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운동.임정 百주년](55)'안창호의 날' 미국인도 기억한다

입력 2019-03-27 06:00   수정 2019-03-27 07:51

[3ㆍ1운동.임정 百주년](55)'안창호의 날' 미국인도 기억한다
도산 탄생일 기려…캘리포니아주 의회 최초로 '외국 인물 기념일' 제정
간디·킹과 비견되는 인물…발의자 최석호 의원 "기념행사 단발성 그쳐선 안돼"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 지난해 8월 1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주도 새크라멘토 도심에 위치한 주 의사당(State Capitol).
캘리포니아 주의회 하원 68지구를 지역구로 하는 한인 1.5세 최석호 의원이 사람 이름이 들어가는 매우 특이한 주제의 안건을 펼쳐 보인다.
바로 '도산 안창호의 날'(Dosan Ahn Chang Ho Day) 제정 결의안이다.
켄 쿨리 의원이 안건 토의를 주재하고 최 의원이 안창호(1878~1938) 선생의 이력을 동료 주 의원들에게 차근차근 소개했다.
"도산은 한국민들에게 나라 안팎에서 가장 애국적인 인물로 여겨지며…그는 미국에서 총 13년간 살았다. 그것도 주로 캘리포니아에 기거하면서…"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자 주저하지 않고 떨쳐 일어섰으며, 투옥과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1938년 3월 10일 순국했으며, 생전에 보여준 그의 열정과 실천은 한국인들에게 민주주의의 뿌리를 심어준 자양분으로 남았다는 게 최 의원의 의사 발언 요지였다.


영어 의사록에는 안창호 선생이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사랑하라며 '애기애타'(愛己愛他)의 철학을 후세에 남겼다는 대목이 한자성어 그대로 기술됐다. 속기록엔 발음만 'Ae Ki Ae Ta'라고 붙였다.
결의안 발의에는 최 의원 외에 두 명의 미국인 의원이 '의기투합'했다.
중가주(중부 캘리포니아) 리들리의 짐 패터슨 의원과 로스앤젤레스(LA) 동쪽 소도시 리버사이드의 호세 메디나 의원이다.
리들리와 리버사이드는 도산의 미국 내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이다. 특히 리버사이드는 안창호 선생이 미국 내 한인타운의 효시이자 도산공화국인 파차파 캠프를 건설한 곳이다. 그의 동상도 리버사이드 시청앞 광장에 세워져 있다.
'ACR 269'라는 일련번호가 붙은 결의안은 주 하원에서 찬성 71, 반대 0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주 의회 상원도 같은 달 전체회의를 열어 찬성 39, 반대 0, 기권 1로 결의안을 승인했다.


2018년부터 매년 11월 9일(도산 탄생일)을 '도산 안창호의 날'로 선포한 것이다.
결의안은 안창호 선생이 10대부터 서울의 미션스쿨에 다니며 조국의 현대적 교육을 꿈꿔온 점, 1899년 평안남도 강서에 근대적 교육기관인 점진(漸進)학교를 세운 뒤 미국의 교육제도를 배우겠다는 열망을 안고 1902년 10월 14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한국인들을 캘리포니아 자치공동체에 정착하게 하고 1905년 공립협회, 1906년 신민회, 1909년 대한인국민회를 잇달아 세운 뒤 1913년 흥사단 설립의 초석을 닦았다는 대목도 들어갔다.
결의안은 그의 개척정신과 애국심이 미국으로 온 한인 이민자들의 가슴에 새겨졌다는 결론으로 끝맺음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외국인의 탄생일을 기념일로 제정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최석호 의원은 "내가 이곳 캘리포니아에 한인 의원으로 남아 있는 동안에는 반드시 안창호의 날을 지켜낼 것"이라며 "올해 8·15에 즈음해서는 주 의회에 결의안을 다시 한번 환기하도록 촉구 형태의 안건을 추가로 발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결의안이 통과됐다고 해서 가만히 손 놓고 있다가는 잊히기 쉽다. 단발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면서 "특히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계속 알려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비를 들여 결의안을 액자에다 표구해 주요 기관에 증정했다고 한다.
작년 11월 9일 LA 시내 호텔에서는 제1회 도산 안창호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흥사단 LA지부 민상호 대표는 "고민을 거듭한 건 기념식을 위한 기념식, 행사를 위한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며 "한인 2세·3세들에게,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민들에게 도산 안창호의 날이 어떻게 다가가도록 할지 방법론을 고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LA 현지 학교에는 도산 유적지 탐방 프로그램을 의뢰하고, 에세이 콘테스트도 열기로 했다. 기금이 구축된다면 도산 장학생을 선발하는 프로그램도 검토할 수 있다.
"도산의 무실(務實) 역행(力行) 충의(忠義) 용감(勇敢)의 정신, 여기 현지 주민들이 들으면 다소 생소하겠지만 그 의미를 새겨주면 다들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라고 민 대표는 말한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미국 국적이 아닌 외국인의 업적을 기려 기념일을 제정한 건 도산을 하나의 민족 지도자를 넘어 이민사회의 리더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인정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학자들은 평가한다.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한인 커뮤니티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데 도산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LA에는 이미 도산 안창호 우체국이 있고, 110번과 10번 프리웨이가 만나는 지점에 '도산 메모리얼 인터체인지'라는 고속도로 표지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념일'이 큰 의미를 갖는 건 미국 현지인들에게 업적을 알림과 동시에 한인 동포사회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라고 LA총영사관은 설명했다.
도산과 인도의 국부적 존재 마하트마 간디, 미국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서 킹을 비교하는 논문을 저술한 차만재 프레즈노 캘리포니아주립대(칼스테이트) 정치학과 명예교수는 "도산과 간디, 킹 세 분은 인간의 본성과 진리를 찾고 본성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방법이 동일하다"라고 말했다.


차 교수는 "정신적, 내적으로 인간의 힘을 기르고 실력을 양성하자는 면에서 철학이 같다는 의미"라면서 "하지만, 도산과 간디, 킹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도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간디는 영국에 대항했지만 영국 지식인 사회에서는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킹 목사도 인종차별에 항거하면서 미국의 헌법정신을 일깨운 덕분에 백인 지식인 그룹의 도움을 끌어냈다. 하지만, 도산 선생의 항거와 민주주의 정신은 당시 민주적 전통이 전무하던 제국주의 일본에 전적으로 대항해야 하는 것이었다"면서 "그만큼 도산의 독립운동·사회운동이 훨씬 외롭고도 힘겨운 싸움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기도 하다"라고 평가했다.


oakchu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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