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 노모가 수령인 아들에게 훈계하다…조선시대 사람 가정교육

입력 2019-05-07 17:12   수정 2019-05-07 17:41

91세 노모가 수령인 아들에게 훈계하다…조선시대 사람 가정교육
"자녀 공부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부모의 지극 정성"
부모 가르침 평생 간직하는 삶의 지혜…국학진흥원 웹진 담(談) 5월호 펴내




(안동=연합뉴스) 김효중 기자 = "건장한 91세 노모가 수령인 아들에게 훈계한다."
한국국학진흥원이 '가정교육'이란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5월호를 펴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선조들 일기장에 담긴 가정교육을 성찰하고, 이 시대에 필요한 질문을 담으려고 했다.
7일 웹진 담에 따르면 전통 한국 가정에는 유교 규범을 중심으로 가정교육을 했으나 최근 핵가족에서는 독립심, 자주성 등 근대 덕목과 우수한 학업성적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선현은 가정교육을 어떻게 했고 지금 한국사회에도 면면히 살아있는 그 본질 가치는 무엇일까?
17세기 초반 경상북도 안동에 살던 김령이 남긴 일기 계암일록(溪巖日錄)에는 청백리 목민관으로 이름을 떨친 박선장(1555 ∼1617) 어머니가 남긴 훈계 이야기가 있다.
박선장은 4세에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어려서부터 모친의 각별한 보살핌으로 학문에 성취를 이뤘다.
당대 유림과 교류하며 후학을 양성하다 어머니 권유로 50세가 넘어 대과에 급제하고 1608년 54세에 예안 현감이 됐다.
김령 일기를 보면 1608년 예안 현감이던 박선장의 어머니는 91세였으나 여전히 시력과 청력이 쇠퇴하지 않았고 치아와 모발도 건강했다.
매번 수령인 아들에게 "아주 많이 삼가서 민간에 폐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라. 네가 잘못 다스리면 읍민들이 반드시 '저 늙은 할망구가 죽어야만 우리 수령이 떠날 텐데'라고 할 것이니, 두렵지 않겠느냐"고 훈계했다고 한다.
이에 김령은 "친절하고 간절한 뜻이 사람을 경복(敬服)하게 한다"고 기록했다.
남편을 먼저 여의고 아들을 훌륭한 학자이자 선생으로, 나아가 목민관으로 키워내야 하는 어머니는 91세에도 54세 아들이 바른길을 걷도록 가르치는 '자녀교육'에 책임을 내려놓지 않았다.
또 빠른 출세와 부귀공명을 좇는 것보다 사람으로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도리를 최우선으로 삼았으니 이 어머니 가르침은 지금 시대 가정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모든 선인이 그런 삶을 산 것은 아니나 유교 이념이 제시하는 가족 사이 관계는 참으로 이상적인 것이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해야 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이런 기본관계가 확장해 모든 사회관계로 뻗어 나간다는 것이다.
또 평생을 살아가는 정서적인 토대와 삶의 지혜를 가정교육으로 마련하게 된다.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 저자 어유봉(魚有鳳)은 1731년 60세에 금강산 유람을 하게 돼 기쁜 마음으로 떠났다.
그러나 정작 험한 산길을 수레도 없이 걸어가다 천 길 낭떠러지가 눈에 들어오자 겁이 더럭 났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밑을 제대로 내려다볼 수 없었다. 그때 어유봉은 어린 시절 험한 곳에 가지 말라고 심하게 야단치던 부모님 훈계를 떠올렸다.
이 순간 60세에도 부모님 훈계를 떠올리는 자신에게 두려우면서도 우습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고 야단친 부모님 과잉보호는 자녀를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다.
따라서 자녀 공부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부모 지극 정성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를 쓴 김택룡(金澤龍)은 1617년 6월 21일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아들 김각을 위해 지극 정성을 쏟았다.
미리 시험 보는 장소에 가보게 했고 머물 곳을 마련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연락했다.
시험을 보러 갈 때 타고 갈 말도 지인 집에서 구했고 시험에 쓸 붓을 빌려달라는 편지를 지인에게 썼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목욕재계를 했고 과거 답안을 쓰는 시험지까지 마련했다.
아버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으나 아들은 결국 과거시험에 실패했다.
게다가 대가족 사회를 이루고 살던 조선 시대에는 부모와 자녀 관계뿐만 아니라 조부모와 관계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하와일록은 류의목(柳懿睦·1785∼1833)이 12세부터 18세까지 기록한 생활일기다.
1799년 10월 아버지를 여읜 뒤 할아버지 세대와 맺은 돈독한 관계를 잘 기록해 놓았다.
류의목은 할아버지께 문안을 드리며 공부하다 의심나는 대목을 물었다. 이에 할아버지는 진지하게 답변한다.
그는 공부를 게을리하다가 할아버지께 지팡이로 맞기도 했다. 논어 말씀을 일상생활에 적용해 분노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다.
류의목은 앎과 행동이 일치하는 할아버지를 마음속 깊이 존경하며 얼마나 더 공부하고 몸을 닦아야 그 경지에 나아갈 수 있을지 학문 의지를 불태웠다.
또 할아버지 친구들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경산 할아버지에게 '문장'에 가르침을 받았고, 백곡 할아버지한테서는 '꾸준함' 중요성을 배웠다.
국학진흥원은 2011년부터 운영하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 조선 시대 일기류 244권을 기반으로 창작 소재 4천872건을 구축해 검색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국학진흥원 관계자는 "가족 모습은 시대 변화에 따라 외견으로는 많이 바뀐듯하다"며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근본 가치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조선 시대 가정교육 일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kimhj@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