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이들의 슬픔…세월호참사 조심스레 조명한 영화 '생일'

입력 2019-03-19 15:29  

남은 이들의 슬픔…세월호참사 조심스레 조명한 영화 '생일'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전 국민의 트라우마로 남은 사고를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양날의 칼일 수밖에 없다. 잊을 수 없는, 잊지 말아야 할 참사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더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두 편이 2주 간격으로 개봉한다. 먼저 선을 보이는 '악질경찰'이 범죄 오락 영화에 세월호 사고를 결합해 보기에 따라서는 어색한 조합이라고 느낄 수 있다면 내달 3일 개봉하는 영화 '생일'은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정공법'을 택했다.



'생일'은 붕괴하기 직전인 한 가족, 헤어지기 직전인 한 부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수년간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지만 들어가지 못하는 아빠 정일(설경구 분), 마음을 굳게 닫고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엄마 순남(전도연). 이 영화가 세월호 참사를 다뤘다는 점을 모르고 영화를 보는 관객은 거의 없겠지만, 만약 알지 못한 채라고 해도 이들이 큰 상실을 겪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올해도 수호가 없는 수호의 생일이 다가오고, 정일과 수호의 친구들은 수호의 생일 모임을 열고자 하지만 순남은 반대한다.


몇 년째 치워지지 않았을 아들 수호의 방, 입을 사람이 더는 없는데도 수호의 새 옷을 사 오는 순남,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여동생 예솔(김보민) 등 영화는 이들이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내용을 풀어놓으며 담담하고 세밀하게 남은 이들의 삶을 그린다.
영화는 아들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이유 없이 켜지는 현관 등이 아들이 온 것일까 봐 마음 아파하는 순남의 감정에 집중했으나 이에 깊게 매몰되지는 않는다. 그 덕분에 오히려 아들의 생일 모임을 하고 싶지 않은 순남의 마음에 관객은 더 집중할 수 있다. 슬픔의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어 보이는 배우 전도연의 표정도 마음을 저릿하게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사건을 나열하지도 않고 세월호를 둘러싼 온갖 정치 논리 등으로부터는 벗어나 미시적으로 한 유가족의 슬픔에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온 아파트를 울리는 순남의 울음소리가 지겹다는 옆집 딸이나 보상금은 얼마나 받냐고 말하는 친척 등 세월호 유가족을 향한 다양한 시선을 가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도 녹여 넣었다.
영화가 한걸음 물러서 남은 이들의 슬픔을 바라보는 것은 조심스럽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섣부른 해석과 이해 또는 위로가 실제 사건이나 유가족들의 심경을 왜곡이라도 할까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다.
이 같은 연출은 영화 후반부 수호의 생일 모임 장면에서는 강점이 된다. 순남과 정일 뿐 아니라 수호의 친구들, 다른 유가족들이 각자의 슬픔을 꺼내놓는다. 이 장면은 유가족을 향한 조심스러운 위로일 뿐 아니라 함께 트라우마를 겪는 우리 모두를 향한 위로이기도 하다. 이례적으로 30분이 넘는 롱테이크로 촬영된 이 장면에서 관객은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의 슬픔과 상실감을 이해하고 함께 눈물 흘리게 된다.


연출을 맡은 이종언 감독은 지난 2015년 여름 안산의 치유공간에서 자원봉사하며 함께 아이들의 생일 모임을 준비했다. 이때 이 영화를 구상했다.
최근 언론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종언 감독은 "당시 '세월호 피로도' 이야기가 나와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드리면 과연 그럴까 싶었다"며 "그때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걱정은 많았지만 만들고자 하는 마음은 확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또 다른 상처가 생겨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며 "그래서 늘 조심스러움이 컸다"고 털어놨다.


dy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