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그곳] '로마'가 아니라 '콜로니아 로마'다

입력 2019-03-13 08:01  

[영화 속 그곳] '로마'가 아니라 '콜로니아 로마'다

(서울=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거리에는 부러진 투창이 누워 있고/ 머리칼은 여기저기 어지럽구나./ 지붕이 날아간 집/ 담이 붉어졌다네/ 거리와 광장을 쏘다니는 벌레들/ 골수가 튄 벽./ 물감을 푼 듯 빨개진 호수/ 그 물을 마시면/ 초석 섞인 물을 마시는 듯하고./ 바늘구멍이 촘촘히 난 그물 담./유산(遺産)이 되어버린 벽돌담을 두드린다./방패로 보호를 하던 담,/ 이제는 방패마저 그 외로움을 보호할 수 없다. - 멕시코 나우아족의 한 시인이 쓴 멕시코 멸망에 대한 비가(悲歌)



1521년 8월 13일. 아스테카제국의 중심이었던 멕시코-테노츠티틀란은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소수의 스페인 원정대에 함락됐다. 도시는 초토화됐고, 주민들은 살육됐다.
멕시코 원주민들의 눈에 비친 스페인 사람들은 '황금에 대한 열망으로 날뛰는 배고픈 돼지'였고,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살인자였다.
아스테카제국의 황제인 목테수마 2세와 제사장들은 처음에 베라크루스 해변에 나타난 스페인 사람들이 귀환한 신(神)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신단과 죄수들을 보내 이방인들 앞에서 인신공양 의식을 하기도 했다.
소수의 정복자들이 도시를 점령하고 아스테카문명을 완전히 파괴하는 데는 2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스페인 원정대가 처음 유카탄 반도의 서쪽에 총과 대포를 쏘며 도착했을 때 화력 무기에 놀란 그 지방의 우두머리가 화친을 표시하기 위해 보낸 선물에는 20명의 여자가 포함됐다.
그중 말린체라는 여자가 코르테스와 동거하며 혼혈아를 낳았는데 그가 인류 최초의 메스티소(Mestizo, 중남미 원주민과 백인과의 혼혈인종)다.
코르테스의 정복 이후 멕시코는 혼혈이 급속히 늘어나 지금은 메스티소가 약 60%, 원주민이 30%, 순수한 백인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메스티소가 다수를 이루는 혼혈국가가 된 것이다.
멕시코 국립대 총장과 교육부 장관까지 지낸 호세 바스콘셀로스는 전 인류의 인종을 다섯개로 분류했다. 흑인, 홍인(아메리카 원주민), 황인, 백인에 이어 인류 최후의 인종이 바로 메스티소라면서 메스티소야말로 모든 인종을 뛰어넘는 '우주적 인종'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멕시코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고, 메스티소가 크게 늘어나면서 국민통합의 틀은 마련됐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도 멕시코가 지배적 상류계층은 백인, 피지배 하층민은 원주민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는 멕시코시티 로마 지역의 한 백인 가정에서 일하는 가정부 클레오의 이야기다. 클레오는 피부색과 생김새가 백인과 확연히 다른 인디언계 원주민이다.
클레오는 주인집 아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주며 아이들도 클레오를 핏줄처럼 따른다. 클레오는 한 사내와 풋사랑을 하다가 임신한 뒤 남자로부터 버림받는다.
태아를 사산하고 낙담한 클레오는 주인집 식구들과 해변으로 여행을 가는데 바다에서 물에 빠진 주인의 아이를 구해낸다. 가족들은 모두 클레오를 끌어안고 고마움을 표시한다. 종족과 계급, 신분을 넘는 '사랑'이 멕시코 베라크루스 해변의 태양만큼이나 빛나는 시퀀스로 보인다.
이 영화는 쿠아론 감독의 유년 시절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의 제목이자 공간적 배경인 로마는 멕시코시티의 도심부다.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호수의 일부였는데 물이 빠지면서 육지가 됐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프랑스인 등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구도심 외곽에 주택을 짓고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그래서 지금도 정식 명칭은 식민지(colony)를 뜻하는 '콜로니아 로마'(Colonia Roma)다.
초기에는 상류층이 사는 동네였지만, 1985년 멕시코시티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부자들은 빠져나가고 중산층 지역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로마 지역은 다시 변모하고 있다. 고급주택들이 늘어나고 특히 인디 영화나 음악 등 주류문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시도하는 힙스터(hipster)들의 본거지가 됐다.



쿠아론 감독은 영화 제목을 '로마'로 붙이면서 앞에 생략된 '콜로니아'를 의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백인이고 상류층이지만,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준 가정부에 연민과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 영화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 클레오는 가정부이자 원주민이다. 희생적으로 아이의 목숨을 구하고 주인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본다고 그가 가족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백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결국 원주민 클레오의 시선이 아니라 클레오를 바라보는 백인의 시선이 끌고 간다. 클레오에 대한 연민, 그와 주인 가족과의 연대는 다분히 선(善)으로 포장된 '정복자의 시선'일 수 있다.
피지배자를 동정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하려는 식민지 지배자들 특유의 뒤엉킨 -그래서 결국 오만한- 심리가 투영됐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클레오의 선함은 멕시코 원주민과 하층민들이 처한 그 어떤 현실적 문제들도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감독은 표면적으로 인류애를 말하면서도, 그 안에는 엄연히 계급과 종족이 존재하고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여러 곳에서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가족이 모두 모여 함께 TV를 보면서도 클레오에게는 늘 해야 할 일이 있고, 클레오를 진심으로 위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주인의 어머니도 클레오의 신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여주인이 술에 취해 차로 긁어놓은 벽도 수리하는 건 가정부들의 몫이다. 곳곳에서 감독은 영화를 보고 '감동'만 해서는 안 된다고 귀띔하는 것 같다.
슬라보이 지제크(Slavoj zizek)는 이 영화가 클레오의 백인 가족에 대한 선(善)이 일종의 덫이라는 미묘한 신호로 가득 차 있다면서, 클레오의 헌신이 이데올로기적 무지의 결과라는 데 동의했다.



'정복당한 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영화에 나오는 1971년 6월 성체축일 대학살(The Corpus Christi Massacre, 정부 지원을 받은 우익무장단체가 시위대를 공격해 120여명을 살해한 사건)은 16세기 코르테스의 멕시코 원주민 대학살과 오버랩된다.
영화에서는 클레오가 사산하는 장면의 극적인 배경으로 큰 비중 없이 다뤄지지만, 1960∼1970년대 멕시코의 민주화운동과 잔혹한 탄압의 역사는 우리에게도 시사적이다.
정복자의 '휴머니즘'에 피정복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클레오처럼 복종과 헌신의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성실한 답을 얻으려면 이 영화는 '로마'가 아니라 '콜로니아 로마'로 읽어야 한다.
지제크는 T.S 엘리엇의 다음과 같은 경구로 '로마'에 대한 리뷰를 마무리하고 있다. "가장 큰 죄는 잘못된 이유로 옳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fait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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