정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있어 주목된다.
취업 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62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7%가 현재 직장에서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대답은 서비스(87.7%), 구매·자재(82.8%), 광고·홍보(81.8%), 인사·총무(78.4%) 등 대면 업무가 많은 분야일수록 많았다.
응답자들은 "화가 나거나 서운해도 이를 숨겨야 할 때(66.1%) 감정노동을 체감하며, 상대의 기분에 맞춰줄 때(64.8%), 항상 친절해야 할 때(40.1%), 폭언에도 대응하지 못할 때(30.7%)도 감정노동에 시달린다고 답했다(복수응답).
감정노동을 가끔 겪는다는 응답은 23.1%이고, "자주 겪는다"(38.4%)와 "늘 겪는다"(38.4%)가 공동 1위에 올랐다. 감정노동의 상대는(복수응답) 상사(75.5%)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고객(35.2%), 동료(27.8%), 협력업체(25.2%), 경영진(23.1%)일 때도 적지 않다.
이들은 감정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복수응답) 이직·퇴사 준비(65.8%), 대화 등 관계 회복 시도(18.2%), 병원·기관의 도움(10.7%), 직무·부서 변경(9.4%)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답했다.
하지만 감정노동을 개인의 노력만으로 개선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기업이 앞장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건전한 직장문화 만들기에 노력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강윤경 기자 bookwor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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