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산불 해안까지 확산 2시간…뜀 걸음보다 빨랐다

입력 2019-04-05 12:05   수정 2019-04-05 14:53

고성산불 해안까지 확산 2시간…뜀 걸음보다 빨랐다

(고성=연합뉴스) 이종건 기자 = "정말로 도깨비불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3리의 한 주민은 지난밤 마을을 삼킨 산불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미 불은 마을 코앞에까지 와 있었다"고 말했다.

고성군 토성면 일대와 속초시 장사동 일대를 초토화한 산불이 발생한 것은 4일 오후 7시 17분께.
원암리의 한 주유소 맞은편 전주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 야산으로 옮겨붙은 시간이다.
야산으로 옮겨붙은 불은 자동차를 뒤집어 놓을 정도의 강력한 바람을 타고 동쪽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바로 옆 일성 콘도미니엄을 스친 뒤 순식간에 현대콘도미니엄을 덮쳤다.
이들 두 개 콘도미니엄의 주 건물은 직원과 소방관들의 노력으로 화마를 피했으나 컨테이너와 조립식 건물 등 주변 시설물들은 불길을 피해 가지 못했다.
현대콘도미니엄 주변의 식당과 편의점, 일반주택 3∼4채도 화마에 쓰러졌다.
불은 부채꼴 모양으로 퍼졌다.
잿더미된 마을·폐차장…동트자 드러난 처참한 현장/ 연합뉴스 (Yonhapnews)
속초 방향으로 확산한 불은 노학동 한화리조트를 거쳐 장사동과 속초 시내 쪽으로 내달았다.
이 과정에서 한화리조트 대조영 드라마세트장이 초토화됐으며 이어 장천마을도 쑥대밭이 됐다.
장천마을을 집어삼킨 불은 영랑호로 진출, 호수를 사이에 두고 두 갈래로 갈라져 한줄기는 장사동 횟집촌, 다른 한줄기는 속초의료원 방향으로 진출하면서 호수 주변에 있는 건물들을 태우고 산불 발생 1시간 30여분 만에 해안가까지 도착했다.
산불발화 지점에서 장사동 해안까지 거리가 직선으로 약 7.2㎞ 정도 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날 강풍을 타고 확산한 산불은 일반인의 뜀 걸음보다 속도가 빨랐다고 할 수 있다.

고성 쪽으로 확산한 불은 원암리와 인흥리, 성천리, 용촌리, 봉포리, 천진리를 휩쓸었다.
이들 지역에서는 주택 125채와 창고 6채 등 모두 136채의 건물이 소실됐다.
속초에서도 주택 35채와 숙박시설 24채, 창고 20채 등 모두 209개의 시설물 피해가 났다.

속초지역 피해 가운데 109개는 대조영 드라마세트장에 있던 시설물이다.
날이 밝은 5일 둘러본 피해 지역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한 집 건너 하나씩 불에 타 주저앉은 주택은 곳곳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고, 창문이 모두 깨진 채 앙상한 골조만 남은 건물은 마치 해골을 연상케 했다.
불구덩이 속에서 목숨을 부지한 축사의 소들은 무척이나 놀란 듯 커다란 눈망울을 껌뻑거리며 여전히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소를 사육 중인 한 농민은 "200여 마리 모두가 무사한 데다가 쌍둥이 송아지도 태어나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안도했다.
mom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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