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의 기억](18) 통일은 '투자'vs'공포'…진보紙 사주·편집장도 갈려

입력 2019-10-31 06:39  

[서독의 기억](18) 통일은 '투자'vs'공포'…진보紙 사주·편집장도 갈려
통일 놓고 진영간 진영내 갈등…언론 창구로 다양한 통일담론 논의



[※ 편집자 주 = '비핵화'와 '평화'를 둘러싼 한반도 주변의 외교적 흐름 속에서 '통일'은 이제 현실적 주제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많은 연구와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지구촌으로 눈을 돌려 한반도 통일의 '유일한 참고사례'에 관심을 기울여볼 때입니다. 한반도에서 8천500여 ㎞ 떨어진 동서독의 교류·협력과 통일, 이후 통합 과정은 더 이상 '먼나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통일에 다리를 놓은 동서독 교류ㆍ협력이 이뤄지게 된 과정을 들여다보면 당시 서독 현실과 한국 간에 유사점을 상당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남남갈등' 못지않게 '서서갈등'이 치열하게 전개됐습니다. 서독에서도 경제적 지원과 인권 문제가 갈등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주년인 올해, 연합뉴스는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서서갈등'의 전개와 극복, 이 과정에서 민심의 흐름, 동서독 교류·협력의 일상화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내부의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 동독과의 공존에 성공했던 '서독의 기억'을 꺼내봅니다. 이제 겨우 서로에게 겨눈 총부리를 거두려는 한반도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연합뉴스는 올해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에서 새로운 자료 조사와 관점으로 취재, 8개의 관련 주제로 독자 여러분께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이 일곱번 째 시리즈로, '미디어 교류'를 주제로 3일간 3개의 기사를 연재합니다. 기획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정치+문화연구소'의 이진 훔볼트대 정치문화학 박사가 협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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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분단기 서독 뉴스통신사의 동독특파원 인터뷰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동서독 분단기에 통일과 대(對)동독 정책을 놓고 서독 언론에서는 이념적 성향에 따라 다양한 입장이 전개됐다.
당시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 기본법에 명시된 통일 명제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그러나, 진보 진영 내부에선 분단 상황 관리에 중점을 두는 분위기인 반면 보수 진영은 대외적으로 통일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1989년 동독에서 민주화 시위가 확산하고 동독 시민들의 탈출이 급격히 늘어나자, 언론에서는 통일 논의에 대한 폭이 커졌다.
보수적 성향과 진보적 성향의 언론 간에 논조 차이가 있었던 것은 물론, 진보적 성향의 언론 내에서도 입장이 갈렸다.
특히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에는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로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 및 민족주의의 경계, 통일 비용 문제, 통일 후 경제적 효과 등을 놓고 지식인들 간의 다양한 논의가 언론을 통해 펼쳐졌다.


'서독의 기억' 기획취재 과정에서 역사학자 안드레아스 뢰더의 논문 '독일 통일조약 전의 통일문제'(Die deutsche Frage vor dem Einigungsvertrag)와 과거 언론 기사를 조사한 결과, 진보 성향의 주간 차이트의 편집인인 테오 좀머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서독을 방문한 직후인 1989년 6월 23일 기사에서 통일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독일 통일의 뼈대를 옷장에서 다시 꺼내는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차이트의 창립자이자 발행인인 게르트 부케리우스는 같은 해 10월 13일 기사에서 "독일의 동쪽 국경을 인정받는 조건 아래에서라면 통일은 정당한 목표이며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훌륭한 투자"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자유주의 중도 성향의 주간 슈피겔도 발행인과 편집인이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창립자이자 출판인인 루돌프 아우크슈타인은 1989년 7월 3일 슈피겔 기사에서 통일을 위해 뜻을 모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편집인 에리히 뵈메는 같은 해 10월 30일 기사에서 통일을 반대했다.
서독의 dpa 통신 기자로 통일 직전 동독주재 특파원을 지낸 클라우스 블루메 dpa 통신 유럽지역 데스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뵈메 편집인이 통일 문제를 놓고 사주와 충돌하면서 결국 슈피겔을 떠났다"면서 "언론 간, 언론사 내부 간 의견이 달랐던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슈피겔과 차이트뿐만 아니라 진보 성향의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통일과 관련한 입장을 정하지 못한 채 지식인들의 여러 의견을 실었다.
당시 정치권에서 진보 성향의 사민당 내부의 경우, 유력 정치인인 오스카 라퐁텐은 통일을 급격히 추진하기보다 동독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경제 회생을 돕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신(新)동방정책을 추진해 동서독 교류·협력의 기틀을 닦은 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통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와 달리 일간 디 벨트와 빌트 등 보수 성향의 언론은 시종일관 통일을 강조해왔다.
보수 성향의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은 통일에 호의적인 논조를 보여왔으나, 현실적인 논의에는 뛰어들지 않았다.
1980년대 초반 이후 재집권한 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도 통일 문제를 놓고 다소 미묘한 분위기였다.
적극적인 통일 정책을 요구하는 당내 목소리가 높았지만, 유럽의 통합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아 갈등을 빚었다.
다만, 기민·기사 연합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헬무트 콜 총리의 지휘 속에 적극적인 통일 정책을 추진했다.
서유럽 국가들과 서독의 좌파 지식인들은 세계대전을 2차례나 일으킨 독일이 통일 이후 강성해질 경우 다시 잘못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유럽 통합을 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분위기였다.
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 통일 문제를 둘러싼 각 언론의 태도는 동서독 교류·협력의 안정기인 1980년대에 내내 지속되어온 것이었다.
통일이 현실화하기 전까지 진영 간, 진영 내 이견이 있었던 셈이다.


특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통일이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고민이 된 이후에는 통일을 놓고 다양한 담론이 폭발적으로 전개됐다.
지식인들의 다양한 의견은 언론이라는 공론의 장에서 표현됐다.
언론을 통해 민족주의의 발호 등을 경계하며 차분하게 급격한 상황에 대해 성찰하는 지식인들의 의견이 전달됐다.
작가 귄터 그라스는 1990년 2월 "현재 독일에 대해 생각하고 독일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이들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치학자 마가리타 마티오폴로스는 1989년 11월 17일 차이트 기고문에서 "동독인들이 원하는 것은 개혁이지 통일이 아니다"라며 "유럽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독일의 분단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도 1990년 3월 30일 차이트 기고문에서 "독일 통일 과정의 뿌리는 볼이 포동포동한 자들의 욕심 어린 독일 마르크-민족주의에 있다"면서 "민족성과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목발 삼아 통일 논의가 지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달리 역사학자인 크리스티안 마이어는 1990년 4월 24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 기고문에서 "결핍경제에서 고난을 겪었던 동독 시민의 경제적 욕구를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하버마스를 비판하면서 같은 언어와 역사 그리고 역사적 책임을 공유하는 독일 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역사학자 토마스 니퍼다이도 1990년 7월 13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 기고문에서 하나의 민족적 정체성을 가진 독일인은 하나의 국가를 원한다며 통일을 지지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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