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안데르탈인, 현생인류와 '질병 싸움'에서 져 멸종

입력 2019-11-08 15:56  

네안데르탈인, 현생인류와 '질병 싸움'에서 져 멸종
美연구팀 수학모델로 분석…잉카 멸망 시나리오와 비슷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현생인류와 경쟁하다가 약 4만년 전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은 에스파냐 원정대에 맥없이 무너진 잉카제국처럼 현생인류가 가진 질병 때문에 멸종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에 따르면 이 대학 생물학과 박사후 연구원인 길리 그린바움이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질병 전파와 유전자 이입을 수학모델로 분석한 논문을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인션스(Nature Communications)' 최신호에 발표했다.
고고학적 증거를 토대로 볼 때 현생인류는 약 13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와 지중해 동부 레반트에서 네안데르탈인과 처음 접촉했으며 이후 수만 년을 공존하다가 네안데르탈인만 멸종했다.
인류의 사촌 격인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원인에 대해서는 지능이 앞서고 도구도 발달한 현생인류와의 경쟁에서 도태됐다는 주장에서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연구팀은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간에 레반트에서 첫 접촉이 이뤄진 이후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지고 현생인류가 레반트를 넘어 유럽으로 확장하기까지 수만 년이나 걸린 점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수학모델을 통해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처음 접촉했을 때 서로가 면역력을 가진 독특한 질병으로 보이지 않는 질병의 장벽이 생겨 상대방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고 수만 년간 불안한 균형 상태에서 공존한 것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런 균형은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이종교배로 양측의 면역 관련 유전자를 모두 물려받은 혼혈 인간이 태어나고, 이 유전자가 두 그룹 내로 서서히 퍼져나가면서 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현생인류가 가졌던 아프리카의 열대성 질병이 네안데르탈인이 갖고 있던 질병보다 더 치명적이고, 종류도 많은 것으로 가정했으며, 이런 작은 차이가 서로 간의 균형을 깨고 현생인류가 레반트를 넘어 유럽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 질병에 대한 충분한 면역력을 확보한 뒤에는 치명적인 무기나 더 발전한 사회구조 등 다른 장점이 작동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수학모델에서는 두 그룹 간의 질병 부담이 처음에는 차이가 작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커져 결국 현생인류의 조상이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바움 박사는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에 의해 추가된 질병의 부담에서 거의 극복됐을 때도 네안데르탈인은 여전히 현생인류의 질병에 취약했을 수 있다"면서 "현생인류가 유라시아 대륙 깊숙이 진입했을 때 현지의 네안데르탈인은 이종교배를 통한 면역 유전자의 보호조차 받지 못해 더 취약했을 것"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이번 시나리오가 15~16세기에 아메리카대륙에 도착한 유럽인들이 더 강한 질병으로 원주민을 절멸시켰을 때와 비슷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이 가설이 정확하다면 이를 입증하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레반트에 공존했을 때 두 집단의 인구밀도가 그 이전이나 다른 지역에 비해 낮았으리라는 것도 그 중 하나"라고 했다.
eomn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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