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분장'에 들끓는 美…"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을 오락에 활용"

입력 2019-02-08 15:30   수정 2019-02-08 15:37

'흑인분장'에 들끓는 美…"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을 오락에 활용"
버지니아주 주지사·검찰총장이 촉발…구찌 등 패션업계로도 번져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최근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시작된 '흑인 분장'(Blackface) 사진 논란이 미국 사회의 가장 예민한 '인종차별', '백인 우월주의' 문제를 건드리며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버지니아주 주지사를 비롯한 일부 정계 인사들이 과거 흑인분장을 하고 찍은 사진이 공개돼 비난 세례를 받은 데 이어, 때마침 패션업체 구찌가 흑인분장을 연상시키는 의류를 내놨다가 뭇매를 맞는 등 논란이 전방위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흑인분장이 단순한 '오락'에 불과했다면서 인종차별적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말 그대로 분장일 뿐이며, 때로는 유행하는 '패션'과 같다는 해명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러나 7일(현지시간) 흑인분장의 역사와 문제점을 집중 조명한 기사에서 "흑인분장은 문제 있는 문화유산의 일부"라며 "180년 이상 (흑인에 대한)인종차별적인 고정관념이 오락에 활용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흑인분장은 1832년 토마스 다트머스 라이스가 뉴욕의 극장에서 악극 '점프 짐 크로우(Jump Jim Crow)'를 공연할 때부터 미국 대중문화의 일부가 됐다.
라 린 반스 프린스턴대 미국 문화사 교수는 NYT와 인터뷰에서 "민스트럴 쇼 등 백인 배우가 흑인분장을 한 공연은 남부에서 행복하고 멍청한 흑인 노예의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대중화시켰다"고 강조했다.
당시 백인 연기자들은 태운 코르크나 구두약으로 얼굴을 검게 칠하고 무대에 올랐다.
1986년 토머스 하웰은 영화 '소울 맨'에서 흑인으로 변장해 하버드 법대의 장학금을 받는 바람에 소동을 겪는 역할을 했고, 배우 지미 키멜은 2000년대 초반 '더 맨 쇼'라는 프로그램에 흑인 농구선수 칼 말론을 따라 한다고 흑인분장을 했다.
1905년 출간된 소설 '더 클랜스맨'은 흑인들이 백인 여성들이 겁탈하고, KKK(큐 클럭스 클랜·백인 우월주의 결사단)가 백인들을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영화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으로 만들어졌는데, 역시 백인 배우들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흑인으로 분장해 촬영했다.
이 영화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서도 상영됐다. 당시 윌슨 대통령은 영화 내용에 대해 "유감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이 모두 너무나도 사실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1852년 출간된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은 노예제 반대 내용을 담고 있으나 1853년 뉴욕에서 뮤지컬로 처음 공연될 때 모든 배우가 백인이었다.
흑인분장이 인기를 끌자 심지어 흑인 연기자들조차 그러한 고정관념이 반영된 흑인 이미지를 연기했다.
미국 대중문화에서 흑인분장은 지속해서 활용됐고, 최근에 와서는 여성들이 흑인처럼 보이게 화장하는 '블랙피싱'(blackfishing) 현상까지 나타났다.
패션업체 구찌도 최근 얼굴의 절반을 덮는 터틀넥 스웨터 신제품을 내놨다가 흑인분장 논란에 휘말리자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해당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프라다 역시 지난해 말 비슷한 파동을 겪었다.




정치인과 연예인 등 저명인사들이 흑인분장과 관련해 역풍을 맞은 사례도 종종 있었다.
CNN에 따르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의회 의원 후보 브랜트 톰린소는 핼러윈 파티에서 자메이카 봅슬레이선수처럼 분장했고,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후보 할 패튼은 흑인 축구선수처럼 분장한 적이 있다.
스페인 축구선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는 흑인분장을 한 두 명과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프랑스 축구선수 앙투안 그리즈만은 1980년대 테마 파티에서 흑인분장을 했다가 비판받았다.
이번 논란의 진원지인 버지니아에서는 주지사와 검찰총장이 모두 사퇴 압력에 직면한 상태다.
이달 1일 랠프 노덤 버지니아 주지사가 졸업한 이스턴 버지니아 의대의 1984년 졸업앨범에서 그의 이름과 인물 사진이 나오는 페이지에 KKK 복장을 한 사람과 흑인으로 분장한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파티 장면이 담긴 사진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곧이어 버지니아주 마크 허링 검찰총장은 1980년대에 흑인분장을 하고 파티에 참석한 사진이, 버지니아주 상원의 토머스 노먼트 공화당 원내대표는 버지니아 군사학교 재학 시절 편집자를 맡아 발간한 졸업앨범에 인종차별적 사진이 실렸다는 사실이 공개돼 논란에 휩싸였다.
구찌, '흑인 비하' 스웨터 논란…"깊이 사과" / 연합뉴스 (Yonhapnews)

noano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