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택명 펄벅재단 상임이사 "모든 인류가 혼혈 될 것"

입력 2019-01-24 07:57   수정 2019-03-23 21:05

[인터뷰] 권택명 펄벅재단 상임이사 "모든 인류가 혼혈 될 것"
"펄 벅 여사는 한국의 은인…기념사업, 한미·한중 우호에 기여"
15년째 공익재단 근무…"어릴 적부터 다문화와 어울리도록 해야"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펄 벅(1892∼1973) 여사는 문학과 사회사업 두 분야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미국과 중국에 40년씩 살고 한국을 8차례나 방문한 이분의 업적을 기리는 일은 세 나라의 우호 관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여사와의 인연을 매개로 우리나라와 G2를 엮고, 나아가 동남아까지 공감대를 넓힐 수 있죠."
23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길주로의 한국펄벅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한국펄벅재단의 권택명(69) 상임이사는 "나도 펄 벅 여사가 소설 '대지'로 1938년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 말고는 잘 모르고 있다가 재단에 몸담고 나서야 그가 위대한 인권운동가이자 사회사업가이고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펄 벅은 한국인의 고운 심성과 높은 자긍심에 탄복해 '살아 있는 갈대'(1963년) 등 한국을 배경으로 한 3편의 소설을 남겼고, 1967년 부천에 소사희망원을 세워 혼혈 고아들을 돌봤다. 중국에 살던 시절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가 하면 미국 케네디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펄 벅 여사는 1949년 입양기관 '웰컴 하우스'(Welcome House)를 만든 데 이어 1964년 미국에 펄벅재단을 설립했다. 이듬해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 오키나와·대만·필리핀·태국·베트남에 펄벅재단 지부를 두었다. 펄벅재단 한국지부는 2007년 사회복지법인 한국펄벅재단으로 재출범했다.

"처음에는 펄 벅 여사가 아메라시안(Amerasian)이라고 이름 지은 한국·미국 혼혈인을 주로 도왔습니다. 1975년 문을 닫을 때까지 2천여 명이 소사희망원을 거쳐서 갔고 혼혈 가수 정동권 씨가 이곳 출신입니다. 2006년에는 한국계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가 방한해 아메라시안을 후원했는데, 지금 여고생 패션모델로 활약하는 배유진 양도 도움을 받았죠. 한국 남성과 아시아 출신 여성의 국제결혼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1999년부터는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 자녀로 지원 대상을 확대했습니다."
한국펄벅재단의 사업 영역은 영어 'HELP'(돕다)의 머리글자를 딴 Health(건강·의료·보건), Education(교육·장학), Livelihood(생계·생활), Psycho-social(심리·정서) 4분야로 나뉜다.
지난해 10년을 맞은 어머니 나라 방문 프로그램 'Motherland Tour', 다문화 청소년과 문화유적을 답사하는 'Go(古) Together 역사교실', 다문화가정 청소년 성장캠프 'Future Dream', 결혼이민여성 미래성장동력 발굴프로젝트 'Core People-Future Dream', 펄벅 청소년공부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는 국내 정착 기간의 장기화에 따라 높아진 결혼이주여성들의 사회참여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이혼·사별과 재혼 등으로 발생하는 한부모가정이나 중도입국 자녀들을 보듬는 프로그램에 중점을 둘 생각입니다. 여건이 된다면 출신국별 공동체 형성을 통해 다양한 자조모임을 육성하고 싶습니다. 펄벅재단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국제연대 사업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한국펄벅재단은 부천시·부천펄벅기념관·한국펄벅연구회 등과 함께 펄 벅 여사 기념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부천시 심곡본동에서는 2006년부터 펄벅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펄벅기념문학상과 펄벅사회봉사상도 운영된다. 지난해 11월 처음 열린 펄벅학술 국제심포지엄에서는 권 이사가 '펄 벅과 부천의 비전'이란 주제로 기조발표에 나서기도 했다.

권택명 이사는 옥산서원이 있는 경주시(옛 월성군) 안강읍 옥산리 출신으로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대구상고 야간부를 졸업하고 1969년 1월 외환은행에 입사했다. 대학과 대학원(영남대 경영학과) 과정도 회사에 다니며 주경야독으로 마쳤다. 사무혁신팀장과 부평지점장 등을 거쳐 서울 강남영업본부장을 맡았다.
"2005년 외환은행나눔재단(현 하나금융나눔재단)이 설립될 때 운영 책임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사회공헌활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고, 국내 은행 가운데서도 그 정도로 큰 규모의 공익재단을 만든 것은 처음이어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죠. 취임 초기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재단과 록펠러재단 등을 방문해 자료를 얻고 조언을 들은 것이 큰 보탬이 됐습니다."
8년을 외환은행나눔재단 상근이사로 재직한 뒤 재단 비상근이사를 지낸 류진 한국펄벅재단 이사장(풍산그룹 회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2014년 12월 한국펄벅재단 비상임이사로 참여했다가 이듬해 12월부터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권택명 이사는 평생 돈을 만지고 숫자를 따지는 금융인으로 살아왔지만 5권의 시집과 17권의 일한·한일 번역시집을 낸 중견 시인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부터 시를 쓰며 한때 대구 지역 백일장에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1974년 시 전문지 '심상' 신인상을 받아 데뷔했고 한국시인협회 사무차장·사무국장·교류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문학과 사회사업을 겸한 펄 벅 여사와 닮은 점이 있다고 하자 "어떻게 감히 비교할 수 있겠느냐"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문인이자 사회사업가인 그분의 인생 궤적을 보고 공감대를 느끼며 조금이라도 닮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나 사회사업의 영역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며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죠. 문학은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제시해 정신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육체와 정신으로 이뤄져 있으니 동질성이 있는 셈이죠."
그는 올해 우리 나이로 칠순이 됐고, 직장생활 만 50년을 맞았다. 처음 사회공헌 분야를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바라던 자리가 아니어서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오랫동안 봉사하며 살 수 있도록 해준 인연과 섭리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감명을 받은 사례나 보람을 느낀 순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누굴 돕는다기보다 그 일에 종사하며 제가 늘 배우며 살아온 거죠. 다만 안타까운 점은 펄 벅 여사가 한국에는 잊지 못할 은인이고, 펄벅재단이 반세기 넘도록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도 그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제가 더 노력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권 이사를 안타깝게 하는 것은 또 있다. 지난해 말 인천의 다문화가정 중학생이 추락사한 것처럼 아직도 이주민이나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이주민과의 접촉 빈도가 높을수록 다문화 수용도가 높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다문화가정 자녀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한편 어린이집에서부터 유치원과 초·중·고교에 이르기까지 다문화 인식 개선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펄 벅 여사는 '앞으로 500년 뒤면 모든 인류가 혼혈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죠.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은 역사적으로도 오류일뿐더러 지구촌 시대에도 맞지 않습니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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