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자아 찾는 여정 출발…"융 메시지 알린 BTS에 감동"

입력 2019-04-03 17:00   수정 2019-04-03 17:02

방탄소년단, 자아 찾는 여정 출발…"융 메시지 알린 BTS에 감동"
융 이론 접목한 새 앨범 '맵 오브 더 솔:페르소나' 12일 발매
'융의 영혼의 지도' 저자 "RM 유엔 연설 인상적"…올해만 1만부 판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나는 누구인가 평생 물어온 질문/ 아마 평생 정답은 찾지 못할 그 질문.'
RM(본명 김남준·25)이 거침없이 랩을 쏟아낸 방탄소년단 신곡 '페르소나'(PERSONA) 첫 소절이다.
이 곡에서 RM은 진짜 '슈퍼 히어로'가 된 것 같지만, 외적인 역할과 내면의 감정이 충돌하는 성장통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아는 나', '스스로 만들어낸 나' 여러 모습을 인정하면서 존재에 대한 물음의 답을 찾아간다.
지난 2년간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로 세상을 물들인 방탄소년단이 세계 팬들에게 '자아 찾기'란 한층 내밀한 화두를 제시했다. '나'란 주제는 연속성이 있다.
이 곡이 수록될 새 앨범 제목은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MAP OF THE SOUL: PERSONA).
융 심리학 전문가 머리 스타인 박사가 스위스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의 이론을 지도 제작 과정에 빗대 쉽게 풀어낸 개론서 '융의 영혼의 지도'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술적 상상력에 문학을 응용한 이들이 이번엔 심리학을 접목해 또다시 사유의 계기를 제공한다.
융의 개념에서 페르소나, 그림자, 자아는 자기(Self)의 여러 측면이다.
그중 방탄소년단이 첫 번째로 주목한 페르소나는 문화,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며 형성된 인물, 즉 우리가 타인과 사회적 교류에서 보여주는 얼굴(가면)이다. 사람은 상황과 역할에 따라 여러 개 페르소나를 지니므로, 융은 자신의 한 단면인 페르소나를 자아와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한다. 원형의 자아인 '있는 그대로의 나'(I am)가 사라질 수 있어서다.


'융의 영혼의 지도' 저자인 스타인 박사는 지난달 23일 팟캐스트 '융을 말하다'를 운영하는 로라 런던과 인터뷰를 갖고 이 관점에서 RM의 유엔 연설이 인상적이었다고 분석했다.
유튜브를 통해 연설을 여러 번 봤다는 그는 "RM이 서울 밖 도시(일산)에서 자란 어릴 적 모습과 엔터테인먼트 업계 유명인이자 스타가 된 지금 모습 사이를 신중하게 구분 지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만약 RM이 유명인의 모습과 자신을 동일시한다면 진정한 자신, 소년이었던 자신을 잃어버리겠죠. 그러면 자기와의 연결이 끊어지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매우 취약해지죠. 일단 공공 영역에 들어가면 사람들의 찬사, 인정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것들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죠."
실제 RM은 연설에서 "방탄소년단은 지금 대규모 스타디움에서 공연하고 수백만장 앨범을 파는 아티스트가 되었지만, 여전히 저는 스물네 살 평범한 청년"이라며 어제의 나도 오늘의 부족하고 실수하는 나도 '나'라고 소개했다. 자신의 여러 모습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는 '페르소나' 노랫말과 맥이 닿는다.
인터뷰에 앞서 스타인 박사와 로라 런던 SNS에는 팬클럽 아미의 관심과 트윗이 쏟아졌다.
방탄소년단에게 영감을 준 '융의 영혼의 지도'는 아마존에서 융 심리학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1998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앞서 지난해 12월 '사랑의 기술', '데미안'과 함께 빅히트숍 추천 도서로 올라왔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것은 2015년이다.
이 책을 출간한 문예출판사 측은 "융 심리학 입문서로 소개되며 지난 3년간 총 2천500부가 판매됐다"며 "작년 말 방탄소년단 추천도서로 알려지면서 올해만 1만부 정도 판매됐다. 20년 전 나온 책이고 '데미안'처럼 읽기 쉬운 소설이 아닌데도, 팬들이 방탄소년단 메시지를 이해하고자 많이 찾아 읽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이 매 앨범 촘촘한 메타포와 연결점을 배치하다 보니 '페르소나' 한 곡만으로도 앨범 방향을 유추하고 상징과 은유를 해석하는 아미의 '열공'도 시작됐다.
'페르소나' 도입부에는 2014년 2월 앨범 '스쿨 러브 어페어'(SKOOL LUV AFFAIR)의 동명 인트로 곡이 샘플링됐다. 이 앨범은 10대 관심사인 꿈, 행복, 사랑을 아우르는 학교 3부작 완결편으로 멤버들의 의상 콘셉트는 교복이었다.
'페르소나' 뮤직비디오에서 RM은 다시 시작점이던 교실에 서 있다. 몇몇 장면에선 교복 차림이다. 칠판에는 페르소나(Persona)·섀도우(Shadow·그림자)·에고(Ego·자아)란 새 앨범 개념과 드림(DREAM)·러브(LOVE)·해피니스(HAPPINESS)란 초기작 테마가 함께 쓰여있다.
관련 단어로 추정해보면 10대를 대변한 학교 시리즈를 통해 세상에 일침을 가한 방탄소년단이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청춘('화양연화' 시리즈)을 보내고, '나를 사랑'('러브 유어셀프' 시리즈)하는 내적 성장을 거쳐 진정한 자아에 다가서는 과정이 전개될 듯하다. 팬들은 '페르소나·섀도우·에고'를 이번 앨범 시리즈 타이틀로 추측했다.
이 여정을 거치는 사이 방탄소년단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아미'란 글로벌 팬덤의 지지를 얻었다. 강력한 영향력만큼 사회적 기대와 요구가 커지면서 이들 페르소나의 무게도 거대해졌다. '페르소나' 뮤직비디오 속 RM을 짓누르듯 내려다보는 거인 같은 가상의 RM이 이를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RM을 둘러쌌던 수많은 페르소나는 영상 말미, 그의 손짓에 일제히 바닥으로 무너진다. 비로소 '리얼 미'(Real Me)에 이르렀다는 해석도 나온다.


스타인 박사는 팟캐스트에서 방탄소년단이 융 이론과 책에 관심을 가져 감동했다고 말했다. 융의 메시지와 비전이 이전엔 관심을 갖지 않았을 법한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개인의 신성함을 강조한 융의 메시지는 각자의 삶, 나아가 세상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측면에서 오늘날 진정으로 필요한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고,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페르소나도 수용해야 한다는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는 매우 유의미하다"면서 이들이 지도나 나침반을 갖지 못했을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는 점에 찬사를 표했다.
또 방탄소년단이 12일 전 세계에 공개할 새 앨범에서 어떤 내용을 다룰지 궁금증과 기대감도 나타냈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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