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 첫 내한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음악과 예술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조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훌륭한 스승입니다."
콘서트가 끝난 뒤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은 조이스 디도나토는 차분하면서도 간곡한 음성으로 자신의 노래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를 전했다. 2017년 바르셀로나 공연 후 연설처럼 울음과 흥분이 섞인 톤은 아니었지만, 진심이 담겨 설득력 있는 연설이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메조소프라노 디도나토는 안나 네트렙코 같은 대중적인 스타는 아니다. 그러나 오페라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 이후 탁월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첫손 꼽히곤 한다. 클래식 팬 모두가 기다려온 첫 내한 공연이었으나 예상대로 21일 롯데콘서트홀 객석엔 빈자리가 많았다. 아직 국내 인지도는 공연이 매진될 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로시니와 마스네의 '신데렐라' 타이틀 롤, 벨리니의 로미오 역 등의 바지역(여성가수가 부르는 남성배역)으로 유명한 디도나토가 자신의 대중성 있는 인기곡들인 벨칸토 오페라 아리아가 아니라 헨델, 퍼셀 등의 바로크 오페라 아리아로 콘서트 프로그램을 꾸몄다는 것도 관객들의 공연장 행을 망설이게 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콘서트홀을 찾은 관객들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롯데콘서트홀 '그레이트 클래식 시리즈'의 2019년 첫 공연으로 기획된 이번 독창회에는 '전쟁과 평화(In War & Peace)'라는 부제가 붙어있었다. 공연 시작 전 디도나토는 잿빛 드레스와 독특한 셀프메이크업을 갖추고 마치 전쟁의 폐허 속에 앉아 있는 여전사처럼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맞이했다.

노랫말의 의미에 예민하고 민첩하게 반응하는 디도나토의 남다른 표현력과 음색은 완벽에 가까운 그의 콜로라투라(화려한 기교와 고음) 테크닉과 함께 이번 공연에서도 찬란하게 빛났다. 트로이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안드로마케의 피맺힌 절규, 목숨보다 사랑했던 연인을 떠나보내는 디도 여왕의 탄식, 아그리피나의 분노의 아리아에서 디도나토의 파워와 유연한 레가토는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관객을 몰입시켰다.
그 모든 전쟁과 분규와 폭력의 상처들을 디도나토는 헨델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에서 고요히 내려놓는다. 템포를 특별히 느리게 잡은 이 아리아는 텍스트의 의미 면에서 1부를 마무리하는 데 가장 적절한 곡이었다.
2부는 더욱 다채롭고 흥미로웠다. 평화를 상징하는 밝은 의상과 메이크업으로 등장한 디도나토는 1부의 어둠을 떨쳐버리고 맑고 순정한 음색으로 목소리의 불꽃놀이를 펼쳤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수잔나'와 오페라 '아리오단테'의 아리아가 특히 돋보였고, '리날도'의 알미레나가 목관악기 독주자와 기교를 다해 멜로디를 주고받는 부분도 관객을 매혹했다.
서른한 살의 젊은 러시아 지휘자 막심 에멜랴니체프가 이끄는 일 포모도로 앙상블은 당대 악기로 들려줄 수 있는 효과적인 음악적 해석의 전범을 보여줬다. 열정과 섬세함을 갖춘 젊은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바로크 음악의 활력을 더욱 생생하게 살려냈고, 제수알도와 아르보 패르트의 곡에서는 고요 속에서 깊은 에너지를 끌어내는 '정중동'의 매력을 드높였다.
데이비드 맥비커 등 유명 오페라 연출가들과 여러 작업을 함께 해온 아르헨티나 댄서 마누엘 팔라초는 이번 공연에서 '창조'를 상징하는 존재로 등장해 무대에서 연기와 춤을 보여줬다. 전쟁이 초래하는 가공할 파괴에 맞서 예술적 에너지로 생명을 창조하는 힘을 펼쳐 보인 것이다.
소용돌이와 혼돈의 이미지로 전쟁을, 흩날리는 꽃잎과 불꽃놀이로 평화를 표현한 영상과 조명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다만 무대 뒤와 옆에 객석이 있는 롯데콘서트홀의 빈 야드 구조 때문에 그 효과를 다른 도시의 공연장에서만큼 거둘 수 없었던 것은 아쉬운 점이다.

2015년 11월 파리 연쇄 테러 사건으로 인한 경악과 절망감, 그리고 2016년 미국 대선 결과의 참담함. 그 때문에 디도나토는 예술을 통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고, 그로부터 비롯된 이 공연을 전 세계 투어로 선보이며 우리에게 묻는다. "어떻게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관객에게 이 간절한 질문에 대한 답과 함께 예술가의 책무를 새삼 생각해보게 하는 공연이었다. 앙코르로 부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 '내일(Morgen)'은 잔잔한 희망과 기대로 이 콘서트를 마무리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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