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장] 모스크바 이즈마일로보 시장

입력 2019-11-12 08:01  

[세계의 시장] 모스크바 이즈마일로보 시장

(모스크바=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모스크바 이즈마일로보 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동화에서나 봄 직한, 각양각색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건물 모양은 아기자기하고 색깔은 알록달록하다. 보는 순간, 동심을 불러 일으킨다.



◇ 동화 속 그림 같은 시장
메트로 파르티잔스카야 역을 나와서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는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다양한 모양의 탑으로 이루어진 시장 건물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시장으로 바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왼쪽으로 주차장을 가로질러 가면 장난감 병정 같은 쌍둥이 타워와 성채가 나타난다. 이즈마일로보 크렘린이다.
이 건축물은 14∼17세기 스케치를 바탕으로 2001년에 지은 것이다.
크렘린(Kremlin)은 붉은 광장의 크렘린이 유명해서 고유명사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중세 러시아의 성채나 성벽을 이르는 일반명사로 당시 러시아 도시마다 하나씩 자리하고 있던 건축물이다.



성으로 들어가면 나무로 지어진 건물들이 모여있다.
처음에는 평일에 방문했는데 시장 뒤로 이어진 긴 건물들이 하나같이 텅 비어 있어 쇠락해 가는 시장 경기 때문인가 생각하기도 했지만, 두 번째로 토요일에 찾았을 때는 그 많은 건물에 벼룩시장이 끝도 없이 펼쳐진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장 입구에는 상설시장이 형성돼 있다.
여러 형태의 구식 카메라가 진열된 골동품 카메라상점, 옛 소련 시절 군복과 모자, 군사용품이나 옛날 지도 등을 파는 상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레코드판을 돌리는 축음기도 볼 수 있다.
흔한 품목은 러시아 목제인형 '마트료시카', 방한용 털모자인 샤프카, 목도리 등이다.
러시아의 겨울은 모자를 쓰지 않으면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을 만큼 매섭기에 러시아인들에게 털모자는 꼭 필요한 물건이다.
어떤 가게에는 여우나 늑대, 곰 얼굴이 생생하게 박제 형태로 붙어 있는 모피도 쌓여 있다.
겨울이 긴 곳이라 장갑이나 양말도 두꺼운 것이 많다.
칼이나 금속 골동품을 파는 곳도 여럿 있다. 하지만 물건이 아주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다.
이외에도 알 공예품, 보석함, 도자기, 나무 공예품도 많이 볼 수 있다.



한쪽으로는 꼬치구이인 샤슬릭을 파는 음식점이 나란히 있다.
샤슬릭은 닭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생선 등 종류도 다양하다. 샤슬릭을 굽는 상인들은 손님의 국적에 따라 여러 나라 언어로 손님을 유혹한다. 한 상인은 간단한 한국말을 멋지게 구사했다.
이곳의 샤슬릭은 동남아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꼬치구이보다는 훨씬 커서 하나만 먹어도 배를 채울 수 있다.



◇ 유럽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
상설시장을 둘러보고 이어진 골목을 따라가니 시장 골목을 가득 채운 좌판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구불구불하게 수백 미터나 계속되는 건물에도 온갖 물건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모스크바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이다.
진열된 물건은 다양하기 그지없다. 오래된 가족 기념사진도 있고 군인이나 노동자 사진도 있다. 온갖 세간살이를 다 들고나온 듯했다.
주전자, 컵 숟가락, 접시, 쟁반, 아기 인형, 가죽가방, 약병 등등 자세히 보면 한 집안의 역사와 살림살이를 다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것을 누가 사갈까 생각되지만, 가치를 알아보는 임자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활사 박물관을 둘러볼 때 어릴 적 흔하게 보아왔던 일상적인 물건들을 모아 놓으니 그 자체가 향수와 추억을 불러오는 보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런 물건들도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의 추억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한 골목에는 그림이 가득 진열돼 있다.
집안 벽면에 걸어두면 어울릴 것 같은 풍경화부터 꽃을 그린 정물화 등 시원스럽고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서적을 파는 가게, 엽서나 사진을 파는 사람, 다양한 모양의 만능 칼을 잔뜩 펼쳐놓은 아저씨, 각종 배지나 메달이 펼쳐진 가게 등이 줄지어 있다.
시장을 다 둘러보려면 상당한 체력이 요구된다.
물건을 파는 상인이나 물건을 고르는 손님이나 서둘러서는 안 될 듯하다. 진짜 좋은 물건을 낚아채는 전문가들은 시장이 열린 뒤 몇 분 만에 둘러보고 물건을 알아본다고 한다.
한 바퀴 돌아보고 나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다.
시장 건물이 사진 배경으로 잘 잡히는 노점에 자리를 잡고 샤슬릭, 볶음밥, 전통 빵으로 기력을 충전한 뒤 광장 주변 건물 탐색에 나섰다.
광장 한가운데 나무로 만들어 멀리서 보면 범선 같이 보이는 건물이 러시아 정교회인 성 니콜라스 교회다.
전통 예복을 입은 신자들이 모여 있어 사진을 찍으려 하니 교회 안에서는 촬영 금지라고 한다.
이 교회는 2000년에 지어진 것으로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목조 교회라고 한다. 주변 건물에는 보드카 박물관, 빵 박물관, 장난감 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이 있다.
그중 보드카 박물관을 찾았다. 입장료가 250루불이다. 아담한 박물관이지만 다양한 보드카가 전시돼 있다. 초창기 보드카 주조 과정과 장비도 볼 수 있다.



박물관을 나서니 결혼식 사진을 찍는 일행이 떠들썩하다.
이색적인 건물이 신랑·신부와 잘 어울려 사진 찍는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즈마일로보 시장을 제대로 보려면 벼룩시장이 열리는 주말에 가야 한다. 그래야 상설시장과 벼룩시장을 동시에 구경할 수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job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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