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유적지를 가다] ⑦충북 만세운동 산실 홍범식 고택

입력 2019-02-22 06:00  

[3·1운동 유적지를 가다] ⑦충북 만세운동 산실 홍범식 고택
충북 첫 만세운동 전개 괴산장터 자취 사라져
충북 독립운동 주도했으나 `빨갱이 낙인' 홍명희 재조명 목소리

(괴산=연합뉴스) 박종국 기자 = 1910년 8월 29일 일제가 조선을 강제 합병하는 경술국치를 당하자 충남 금산군수였던 홍범식은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잡기엔 내 힘이 무력하기 그지없고 망국의 수치와 설움을 감추려니 비분을 금할 수 없다"며 순국한다.
홍범식은 자식들에게 남긴 유서에서 "조선사람으로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빼앗긴 나라를 기어이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고 당부한다.

부친을 잃고 비분강개하며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던 홍명희는 32살 되던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승하하자 국장에 조문하기 위해 상경했다가 손병희를 만나 괴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독립선언서를 챙겨 고향으로 돌아온다.
홍명희는 귀향하자마자 그해 3월 18일 삼촌 홍용식, 이재성 등과 괴산 장날인 3월 19일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고 독립선언서 300여장을 등사했다.
수천 명의 장꾼이 모여든 3월 19일 홍명희 등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주도하자 괴산장터에는 삽시간에 600여명의 시위대가 운집했다.
유례없는 시위에 놀란 경찰대가 홍명희 등 주도자 18명을 체포하자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1천500여명까지 불어난 시위대는 괴산경찰서로 몰려가 체포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이튿날 새벽 2시까지 시위를 벌였다.
이날 만세운동에는 청주농업학교 학생 홍태식과 괴산보통학교 학생 곽용순 등 35명의 학생도 참가했다.
충북 최초의 3·1 만세운동은 이렇게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시골 괴산에서 시작됐다.

이보다 앞선 그해 3월 7일 한봉수가 청주 우시장 입구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만세 시위를 벌였다거나 3월 11일 충북 충주 달천리에서 천도교인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외쳤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판결문 등 각종 문서에 의해 고증된 충북의 첫 대규모 만세운동은 괴산장터 만세운동이라는 게 정설이다.
괴산 만세운동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다음 장날인 3월 24일 홍명희의 동생 홍성희와 괴산면 서기 구창회, 소수면 서기 김인수 등이 주도해 만세운동을 벌였고 3월 29일과 4월 1일에도 1천여명이 넘는 군중이 참여한 만세운동이 계속됐다.
일제 식민통치기구의 하부 조직인 면의 서기가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것에서 당시 괴산 주민의 충정과 독립 열망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괴산장터에서 촉발된 만세운동은 괴산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소수면과 연풍면, 장연면, 청안면, 청천면, 칠성면, 감물면, 문광면 등에서 그해 4월 중순까지 대규모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괴산장터 시위를 주도한 홍명희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이재성, 홍용식, 홍성희 등은 징역 1년∼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4월 1일에는 청주 문의에서 1천여명이 횃불 만세운동을 벌였고, 같은 날 충주 신니에서도 200여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벌이는 등 충북 전역에서 대한독립을 갈망하는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충북 첫 만세운동의 현장이었던 옛 괴산장터는 지금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상가와 주택이 들어서면서 장터의 모습은 흔적조차 없다. 옛 괴산장터 입구인 수진교 옆에 1996년 세워진 만세운동유적비가 역사의 현장임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만세운동을 모의한 홍범식 고택은 홍명희가 출옥한 뒤 서울로 이사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이 넘어가 방치되다시피 했다.
대하소설 임꺽정의 작가이자 괴산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1927년 항일단체인 신간회를 결성, 부회장을 맡아 활동하다 옥고를 치른 홍명희지만 해방 이후 월북하면서 오랫동안 '빨갱이'로 낙인찍혔던 탓이다.
뒤늦게 2002년 충북도와 괴산군이 매입, 안채와 사랑채, 광채 등을 복원한 뒤 충북도 민속문화재 제14호로 지정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홍범식 고택에서는 매월 첫째, 셋째 주말 다양한 문화 공연과 시 낭송회가 열린다.
책방이 운영되는 등 지금은 괴산의 대표적인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괴산군과 괴산문화원은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음 달 19일 2천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괴산 만세운동 재현을 준비하고 있다.
홍범식 고택에서 만세운동을 논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옛 괴산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하고, 괴산경찰서에서 체포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한 100년 전 시위를 재현할 계획이다.
이날 괴산문화원에서 괴산 만세운동의 의의와 역사를 재조명하는 학술토론회도 연다.
괴산군 항일독립운동사를 정리하고 독립유공자를 소개하는 학술 도서 발간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홍명희에 대한 재조명은 여전히 미제로 남겨두고 있다.
그를 불온시하는 정서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충북작가회의가 해마다 개최하는 홍명희 문학제는 1996년 청주예술의전당에서 처음 열린 이후 청주와 경기 파주, 서울을 전전하고 있다.
이 문학제는 괴산지역 보수단체의 강력한 반대로 2013년을 마지막으로 괴산에서는 열리지 못하고 있다.
김승환 충북문화재단 대표는 "홍명희를 빼고는 괴산 만세운동, 더 나아가 충북 만세운동을 논할 수 없다"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했고 남북이 평화 공존을 위한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만큼 홍명희의 항일 업적을 재평가하고 홍명희 문학제가 그의 고향에서 다시 열리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pj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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