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최북단 섬들을 가다] 신의 솜씨 깃든 비경 속으로

입력 2019-05-11 08:01  

[서해 최북단 섬들을 가다] 신의 솜씨 깃든 비경 속으로
평화의 훈풍 찾아온 백령도…파도·비바람·시간의 합작품

(인천=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서해 최북단은 늘 긴장감이 팽팽한 곳이었다. 보이지 않는 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서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지난해부터 남북 사이에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훈풍이 불고 있다. 봄기운 건너온 서해 북단의 섬들에도 평화가 깃들고 있다.
그곳에서는 경계 이쪽의 시린 풍광과 저쪽의 아스라한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을 부풀리기 좋았다. 서로를 가로막은 해무(海霧)가 걷히길 기원하며 그곳이 품은 신비롭고 장엄한 풍경을 돌아봤다.

◇ 10억년 시간과 자연이 빚은 예술품, 백령도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다. 허리 끊긴 한반도의 남쪽 최북단의 섬. 하지만 쉽게 갈 수는 없었다. 멀어서, 위험해 보여서, 날씨 때문에….
갑작스러운 강풍을 뚫고 그곳에 발을 디뎠다. 그곳에는 오랜 시간 자연이 빚은 걸작이 섬을 둘러 전시돼 있었다. 바다 너머로는 아직은 갈 수 없는 북녘이 거짓말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지도에서 백령도를 찾아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막연히 인천 앞바다에 있는, 북한과 가까운 섬인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육지에서 멀고 북쪽에 한참 치우쳐 있다.
우선 인천에서의 거리가 190㎞를 넘는다. 이는 서울에서 전북 군산이나 강원 동해에 이르는 거리다. 위치는 북한 황해남도의 서쪽 끝인 장산곶 바로 남쪽이다. 위도는 개성과 어슷비슷하다. 북녘땅까지 거리는 불과 15㎞ 내외.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하다.
백령도는 예부터 중국까지 이어지는 뱃길의 중간 기착지였다. 김대건 신부가 선교사 입국 루트를 개척한 곳이자 초기 기독교 선교 역사의 현장이었다. 이곳에는 서울 새문안교회(1885년)에 이은 우리나라 두 번째 장로교회가 1896년 세워지기도 했다.
백령도의 고구려 때 이름은 따오기 곡(鵠) 자를 쓴 곡도였다. 백령(白翎)이란 이름은 고려 시대부터 썼다.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백령도는 원래 황해도에 속했다. 광복 후 38선이 그어지며 경기도 옹진군으로, 이후 1995년 인천광역시로 편입됐다. 이런 이유로 백령도 주민의 상당수는 황해도가 고향이라고 한다. 고향이 지척이지만 그들은 선을 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북한과 가까워 군사작전지역으로만 인식됐던 백령도가 최근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며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인천관광공사에 따르면 백령도 방문객은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25% 정도 늘었다.
쾌속선으로만 4시간이 걸리는 먼 곳. 하지만 10억년 세월이 빚은 신비한 풍광은 관광객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 파도·비바람·시간의 합작품

백령도를 향해 가던 배는 파도에 춤을 췄다. 승객들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귀신 잡는다'는 해병들도 의자나 기둥을 붙잡았다. 그곳에 닿을 수 있을까. 내내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전 8시 30분 인천항을 떠난 배는 예정된 시간을 20분이나 넘겨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 닿았다. 세찬 바람을 등에 업은 거대한 화마(火魔)가 강원도를 집어삼킨 날이었다.
섬에 발을 디딘 사람들의 얼굴에는 안도의 미소가 깃들었다. 찬란한 햇빛이 쏟아진 그곳은 사나운 바다 날씨와는 달리 평화로웠다.
용기포 여객터미널을 나서자 첫인상이 예사롭지 않다. 단층 무늬가 또렷한 절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탄성은 아껴두도록 한다. 이 절벽은 백령도 곳곳에서 만나게 될 기막힌 풍경의 예고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백령도는 화산이 폭발해 생긴 제주도, 울릉도와 달리 해저 지형이 융기해 형성됐다. 섬 전체에서 퇴적암층을 흔히 볼 수 있는 이유다. 섬이 바다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파도는 깎아내고 비바람은 다듬으며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기를 10억년. 파도와 비바람과 시간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예술품을 빚어놓았다.
첫 방문지는 용기포 여객터미널에서 남쪽으로 700여m 떨어진 등대해변. 언덕을 넘어 비탈을 내려가자 탄성이 새어 나온다. 층층의 기암절벽과 괴석이 바다를 배경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길이 약 200m에 불과한 해변에는 층층 절벽이 둘러섰고 거대한 층층 바위가 가득하다. 하늘로 치솟을 듯한 로켓, 거인의 발, 바닷물이 드나드는 해식동굴 등 각양각색 바위가 이채롭다.
바다 건너에는 대청도가 수면에 기다랗게 엎드려 있다. 방문객들은 각종 기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뒤편 언덕 위에는 1960년대까지 뱃길을 안내했다는 하얀 등대가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 천연비행장과 콩돌의 교향악

등대해변에서 다시 언덕을 넘어 서쪽으로 이동하면 드넓은 해변이 호(戶)를 그린다.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된 사곶해변이다. 모래층 위에 고운 규암 가루가 쌓여 형성된 길이 2㎞ 해변으로, 썰물 때면 폭이 200m에 달한다.
해변은 표면이 단단해 자동차가 달려도 바퀴가 빠지지 않는다. 비행기도 뜨고 내릴 수 있는 천연비행장인데, 이탈리아 나폴리 해변과 함께 지구상 단 두 곳만 있는 특수 지형이다. 실제 한국전쟁 때 이곳은 비행장으로 사용됐고, 유엔군 작전 전초기지로도 활용됐다.
기자를 태운 관광버스가 사곶해변으로 들어섰다. 해변 위를 달리는 버스에서의 승차감은 갓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듯 부드럽고 매끄럽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자 갈매기 무리가 버스의 속도에 맞춰 날갯짓한다. 미세한 규암 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가끔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해변을 달리는 이들도 보인다.
백령대교를 건너 콩돌해안 쪽으로 가다 보면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란 간판이 나온다. 산길을 5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전망대에서는 사곶해변과 400여년 역사의 화동염전, 담수호가 발아래 내려다보인다. 드넓게 펼쳐진 해변과 바다 풍광이 무척 시원스럽다.



콩돌해안은 또 다른 볼거리다. 각양각색 자갈이 1㎞ 길이의 해안을 뒤덮고 있다. 이곳 자갈은 규암이 파도에 마모되며 형성됐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것부터 주먹만 한 것까지 흰색, 회색, 갈색, 청회색 등 형형색색 돌이 눈길을 끈다. 콩돌은 파도가 드나들 때마다 서로 몸을 부딪치며 경쾌한 연주도 들려준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해안을 거닐자 콩돌이 발바닥 아래서 사그락거린다. 콩돌은 발바닥을 찌르지 않고 부드럽게 자극할 뿐이다. 여름에는 뜨겁게 달궈진 콩돌에 누워 찜질을 할 수 있다. 자연이 1만5천년간 빚은 콩돌은 아주 매끄럽고 빛깔이 고와서 하나쯤 소장하고 싶지만, 반출이 금지돼 있다.
백령도 남쪽 장촌 해안에는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있다. 바다를 향해 돌출한 전망대에 서면 바로 아래에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뾰족한 바위가 내다보인다.
바위 주변으로 파도가 휘돌고 하얗게 부서지며 진짜 용이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바위 뒤편으로는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전망대 옆에서는 층층 절벽이 크게 구부러진 습곡구조(천연기념물 507호)를 관찰할 수 있다.



◇ 풍광 이채로운 하늬해변

용기포 여객터미널 북쪽에는 하늬해변이 있다. 녹조류로 뒤덮인 커다란 바위들이 해안선을 따라 나란히 분포해 있는데, 침투를 막기 위한 군사용 시설인 용치(용의 이빨)와 어우러져 이채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외계 행성에라도 온 느낌이다.
해변 한쪽에는 천연기념물 제393호로 지정된 감람암 포획 현무암 분포지가 있다. 이름처럼 녹색이나 노란색 암석 조각을 품은 검은 현무암이 있는 곳이다. 지하 수십㎞에 있던 감람암이 마그마에 붙들려 올라온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감람암을 품은 현무암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곳 해변은 해산물 채취 장소로도 유명하다. 백령도의 많은 해변처럼 이곳에는 커다란 갈색빛 다시마와 파래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바위는 온통 자연산 굴로 뒤덮여 있다. 굴 취재 도구와 초고추장만 있다면 굴로 배를 채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운이 좋다면 바위 틈새에서 소라와 해삼을 건져 올릴 수도 있다.
하늬해변 남쪽 언덕에는 끝섬전망대가 자리한다. 이곳에서는 시원스러운 바다 풍경과 용기포항, 대청도, 북쪽의 장산곶을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 내부에는 백령도의 역사와 생태계, 북한의 도발과 관련된 전시물이 있고, 연평도 포격 당시 사용한 포탄이 전시돼 있다.
백령도 북쪽 고봉포구 앞바다에는 사자바위가 있다. 사자가 바다에 누워 포효하는 모습처럼 보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그다지 사자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묘사를 넘어선 풍광, 두무진

백령도 여행의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서북쪽에 있는 두무진(頭武津, 명승 8호)이다. 그곳을 보면 이곳을 왜 '서해의 해금강'이라 부르는지 알 수 있다.
조선 중기 형조 정랑을 지낸 이대기는 백령도에 유배돼 두무진을 돌아보고 "바위틈의 돌구멍들이 선명하고도 맑게 빛나 깊고도 기괴함이 가히 형용할 수 없다. 참으로 조물주가 노련한 솜씨로 조화를 부린 것을 감추지 못한 곳"이라며 칭송했다.
두무진은 해안선을 따라 배치된 바위들의 모습이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하는 형상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거대하고 깎아지른 절벽과 바다에서 우뚝 솟은 바위는 육지에서 한 번, 바다에서 또 한 번 감상할 수 있다.
우선 두무진 포구에서 왼쪽으로 가면 두무진 산책로가 이어진다. 해안절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감상하는 코스다. 500여m를 걸으면 바다를 향해 우뚝 서서 호령하는 장군 같은 기암들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그 모습이 무척 압도적이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수직 암벽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데크 계단이 해안가로 이어진다. 조심조심 내려가자 기암절벽과 우뚝 솟은 형제 바위, 여기저기 해식동굴이 세찬 파도를 맞으며 서 있다.
길을 되돌아 전망대에서는 두무진의 비경과 멀리 장산곶이 건너다보인다. 인근 언덕에는 통일기원비가 북한 땅을 바라보고 서 있다.
이제 유람선으로 두무진을 돌아볼 차례. 두무진 포구 난간과 배에는 갈매기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포구에서 출발한 배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곧장 두무진 앞바다로 향한다.
유람선 스피커에선 선장의 리드미컬한 해설이 구수하게 흘러나온다. 해설에 따라 승객들의 고개는 동시에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웅장한 바위가 모인 선대바위다. 바위들이 온통 페인트칠한 것처럼 하얗게 보인다. 가마우지의 배설물이다. 돌연 가마우지 한 마리가 물고기를 물고 바위 중간쯤에 착지한다. 가만히 보니 새끼들이 고개를 내밀고 먹이를 받아먹고 있다. 가마우지 주변으로는 사냥한 물고기를 빼앗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갈매기들이 날갯짓하고 있다.
선대바위를 끼고 돌자 층층 무늬의 깎아지른 해안절벽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야말로 보기 드문 걸작이다. 초를 꽂으면 될듯한 촛대바위와 서로 꼭 닮은 형제바위, 바다를 향해 달리는 듯한 말바위가 차례로 나타난다.
절벽 8부 능선에는 해안포가 사라진 해병 초소도 볼 수 있다. 이어서 코끼리바위, 병풍바위, 죽순바위, 부처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부처바위 아래는 점박이물범(천연기념물 제331호)이 서식하는 곳이다. 점박이물범은 몸길이 1.4m, 몸무게 90㎏까지 성장하는데 최대 300여 마리가 백령도와 인근에서 관찰된다. 물범은 3월에서 11월까지 이곳에서 지내는데,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은 5∼10월에 볼 수 있다. 장장 4㎞에 걸쳐 이어진 두무진의 비경은 부엉이바위와 잠수함바위를 지나면 끝난다.
두무진 끝자락에서 유람선이 잠시 멈춰섰다. 왼쪽 멀리 언덕 위에 하얀 삼각형 조형물이 보인다. 천안함위령탑이다. 위령탑에서 바라보이는 바다에서는 2010년 3월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NLL(북방한계선)을 수호하다 폭침돼 승조원 46명이 목숨을 잃었다. 슬픈 바다를 뒤로하고 유람선은 뱃머리를 돌렸다.



◇ 효녀 심청 떠오른 연봉바위와 연화리

백령도는 소설 심청전의 무대로도 알려져 있다. 심청의 고향과 관련해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이곳 사람들은 백령도가 심청전의 배경이라고 믿고 있다.
백령면사무소가 있는 진촌리에서 '심청각 가는 길' 이정표를 따라 북쪽으로 비탈을 따라 1.5㎞ 정도 오르면 심청각에 닿는다.
가는 길 담벼락에는 심청전의 주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어 심심하지 않다. 심청각 뒤쪽에는 뱃머리에서 치맛자락을 움켜쥔 심청 상이 세워져 있다.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는 바로 두무진 앞바다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백령도 남쪽 끝에는 심청이 연꽃을 타고 떠올랐다는 연봉바위가 있고, 서쪽에는 심청이 탄 연꽃이 파도에 밀려왔다는 연화리란 이름의 마을도 있다.
심청각 안에서는 고서, 영화 대본, 판소리 등 소설 심청전과 관련된 것들을 볼 수 있다. 옹진군과 백령도의 주요 명소, 효(孝) 관련 전시물도 있다.
연화리 남쪽 중화동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인 중화동 교회가 있다. 중화동은 중국의 배들이 많이 드나들던 곳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구전에 따르면 1816년 기독교 한문 성경이 영국해군에 의해 전해졌고 우리나라 최초 기독교 선교사와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가 백령도를 통해 상륙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인구 4천여 명의 백령도에는 교회가 10개가 넘고, 3분의 2가 기독교 신자라고 한다. 이곳 백령기독교역사관에서는 한국 기독교 100년사를 살펴볼 수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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