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농촌 임실에 '치즈 씨앗' 뿌린 지정환 신부

입력 2019-04-13 14:27  

척박한 농촌 임실에 '치즈 씨앗' 뿌린 지정환 신부
산양 2마리로 치즈 생산, 말년에도 나눔의 삶 실천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용모 낯선 한 외국인 신부가 한국을 찾은 것은 1959년 12월.
6·25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부산항에 벨기에 국적의 디디에 세스테반스 신부가 도착했다.
이듬해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발령 난 그는 '정의가 환하게 빛난다'는 의미로 '정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성은 본명인 '디디에'와 비슷한 '지'씨로 정한다.
1964년 주임신부로 임실의 작은 성당을 찾은 그는 척박한 농촌을 먹여 살릴 방법을 고민하다 완주의 한 신부가 선물한 산양 2마리로 치즈 생산을 시도한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산양유에 누룩과 간수 등 온갖 재료를 더해봤지만, 기대했던 치즈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되레 산양유가 쉽게 상해 먹지도 못하고 버릴 때가 더 많았다.
지 신부는 고심 끝에 치즈 생산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국으로 향했다. 유럽의 공장을 돌며 장인들로부터 비법을 깨우친 그는 다시 임실로 와 맛과 향이 균일한 치즈를 생산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산양유로 치즈를 만든 그는 서울의 호텔과 레스토랑, 피자집 등을 돌며 판로를 개척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만든 치즈는 '신선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주문이 쇄도하자 지 신부는 젖이 풍부한 젖소를 키워 치즈의 생산량을 더 늘렸다. 낙농업의 불모지였던 임실이 한국 치즈 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된 순간이다.


지 신부는 목표했던 치즈 생산을 이루자, 주민들에게 대가 없이 모든 기술을 전수하고 권한을 물려줬다.
이후 전주와 완주 등 전북의 복지시설을 오가며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돌보는 데 힘썼다.
법무부는 한국 치즈 산업과 사회복지에 기여한 지 신부에게 2016년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했다.
지 신부는 한국인이 된 이후에도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나눔의 삶을 실천해오다 지병이 악화해 13일 전주의 한 병원에서 향년 88세로 영면했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고인의 시신을 중앙성당으로 옮기고, 장례 절차와 일정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jay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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