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전시 중단·협박도 서러운데…보조금까지 끊은 日정부(종합)

입력 2019-09-26 22:29  

소녀상 전시 중단·협박도 서러운데…보조금까지 끊은 日정부(종합)
"절차적 문제·전시 내용과 무관" 주장…사실상 검열·길들이기
전문가 "협박 피해자를 또 공격하는 셈"…아이치 지사 "재판으로 다투겠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한 예술 행사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일본 정부는 주최 측이 행사와 관련한 중요한 정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등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사실상의 검열이며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문화청은 소녀상을 선보인 기획전시 '표현의 부자유전(不自有展)·그 후'를 포함한 대형 예술제인 '아이치(愛知) 트리엔날레'에 보조금 약 7천800만엔(약 8억6천841만원)을 교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26일 밝혔다고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이는 일부 삭감이 아니라 전액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문화청은 문화행사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구상에 따라 아이치 트리엔날레를 국가 보조금 사업으로 채택했으나 전시 중단 등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재검토한 결과 아이치현이 안전 문제나 원활한 운영을 저해할 중대한 사실을 인식하고서도 이를 신고하지 않는 등 절차상 문제가 있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NHK는 전했다.
보조금 심사에 관여한 문화청 담당자는 "(전시) 내용을 판단 재료로 삼지 않았다. (주최 측이) 경찰에 상담하는 등 우려를 가지고 나름대로 활동한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 전시의 실현 가능성을 판단할 재료로 신고했어야 했는데 신고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문부과학상은 "안타깝지만, 문화청에 신고한 내용대로 전시회가 실현되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예술전을 여러 곳에서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신청한 대로 실현하면 보조금을 제대로 지급하게 될 것이므로 검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소녀상이 일본에서 논란을 일으킬 수 있고 전시회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는데 주최 측이 이를 정부에 보고하지 않았으며 실제로도 협박과 항의가 이어진 가운데 행사 일부가 중단됐기 때문에 보조금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설명으로 풀이된다.
전시회 내용이 아니라 절차적 문제가 보조금을 주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라는 것이 일본 정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찬반 대립은 물론 협박도 주로 소녀상을 둘러싸고 생겼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전시회 내용, 즉 소녀상 전시를 문제 삼아 보조금을 주지 않기로 결정한 것과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향후에도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들추는 불편한 전시를 하면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라고 본보기를 보인 것으로도 풀이된다.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의 중단 문제를 다루는 아이치현 검증위원회가 전날 조건이 갖춰지는 대로 속히 전시를 재개하라고 권고했는데 소녀상이 다시 전시되지 못하게 이에 맞서 압박을 가한 형국이다.
전문가는 주최 측이 협박을 당했고 이 과정에서 전시회가 중단됐는데 이를 이유로 보조금을 주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
일본 공립대인 슈토다이가쿠토쿄(首都大學東京)의 기무라 소타(木村草太) 교수(헌법 전문)는 "안전을 해쳤기 때문에 보조금을 교부하지 않는다면 협박을 당한 피해자를 추가로 공격하는 것이 되고 만다. 협박은 범죄이므로 경찰이나 사법 기관이 적절하게 대응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NHK에 의견을 밝혔다.
그는 "문화청은 다가서야 할 대상이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를 한 번 더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기무라 교수는 "보조금 교부는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이번과 같은 사례가 이어지면 "보조금을 통해 특정 사상 표현을 원조하지 않는 배제가 진전할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일본서 '소녀상' 전시 사흘만에 중단…"'표현의 부자유' 선언" / 연합뉴스 (Yonhapnews)
문화청이 문부과학성의 하급 기관인 점을 고려하면 아베 총리의 최측근이며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는 등 극우파로 분류되는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국민 여러분의 세금으로 마련한 보조금의 취급에 관한 일이므로 문화청이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국민의 세금'을 굳이 강조한 것에는 보수·우파 세력을 자극해 여론몰이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오무라 히데아키(大村秀章) 아이치현 지사는 보조금을 주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재판으로 다투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지난달 1일 개막한 일본 최대 규모의 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됐다.

일본의 공공 미술관에 평화의 소녀상이 처음 전시된 것으로 큰 관심을 끌었으며 동시에 우파 세력의 반대 의견 표명 및 협박도 이어졌다.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는 사흘 만에 중단됐으며 소녀상 전시 등과 관련한 협박 및 항의의 뜻이 담긴 전화·메일·팩스가 한 달 새 1만건 이상 쇄도했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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