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홍콩선거 승자들 맨 먼저 찾은 '시위대 최후보루' 이공대

입력 2019-11-26 00:01   수정 2019-11-26 13:33

[르포] 홍콩선거 승자들 맨 먼저 찾은 '시위대 최후보루' 이공대
'쇠망치 테러' 당한 지미 샴 참석…이공대 잔류자 '정신착란' 시달려
'분위기 바뀐 시위현장' 홍콩 경찰, 강경진압서 '온건대응' 급선회
친중파 대표적 인물 근처 지나다 시위대에 포위돼 온갖 욕설 세례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우리 당선자들은 선거 승리의 밤까지 단 한시도 홍콩이공대 내의 동지들을 잊은 적이 없다"
전체 452석 가운데 무려 388석을 '싹쓸이'하며 홍콩 선거 사상 최초로 과반 의석을 차지한 범민주 진영 당선자들이 선거 다음 날인 25일 처음으로 향한 곳은 바로 홍콩 시위대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이공대였다.
범민주 압승 후 홍콩 이공대 시위 현장…경찰이 달라졌다? / 연합뉴스 (Yonhapnews)
이날 오후 4시 이공대 바로 옆 침사추이 백주년기념공원에는 60여 명의 범민주 진영 당선자들이 모여들었다.
지난 17일 밤부터 9일째 이어지는 경찰의 원천 봉쇄로 1천여 명의 시위자들이 경찰과 맞서다 체포되거나 투항한 바로 그 이공대였다.


이날 범민주 진영 당선자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3가지 사항을 엄중하게 요구했다.
경찰은 즉각 이공대 포위를 풀고 현장을 떠날 것, 이공대 내에 들어가 인도주의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할 것,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적 조사 등 시위대의 5대 요구를 즉각 수용할 것.
이들은 "날이 추워지고 음식이 떨어지면서 이공대 내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며 "이공대 내 동지들에게 정신착란 현상이 일어나는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바야흐로 닥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이공대 내에는 30여 명의 시위자가 남아 있으며, 이들은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인해 거식증, 언어장애, 대인기피증 등에 시달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윽고 이번 구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의 지미 샴(岑子杰)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달 정체불명의 괴한들로부터 쇠망치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는 등 선거 운동 기간 두 차례나 '백색테러'를 당한 그는 목발을 짚고 힘겹게 일어섰다.
지미 샴 대표는 "홍콩인들은 경찰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폭정에는 더더욱 굴복하지 않는다"며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민의는 홍콩 정부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권자들의 민의는 이공대를 지키고 있는 홍콩인들을 반드시 구해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도 이러한 민의에 따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입은 붉은색 티셔츠에는 '모든 홍콩인이 폭정을 몰아낼 것을 요구한다'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집회를 마친 범민주 진영 당선자들은 이공대로 향한 행진을 시작했다.
일부는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에게 이공대 사태 해결을 요구하기 위해 행정장관 관저로 향하기도 했다.
10여 분 후 집회가 열린 공원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이공대 출입구 중 한 곳에 도착하자 경계를 서고 있던 폭동 진압 경찰들은 황급하게 경찰버스 주위로 폴리스라인을 치면서 이들을 막아섰다.
당선자들과 함께 행진하던 한 50대 시민은 "폭력 경찰"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경찰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경찰이 되받아쳤지만, 곁에 있던 수십 명의 시민이 같이 소리를 지르자 움찔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시위 군중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는 지난주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시위가 열리자마자 진압에 나서 무자비하게 체포하던 지난주와 달리 범민주 진영의 압승이라는 사상 초유의 '선거혁명'이 일어난 이날 경찰은 가능하면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이날 침사추이를 비롯해 훙함, 야우마테이 등 이공대 주변 곳곳에서는 이공대 내 시위자들을 위한 지지 시위가 열렸다.


잠시 후 범민주 진영 당선자들이 도착한 또다른 이공대 출입구에서도 경찰과 당선자들의 격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당선자들은 "이공대 내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이렇게 전면 봉쇄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당장 봉쇄를 풀고 우리를 들여보내 시위자들과 만나게 해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경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병력 배치를 증강하며 맞섰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시민이 주위에 몰려들었다.
이들은 "이공대로 들어가 동지들을 구하자", "폭력 경찰을 즉각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고, 순식간에 주변에 몰려든 시민들의 수는 1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결국 시민들의 기세에 눌린 경찰은 위안랑 지역에서 당선된 로이 퀑 등 5명의 당선자가 이공대 내로 들어가도록 허용했다.
당선자들을 만난 이공대 내 시위자들은 "지지해주는 시민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다만 지난 18일 이공대 강경진압 때처럼 사람들이 체포되거나 다치지 않도록 경찰과 충돌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오후 1시 무렵 홍콩 도심 센트럴에서도 지난 11일부터 이어지고 있는 '점심 시위'가 열렸다.
센트럴에 모인 수백 명의 시민은 오른손을 번쩍 들고 손가락을 쫙 펴 보이면서 "5대 요구,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자유를 위해 싸우자. 홍콩과 함께", "광복홍콩 시대혁명" 등의 구호를 외쳤다.
쫙 펴 보인 다섯 손가락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을 말한다.
특히 이날 시위 때는 친중파 진영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인 레지나 입(葉劉淑儀) 신진당 대표가 근처를 지나가다가 시위대에 포위돼 온갖 욕설을 들었다.
시민들은 20여분 동안 그를 둘러싸고 야유를 퍼부으면서 "홍콩의 배반자"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폭동 진압 경찰이 도착해 호위하고 나서야 겨우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레지나 입 대표는 최근 노르웨이의 한 의원이 홍콩 시위대를 내년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을 때 "홍콩 시위는 홍콩을 해치는 파괴적인 운동으로, 노벨평화상 추천은 역겨운 농담에 불과하다"고 조롱했던 인물이다.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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