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보다 팩트에 무지한 인간…"우린 왜 사실을 외면할까"

입력 2019-03-06 06:11  

침팬지보다 팩트에 무지한 인간…"우린 왜 사실을 외면할까"
게이츠가 선물하고 오바마가 추천한 로슬링 유작 '팩트풀니스'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중국이 기근에 시달리던 1958년 마오쩌둥 주석은 한 농촌 마을을 시찰하다 낟알을 쪼아먹던 참새를 발견하고 "저 새는 해로운 새"라고 말한다. 그리고 전국에 참새 소탕령을 내린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해충의 천적인 참새가 사라지자 오히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대기근'으로 사태가 악화한다. 참새 소탕 작전이 시작된 지 3년 만에 당시 남북한 전체 인구를 합친 것보다 많은 사람이 굶어 죽은 것으로 추산됐다. 무려 4천만 명이 아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마오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소련으로부터 참새 20만 마리를 빌려와야 했다.
왜 이런 어이없는 대참사가 일어났을까. 지도자 한 사람의 무지와 잘못된 믿음 때문이었다. 심리학 용어로는 '확증 편향', '소망적 사고' 등이 결합한 결과다.
이처럼 인간은 무지할 뿐 아니라 무모한 존재다. 특히 마오처럼 국가 지도자가 과학과 통계 대신 잘못된 신념에 근거한 정책을 무모하게 밀어붙이면 처참한 비극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인류 역사는 매번 입증했다.
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최고 지성 중 하나로 꼽히는 한스 로슬링은 아들, 며느리와 함께 지은 유작 '팩트풀니스'(김영사 펴냄)에서 이러한 인간의 판단 오류와 반지성, 비합리성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팩트풀니스(factfulness)란 '사실충실성'으로 번역된다. 팩트(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관점을 뜻한다.
로슬링은 사실 우리 인간이 침팬지보다 팩트를 더 모른다고 일갈한다. 이를 증명하고자 그는 세계 보건·교육·경제 분야 통계를 바탕으로 13가지 질문을 만들어 세계 각국 사람들에 물어보는 실험을 한다.
13개 문항은 결코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저소득 국가들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 비율, 세계 인구의 다수가 사는 나라들의 평균 소득 수준, 전기를 공급받는 인구 비율, 지난 20년간 세계 극빈층 인구 비율 변화 등이다.
그렇다면 평균 정답률은 어땠을까. 2017년 한국을 포함한 14개국 1만2천명에게 질문한 결과 13번 문항을 뺀 열두 문제 중 정답 개수는 평균 2개였다. 참여자 중 15%는 0점을 맞았다.
특히 저자가 충격을 받은 대목은 노벨상 수상자와 의료계 연구원 가운데 형편없는 점수를 받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학력이나 전문지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제 실험은 안 했으나 가설은 이렇다. 선입견에 빠져 정답을 피해 가는 인간과 달리 단순히 확률로만 따져도 보기 셋 중 정답을 고를 확률은 33%이다. 정답을 맞힌 문제 개수로 치면 평균 4개로 인간의 두 배다.
저자는 이 설문에 응한 사람들이 세상을 실제보다 더 무섭고 폭력적이고 가망 없는 곳으로 여겼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런 확증 편향 때문에 팩트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3번 문제(지난 20년간 세계 극빈층 비율 변화)에서 정답률은 7%로 뚝 떨어졌다. 10명 중 1명도 안 되는 사람만 정답을 맞힌 것이다. 거의 두 배로 늘었다거나 거의 그대로라고 답한 사람이 절대다수였지만 팩트는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였다.
국가별로는 헝가리의 정답률이 2%로 최하였고, 대한민국도 4%로 만만치 않았다. 한국 국민은 팩트보다 편향에 의존하는 축에 속한다는 결론이 나올만한 수치다.



왜 우리는 침팬지보다도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할까. 왜 사실과 주장을 혼동할까. 왜 가짜뉴스와 선동에 취약할까.
무엇보다 세계와 주변을 파악하는 감각에 오류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언론의 보도 방식과 태도도 이런 현상에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언론은 극적이고 부정적인 소식을 주로 다루고 프레임을 맞춘다. 2009년 신종플루로 불과 몇 달간 수천 명이 사망했고 언론은 관련 뉴스를 연일 주요하게 보도하며 공포심을 키웠다. 그러나 같은 시기 결핵으로 숨진 사람이 신종플루 사망자를 크게 앞선 6만여명에 달했다는 팩트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저자는 항상 팩트를 직접 파악하고 다른 통계와 비교해보는 습관을 들일 것으로 조언한다. 비율로 환산해 따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야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불필요한 비관론에 빠질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예컨대 지난 2016년 태어난 신생아 1억4천100만명 가운데 사망한 아기는 420만명에 달한다. 420만명의 귀여운 아기가 피지도 못하고 지다니 끔찍하다. 사망률은 3%다. 그런데 1950년 신생아 9천700만명 중 사망자는 1천440만명이다. 신생아 100명 중 15명이 첫돌 전에 숨졌다는 얘기다. 이렇게 보면 영아 사망률은 크게 낮아졌다.
저자가 팩트를 파악하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사람들이 깨닫도록 하려는 것은 뭘까. 우리가 사는 세계가 우리 선입견처럼 나빠지고 있는 게 아니라, 비록 그 속도가 느리긴 하나 적어도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팩트'다.
요즘 세상에서 노예나 하인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노예 상태인 사람의 비율은 19세기 초와 비교하면 통계상 제로(0) 수준으로 떨어졌다.
1970년대와 비교할 때 오늘날 재해 사망률은 10분의 1로 감소했다. 세계 문맹률은 10%로 줄었고 초등학교 교육을 받은 세계 여성은 90%로 늘었다. 예방접종을 받는 아동 비율은 90%를 실현했고 세계인의 85%가 전기를 공급받는다. 독자들이 머릿속에 그리던 '퇴보하는 지구'와는 많이 다른 모습 아닌가.
팩트 파인딩을 통해 희망을 찾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갖기를 저자는 기원한다. 무지는 야만과 폭력을 부르고 세상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로슬링이 2017년 2월 이 책을 유작으로 남기고 타계한 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등 많은 정·재계 거물과 석학들이 이를 필독서로 추천했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가디언 등 유수 언론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한국을 포함한 40여개 국에서 출간 확정됐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추천사에서 "타고난 편견을 넘어 사실을 밝혀낼 때 인간은 진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깨워 준 희망적인 책"이라고 했다.
게이츠는 지난해 미국 대학 졸업생 전원에 주는 선물로 이 책을 선택했다. 졸업생임을 증명만 하면 전자책을 다운받을 수 있게 했다.
이창신 옮김. 474쪽. 1만9천800원.
lesl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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