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만 남은 농촌…"외국인 없인 농사 못 지어요"

입력 2019-07-23 16:24   수정 2019-07-23 16:50

노인만 남은 농촌…"외국인 없인 농사 못 지어요"
홍성서 봉화까지 6시간 달려간 '원정 일꾼' 외국인 등 13명 사상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 인권 보호 방안 마련 계기 되길"


(전국종합=연합뉴스) "어느 순간부터 외국인 노동자들 없이는 농사를 짓기 어려운 세상이 됐어요."
22일 강원 삼척의 한 도로에서 승합차가 전복돼 4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친 가운데 탑승자들이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와 고령의 여성인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샀다.
이들은 일당 6만원을 받고 고랭지 채소 작업을 하기로 하고 충남 홍성에서 새벽 1시에 출발해 목적지인 경북 봉화를 향해 여섯 시간 넘게 달려가다 사고를 당했다.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 노동자도 마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손이 달리는 농촌 현실이 이 같은 참사에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충남 홍성군 장곡면에서 딸기와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 김필규(64) 씨는 22일 홍성읍 내 인력사무소에서 외국인 근로자 3명을 데려다 블루베리를 수확했다.
편하기야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좋지만 일당이 7만∼8만원에 달하는 데다 대부분 노인 여성들이라 힘쓰는 일에 동원하기 쉽지 않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대부분 농사일이 처음이지만, 워낙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김 씨는 "예전엔 외국인 근로자들이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 죄다 동남아시아 출신이었는데 이젠 러시아 국적 근로자들도 오더라"며 "농촌에 일하러 오는 젊은 사람들도 없을뿐더러 일당도 비싸 대부분 농가는 일당 6만∼6만5천원 정도면 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그는 삼척 전복 승합차 운전자가 홍성에서 '원정 일꾼'들을 모집한 부분에 대해 "1명당 5천∼1만원씩 받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소개해 주는 '작업반장'들이 마을마다 있다"며 "농가들도 불법 체류자라는 걸 알면서도 작업반장들이 소개하는 근로자가 더 능숙한 걸 아니까 쓰는 것"이라고 전했다.


합법적으로 단기 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농번기에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지만, 연중 수시로 인력이 필요한 농촌에서는 이용에 한계가 있다는 게 농가들의 지적이다.
지방자치단체 초청으로 단기취업(C-4) 비자를 받아 입국한 외국인 계절 근로자는 최장 3개월 동안 지정된 농가에서 일할 수 있다.
2015년 충북 괴산군에서 처음 도입할 당시 19명에 불과했던 외국인 계절 근로자는 2016년 6개 지방자치단체 200명으로 확대된 뒤 2017년 1천86명, 2018년 2천822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농가의 수요 급증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41개 지자체에 2천597명이 투입됐다.
하지만 체류 기간이 길어야 3개월에 불과하다 보니 파종이나 육묘, 수확 등 시기별로 일 년 내내 인력이 필요한 농가는 활용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오종현 충남 금산 추부깻잎연합회장은 "깻잎 파종과 엽순 작업이 연중 이뤄지는데 3개월짜리 단기 인력으로 뭘 할 수 있겠느냐"며 "우리 지역 깻잎 농가는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를 1년이나 2년 단위로 고용한다"고 말했다.
금산군 추부면에서 깻잎 농가가 1천200농가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절반이 부부로만 이뤄진 소규모 자영 농가이고, 나머지는 필요할 때마다 알음알음으로 마을 주민이나 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한번 깻잎을 수확한 뒤에는 엽순이 무성히 자라는 3∼4일 뒤에야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제도는 농가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강원지역 농민들도 농가당 3∼4명 정도 배정되는 현행 외국인 계절 근로자로는 수십만평에 이르는 배추밭에 투입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토로했다.
영서 북부 고랭지 채소 재배지인 강원 양구군 해안면의 경우 농촌 인력이 없다 보니 외국인 근로자들에 의존해 작물을 수확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감자와 시래기 등 밭작물 수확 시기에는 외국인 근로자 수백명이 투입돼 작업한다.
이 중에는 계절 근로자로 등록된 외국인도 있지만, 상당수는 체류기한을 넘긴 불법 체류자 신분이다.
사과와 시래기 농사를 하는 신모(54) 씨는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수확 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농촌 인력이 부족하다"며 "계절 근로자로는 일손을 충당하지 못해 사실상 불법 체류 신분을 알고도 묵인한 채 작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털어놨다.
처음엔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고용을 꺼리던 농가들도 농촌인구 감소로 일손이 지속해서 줄면서 외국인 근로자를 외면하기 어렵게 됐다.
전국에서 경지면적이 네 번째로 넓은 전북(19만7천541㏊)의 농업인구는 2000년 38만9천명에서 지난해 20만9천명으로 18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었다.
그동안 농가를 번갈아 가며 돕는 '품앗이'나 인력 시장을 통해 인력 부족 문제를 임시로 해결해왔던 전북지역 농가들은 이제 관광비자를 받았거나 비자가 만료된 외국인 근로자를 인력 사무소 등을 통해 소개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도 관계자는 "농가 일손 부족이 심해지면서 앞으로 계절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는 농가가 더러 있지만,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는 무사증입국제의 허점을 이용해 입도한 불법체류자들이 일손이 부족한 농촌으로 몰리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불법체류자 인력을 농촌 현장에 중개하는 업체들도 서귀포 감귤 농가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 일감을 찾고 있는 형편이다.
이들은 대부분 작업반을 구성해 일손이 필요한 현장에 불법체류자들을 투입하는데, 과당 경쟁으로 인해 10만원 안팎이었던 외국인 근로자 일당이 5만∼7만원까지 내려갔다.
농촌 들녘을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워가는 게 현실이지만, 이들에 대한 처우는 수년째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금산 깻잎 농가는 농가당 1명에서 많게는 5명까지 동남아시아 국적의 여성들을 1년 단위로 고용하고 있는데, 이들 동남아 여성들은 대부분 임시 가건물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산지역 한 농민은 "농가에서 지은 가로 3m, 세로 6m 이하 크기의 5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평균 2명 정도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숙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평균 월급이 180만∼200만원인데도 농사일이 고돼 2년 넘게 버티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제주에서는 불법 체류자들이 건설 경기 불황으로 농촌에 몰리면서 하루 12시간 일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상선 충남자치연대 공동대표는 "삼척에서 사고를 당한 외국인 근로자들도 본국으로 쫓겨날까 봐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도망간 것 아니겠느냐"며 "이번 사고가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에 대해 인간적인 처우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지호 정경재 이상학 심규석 박주영 기자)
jyou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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