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악명 떨쳤던 보안사 요원의 마음을 바꾸게 했을까

입력 2019-05-30 14:54   수정 2019-05-30 16:12

무엇이 악명 떨쳤던 보안사 요원의 마음을 바꾸게 했을까
505보안부대 출신 허장환씨와 인권 변호사 홍남순의 인연 관심
허씨, 홍 변호사 생가 복원식에 참석해 39년전 인연 회고


(화순=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민주화운동과 인권 활동에 일생을 바친 고(故) 홍남순 변호사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양심선언을 한 505보안부대 수사관 출신 허장환(71)씨와의 인연이 주목받고 있다.
전남 화순군 도곡면 홍 변호사의 생가 복원 사업 기공식 현장을 찾은 허씨는 30일 홍 변호사와의 만남을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허씨의 증언으로 재구성한 당시의 상황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다.
두 사람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최종진압된 직후 505보안부대 지하실에서 만났다.
당시 505보안부대 지하실은 5월 항쟁을 폭동으로 꾸며내기 위해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주요 인사들을 가둬놓고 고문을 자행하며 자백 진술을 받아내던 곳이었다.
허씨가 지하실에서 본 홍 변호사의 모습은 고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홍 변호사는 보안사 1차 조사에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거짓 자백을 했다가 군 검찰에선 진술을 모두 뒤집었다.
이에 군 검찰은 홍 변호사를 다시 보안사로 돌려보냈고 더 모진 폭행과 고문이 이어졌다.
얼마나 많은 고문을 당했던지 홍 변호사는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배를 깔고 엎드려 담당 수사관이 가져다준 진술서를 그대로 옮겨 적고 있었다.
하지만 홍 변호사의 강직한 눈빛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우연히 취조실에 들어선 허씨는 자신을 바라보던 홍 변호사의 눈빛을 "송곳 같았다"고 기억했다.
이후 1시간 30분여 동안 이어진 면담에서 홍 변호사는 허씨에게 되레 올바른 삶의 태도와 정의로운 인생의 의미를 설파했다.
평소 죄 없는 시민들을 정권 찬탈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허씨는 "홍 변호사와의 대화 이후 내가 가지고 있던 국가관이나 가치관이 180도 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대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올라온 허씨는 재판도 받기 전인 홍 변호사의 이름 옆에 '사형'이라고 적힌 서류를 보게 됐다.
홍 변호사가 5월 항쟁의 수괴로 몰려 있었던 것이었다.
허씨는 상급자였던 서의남 대공과장에게 이를 항의하다 심한 언쟁을 벌였고, 추가 조사를 받기 위해 사무실 근방에 대기하고 있던 홍 변호사는 이러한 모습을 보게 됐다.
허씨는 이때부터 동료 수사관들에게 홍 변호사에 대해 고문을 일절 금지하고, 군의관을 불러 치료를 받게 했다.
형량을 결정할 수 있는 수사 부서의 결정권자에게 찾아가 홍 변호사에게 적용한 형량을 낮춰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기도 했다.
이런 허씨의 도움으로 홍 변호사는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낮춰지게 됐고, 실제 재판에서도 무기징역을 받았다.
홍 변호사는 1년 7개월간 복역한 뒤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직후 허씨를 찾아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허씨는 군복을 벗어야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1988년 광주 청문회 당시 양심선언을 하게 된 것도,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당시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증언에 나선 것도 모두 홍 변호사의 영향이었다.
허씨는 "홍 변호사는 저뿐만 아니라 5월 항쟁 당시 광주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이셨다"며 "대한민국의 새로운 민주주의의 지표를 열어준 아버지"라고 말했다.
한편 화순군은 이날 도곡면 효산리에서 목조 초가집이었던 홍 변호사의 생가의 모습을 사업비 2억6천만원을 들여 원형으로 복원하는 사업 기공식을 열었다.
i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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