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디지털 자산 규제 프레임이 빠르게 정비되면서 금융권의 코인 사업 진입에 속도가 붙었다. ‘허용’ 수준을 넘어 제도권 금융이 직접 시장을 재편하는 국면이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블랙록의 비트코인 ETF는 출시 직후 폭발적인 자금 유입을 기록하며 디지털 자산이 더 이상 변방 자산이 아님을 입증했다. 보수적인 성향의 찰스슈왑조차 비트코인·이더리움 거래를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핀테크는 더 빠르다. 로빈후드, 소파이는 단순 거래를 넘어 예측시장, 토큰화 자산(RWA), 스테이블코인 등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며 ‘금융 인터페이스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핵심은 명확하다. 코인이 상품이 아니라 금융 인프라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보인다. 과거에는 은행 중심의 수탁·연계 서비스 등 ‘소극적 실험’ 수준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금융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업 구조를 설계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오너 중심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금융사일수록 빠른 실행과 리스크 감수를 통해 선제적으로 포지션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국내 주요 금융그룹의 가상자산 사업 현황과 전략을 분석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신년 메시지에서 “코빗 인수는 단순한 금융 거래가 아닌, 금융의 미래를 향한 선제적 포석”이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박 회장은 전통 자산과 대체 자산, 코인을 아우르는 ‘디지털 자산 투자 그리드’ 구축을 천명했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벤치마킹 대상은 미국의 로빈후드”라며 구체적으로 스테이블코인, RWA, 기관용 디지털 자산 서비스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래에셋의 강점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꼽는다. 국내 규제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더라도 홍콩, 미국 등 이미 확보한 해외 거점을 통해 서비스를 선제적으로 론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먼저 테스트를 해본 뒤 이를 역으로 국내에 도입하는 ‘글로벌 투 로컬’ 전략이 예상된다.
업계의 이목을 끄는 것은 토스의 ‘자체 메인넷’ 검토 소식이다. 한 언론에 따르면 토스는 자체 레이어1 혹은 레이어2 블록체인 구축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토스는 이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지만 이 소식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IT, 게임 대기업들이 발행한 코인들이 ‘김치코인’이라는 오명을 얻으며 고전했지만 토스는 특유의 실행력으로 금융서비스와 블록체인을 결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만약 토스가 자체 메인넷을 출시하고 주요 금융 인프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한다면 토스의 기업가치는 단순 핀테크를 넘어 글로벌 프로토콜 기업으로 재평가될 수도 있다.
가장 큰 성과는 한화투자증권의 두나무(업비트 운영사) 투자다. 2021년 당시 선제적인 지분 투자로 15배 이상의 수익을 거두었다. 최근에는 가상자산 공시 플랫폼 쟁글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리서치 및 투자 콘퍼런스 시장까지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한화자산운용은 솔라나 생태계(지토)와의 협업을 통해 솔라나 스테이킹 ETP 상품 검토를 하고 있다. 게다가 이더리움 DAT 비트마인 등에 투자하며 투자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소수 지분 투자전략의 장점은 명확하다. 초기 리스크를 직접 부담하지 않으면서 산업 성장의 과실을 지분 투자로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플랫폼을 직접 소유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는 가치 포획 능력이 제한된다. 현재까지는 투자 성과는 의미 있지만 금융서비스 측면에서의 존재감은 약하다. 결국 한화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자체 서비스 구축 혹은 기존 금융 플랫폼과의 강한 결합이 필요하다.
다른 금융사들도 움직이고 있다. 다만 위에 언급한 회사들 대비 아직 적극적으로 사업을 실행하는 단계보다는 탐색하는 단계로 파악된다.
코인 신사업은 불확실성이 크고 한국의 규제 환경도 여전히 제약이 많다. 따라서 과감하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오너가 경영에 참여하는 금융사가 유리할 것으로 생각한다.
코인 신사업 관련, 핵심 질문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1. 단순한 서비스를 만들 것인가,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
2. 국내에 머물 것인가, 글로벌로 확장할 것인가
3. 소수 지분 투자에 그칠 것인가, 플랫폼을 소유할 것인가
해외의 경우 금융사 중에서는 블랙록, 핀테크 회사 중에서는 로빈후드가 가장 벤치마킹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회사들은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원과 높은 시장 이해도 덕분에 관련 비즈니스를 가장 잘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단순히 소수 지분 투자를 하거나 MVP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넘어 실제 자사 비즈니스 모델에 코인을 접목해서 돈을 벌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내 금융사들이 코인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려면 단순히 MOU 체결 등 보여주기식 업무를 하는 것보다는 전사적인 관점에서 고민하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흐름을 보면 저부가가치 서비스나 소수 지분 투자에 머무는 플레이어는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반대로 투자, 결제, 데이터, 네트워크를 통합해 금융의 기본 구조를 재설계하는 쪽이 결국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금융사 중 누가 이 레이어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싸움은 ‘코인 사업’이 아니라 ‘차세대 금융 시스템’을 둘러싼 경쟁이라는 점이다.
한중섭 ‘어바웃 머니’,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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