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명필 김생 글씨 추정 비석 발견…"유일한 친필"

입력 2019-05-16 06:37  

신라 명필 김생 글씨 추정 비석 발견…"유일한 친필"
박홍국 교수, 김천 수도암 '도선국사비'서 22자 판독
정현숙 박사 "김생 글자 집자한 태자사비 글씨와 유사"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글씨에 몰두해 입신(立神)의 경지에 올랐다고 전하는 신라 명필 김생(711∼?)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발견됐다.
김생 글씨는 그가 죽은 뒤인 954년에 승려 단목이 집자(集字)해 만든 보물 제1877호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에 있으나, 진적(眞蹟·실제 필적)은 현존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생 친필로 보이는 글씨가 나타나 학계 이목이 쏠릴 것으로 전망된다.
불교고고학을 전공한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은 16일 "경북 김천 청암사 부속 암자인 수도암 약광전 앞 '도선국사비'에서 글자 22자를 판독했다"며 "글씨는 김생의 필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질이 화강암인 이 비석은 높이 177㎝, 너비 60∼61㎝, 두께 42∼44㎝ 크기다. 일제강점기에 새긴 것으로 짐작되는 '창주도선국사'라는 커다란 글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본래는 세로 길이 4∼5.5㎝인 글자를 200자 정도 새겼다고 박 관장은 설명했다.
비문은 8행으로, 행마다 26자가 있다. 박 관장이 확인한 글자는 7행 '입차비야'(立此碑也)를 비롯해 1행 '부진'(夫眞), 2행 '불은'(佛恩)과 '성덕'(聖德), 3행 '산밀'(山密) 등이다.



박 관장은 "비석의 표면 풍화가 심하고 색상이 밝아 명문을 판독하기 어렵다"며 "'창주도선국사'라는 글씨 때문에 옛 글자 50여 자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서예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박 관장과 함께 비석을 조사한 뒤 "전체적으로 북위풍 해서(정자체)로 썼는데, 행서(정자체와 흘림체의 중간)의 필의가 많다"면서 "태자사비와 글자가 거의 같다"고 주장했다.
최근 태자사비 명문 3천여 자를 모두 분석한 정 위원은 "수도암비는 7행 대(大)자의 마지막 획을 약간 아래로 처지는 점으로 처리했는데, 이는 태자사비와 매우 비슷하다"며 "비(碑)자와 야(也)자도 태자사비와 닮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수도암비 북위풍 해서가 태자사비 글씨보다 더 수려하고 전체적인 흐름이 자연스럽다"며 "수도암비 글씨는 현존하는 김생의 유일한 친필로 봐도 무방하며, 태자사비의 원본 중 하나로 간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관장도 "태자사비는 김생 글자를 모은 뒤 새겼다고 알려져 글자 크기가 제각각이고 어수선한 느낌이 있지만, 수도암비는 글자 크기에 차이가 별로 없고 단숨에 쓴 듯한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김생은 삼국사기에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나이 팔십이 넘도록 붓을 놓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그의 글씨를 '신품제일'(神品第一)이라고 평가했다. 김생 글씨는 대부분 불교나 사찰과 관련됐다고 전하는데, 수도암비도 불교 유물이다.
박 관장은 김생이 8세기 중·후반에 주로 활동한 인물인데, 수도암 대적광전이 이 시기에 처음 세워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원창 한얼문화유산연구원장 견해를 인용해 "대적광전 치석 기술은 통일신라 초기 감은사나 8세기 중반 불국사 건물 기단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며 "수도암 대적광전은 늦어도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반에 축조된 것 같다"고 전했다.



비석이 있는 수도암은 해발고도 약 970m에 있으며, 도선국사가 859년 창건했다고 하나 한국전쟁 때 건물이 전소됐다.
울주 성류굴 입구 명문, 경주 선도산 마애불 조상기 추정 명문, 김천 갈항사 비석 조각 등을 발견하고 조사한 박 관장은 2016년 11월 중순 김선덕 서진문화유산보존연구소장으로부터 수도암 비석에 작은 글씨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해 11월 27일 맨눈으로 산(山) 자 하나를 찾은 그는 12월 18일 재조사를 했으나 지(之)와 불(佛)자를 판독하는 데 그쳤다.
박 관장은 "겨울이고 지대가 높아 탁본 작업을 하지 못했다"며 "탁본을 해도 읽을 수 있는 글자가 10자 내외에 불과하다고 판단해 한동안 조사를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다 그는 지난 4일 처음으로 수도암비 탁본을 진행해 11자를 판독했고, 이후에도 정현숙 연구위원·이영호 경북대 교수·문화재 사진작가 오세윤 씨와 조사를 이어가 더 많은 글자를 찾았다.
박 관장은 "비석에 숨은 글자를 더 알아낼 가능성이 있어 탁본 전문가와 함께 추가로 비석을 조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암비 금석문 연구 결과를 오는 18일 오후 2시 동국대 정보문화관에서 열리는 신라사학회 학술발표회에서 공개한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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