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보호자에서 죽음의 원흉으로 돌변한 유전형질

입력 2019-01-22 09:31  

생명의 보호자에서 죽음의 원흉으로 돌변한 유전형질
리 골드먼 '진화의 배신', 현대병 비밀과 해결책 살펴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20만 년 전에 출현했다. 그리고 약 4만 년 전부터는 유일한 호모 종이 돼 지구를 정복하고 찬란한 문명을 건설했다.
지구상에 산 생물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비율은 고작 0.2%에 지나지 않는다. 500종 가운데 1종만이 적자생존한 것이다.
우리 인간이 포식자, 환경 재난, 전염병 등 온갖 재앙 속에서 이 같은 극한의 확률을 뚫고 오늘날의 번영을 누리게 된 비결은 뭘까?
여기에 피할 수 없는 역설이 숙명처럼 웅크리고 있다. 인류 생존의 비결들이 현대에 들어와 죽음의 원흉으로 돌변해버린 것. 이른바 현대병은 그 산물이다. 이 현대병의 구렁에서 탈출해 우리 몸이 다시 환경과 조화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심장병 전문의인 미국의 리 골드먼은 저서 '진화의 배신'을 통해 역사와 진화라는 거대 맥락에서 유익한 유전자들이 어떻게 자연 선택되고 작동해왔는지 흥미진진하게 설명해준다.
그러면서 현대병인 비만, 당뇨병, 고혈압, 불안, 우울증, 심장 질환과 뇌졸중이 생겨난 배경을 명쾌하게 입증해 보인다. 나아가 유전자가 급속히 진행되는 세상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지구상에 첫발을 디뎠을 때부터 인류를 위협한 가장 큰 문제로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을 꼽는다. 이 같은 절체절명의 위험을 극복해 목숨을 보존하고 유전자를 계승키 위해 우리 인간의 유전자들은 그 나름의 방어 체계를 구축해왔다.
그 극복의 일등 공신이 인간 특유의 거대한 뇌, 즉 뛰어난 지능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뇌를 넘어 더 근원적인 요인에 주목한다. 유전형질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생존은 언제나 우리 몸에 달려 있었다. 우리 몸이 힘든 환경, 적대적인 환경을 버텨낼 만큼 강하지 않았다면 뇌의 힘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저자가 살핀 인류 진화의 비결과 역설, 그리고 극복방안을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굶주림'이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에 우리 조상들은 언제나 아사의 위협에 직면해야 했다. 굶주림은 개인뿐 아니라 생물 종 전체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초기 인류는 음식이 생길 때마다 배불리 먹는 것으로 굶주림에 대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식욕과 열량 축적의 본능은 현대에 들어 비만과 당뇨병, 심장 질환, 암 발병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책 제목인 '진화의 배신'이 곧바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굶주림과 아사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던 과식 본능이 이제는 질병과 죽음이라는 직격탄을 날리는 원흉이 돼버렸다.
'탈수'를 피하는 것도 생존에 매우 중요했다. 작고 약한 인간은 사냥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 뒤를 쫓아야 했는데, 이때마다 치명적인 탈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우리 유전자는 소금이 필요치 않을 때도 입맛과 생존을 위한 과잉보호 본능 때문에 짠 음식을 먹고 싶게 하는 강력한 탈수 방어 기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현대인은 몸의 움직임이 조상보다 크게 뒤지면서도 소금은 필요량보다 많이 소비함으로써 심장 질환, 뇌졸중, 신장 질환 등에 시달린다. 우리 유전자는 소금이 필요치 않을 때조차 입맛과 생존에 대한 과잉보호 본능대로 짠 음식을 먹고 싶게 하는 강력한 탈수 방어 기제를 여전히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폭력' 또한 우리 조상들로선 생존과 유전자 번식에 필수였다. 지난 1만 세대 동안 인류는 살해되지 않으려면 살해해야 했으며, 싸울 힘이 없을 때는 도망을 치거나 순종적인 태도를 취해야 했다. 살인자가 희생자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확률이 더 높다는 건 냉정한 현실이었다.
세상은 점점 안전해지고 폭력 사태도 줄어들었으나 폭력과 그 두려움에 대한 본능은 속 깊이 남아 있다. 지나치게 조심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성향이 불안증,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물론 심지어 자살까지 초래하는 것. 실제로 살인이나 짐승의 공격보다 자살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훨씬 많다.
'출혈' 역시 전에 없던 현상을 낳고 있다. 원시 지구를 누비던 선사 시대인들에게 부상과 출혈은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출산의 출혈은 생사에 심대한 문제였다. 초기 인류로서는 신속한 응고가 생사를 좌우하다시피 했다. 따라서 출혈 상황에 대한 응고 대처는 실로 중요했다.
하지만 반창고 발명과 각종 수혈 기술이 발달하면서 상황은 정반대가 돼버렸다. 과다 출혈로 목숨을 잃을 확률보다 혈액 응고로 사망할 확률이 더 커진 것. 대부분의 심장 마비와 뇌졸중은 심장과 뇌의 동맥을 따라 흐르는 피를 혈전이 막아서 생기는 증상들이다.
요컨대 지난 20만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율을 높이고 문화를 번창케 했던 이들 네 가지 유전형질이 현대에 들어서는 우리 목숨을 위협하고 앗아가는 주범으로 전락해버렸다. 유전자가 현대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생긴 현상들이다.




2030년에 이르면 고소득 국가의 평균 수명은 여성 85세, 남성 80세로 높아질 전망이지만, 주요 현대병은 한층 더 위세를 떨치며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난제를 해결키 위해 저자는 의지력에서부터 최첨단 기술까지 다양한 각도의 해법을 살피고 그 대안과 가능성을 모색한다.
먼저 과잉보호 형질을 확산시키는 유전자가 문제라면 원인이 되는 그 유전자를 없애면 될 것 같다. 새로운 돌연변이 유전자로 그것을 상쇄하는 방법도 있겠고, 몸 자체에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의지력(정신력)으로 우리 행동을 변화시키는 길 또한 있겠다. 다이어트, 운동, 심리 치료 등 다양한 방법 역시 시도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저자는 그 한계를 인정한다.
그래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가 현대 과학과 의학, 즉 약과 수술이란다. 특히 정밀 의학 시대의 도래에서 긍정적 전망을 엿보는 저자는 현대 생물학과 의학의 발달로 각 개인에게 최적화한 치료법을 선택해 적용할 수 있고, 태어나기 전부터 건강을 관리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이같이 낙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목표는 약에 취한 좀비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와 있거나 개발될 치료법을 신중하게 활용해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건강한 삶을 도모하는 것이다. 인류가 가진 뛰어난 뇌를 십분 활용해 타고난 체질과 시대의 요구를 일치시켜야 한다. 20만 년에 걸쳐 살아남은 인류가 성공적으로 헤쳐온 모든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다."
부키 펴냄. 560쪽. 2만2천원.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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