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900개 방 30여년간 찍으며 길어올린 옛 기억들(종합)

입력 2019-03-04 17:10  

베르사유 900개 방 30여년간 찍으며 길어올린 옛 기억들(종합)
복원 과정 담은 美사진가 폴리도리, 박여숙화랑 개인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거대한 샹들리에와 붉은 꽃무늬 벽지를 바른 벽, 금 테두리 거울. 잔뜩 멋을 부린 공간이지만, 괜스레 마음이 헛헛하다. 먼지를 뒤집어쓴 수레와 녹슨 테이블이 실상 모든 것은 옛일이 됐다고 말하기 때문일까.
'황태자비의 침실'로 불리는 이곳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900여개 방 중 하나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1682년 완공한 베르사유 궁전은 대다수 서유럽 왕정이 선망한 궁정의 상징이었다. 프랑스 절대왕정은 100여년 뒤 막을 내렸지만, 베르사유 궁전만큼은 지금도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매혹한다.
1983년 프랑스로 이주한 미국인 사진작가 로버트 폴리도리는 베르사유 궁전에 마음을 빼앗겼다. 처음에는 창밖 너머로 베르사유 궁전 사진사들을 지켜보기만 했다는 폴리도리는 용기를 내 책임자를 찾아갔다. 요나스 메카스 조수 출신인 그는 궁전 복원 과정을 촬영해도 좋다는 승낙을 어렵사리 얻어냈다.
5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개막하는 '베르사유: 고요한 공간의 시학'은 폴리도리가 30여년간 담아낸 '베르사유' 작업 700점 중 일부를 선보이는 자리다.
'베르사유' 사진은 대형 카메라로 셔터 속도를 느리게 해 촬영한 뒤 보정한 것이다. 사진은 처음에는 화려함으로 눈길을 끌지만, 복원을 앞두고 "박물관적 시공간의 교차와 해체가 이뤄지는 순간들"(이건수 미술비평가)이 포착되면서 흥미를 자극한다.



개막 하루 전인 4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어떠한 스타일로 복원할지 정하는 것도 현재 우리 선택이기에 복원은 또 다른 역사의 지층이 한 겹 더 포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매년 베르사유 궁전을 찾아 방들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찍었다. 이러한 촬영 또한 일종의 복원이라는 것이 작가 설명이다. "사진을 찍음으로써 기억과 역사가 되살아나는 것이죠.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었고,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를 기록하는 작업입니다."
베르사유 궁전은 그의 사진을 통해 단순한 유적이 아닌, 역사와 소통하는 건축물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갤러리는 이를 두고 "폴리도리 작품 속 건축물은 기억의 은유이자 그릇이며,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시대와 삶의 서명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작업은 당대 어떠한 사조의 예술이 꽃피웠는지, 무엇이 유행했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황태자비의 침실'(1986) 속 중국 그림이 그려진 가구 또한 백자를 비롯한 중국적 취향에 물든 당시 상류층 문화를 보여준다.
전시는 19일까지.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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