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편 저지 총파업으로 최대 위기 맞은 마크롱

입력 2019-12-12 03:00  

연금개편 저지 총파업으로 최대 위기 맞은 마크롱
총파업에 '정면 돌파' 선언…연금문제 총리에 맡기고 침묵 속 사태 주시
일주일째 파업에 철도망·파리 교통 '마비'…'25년만에 가장 강력' 총파업 확산 기세
의회 내 우파의 강력 지지 힘입어 의회 통과 낙관…파업 열기 계속될지는 미지수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의 연금개편 저지 총파업 국면이 점점 더 '강 대 강' 대치로 비화하고 있다.
일주일간 이어진 총파업이 프랑스 전역의 철도교통과 파리의 대중교통을 사실상 마비시킨 가운데, 프랑스 정부는 '더 오래 일하게 하겠다'는 연금개편의 큰 틀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다.
25년 만에 가장 강력한 총파업에 직면한 프랑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정면돌파 카드를 꺼내 들면서 집권 후 최대 위기가 전개될지 주목된다.

◇총리, 양보책 제시했지만 '더 오래 일해야' 기조 유지…'정면 돌파'
총파업 일주일을 맞은 11일(현지시간)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직종·직능별로 42개에 달하는 퇴직연금 체제를 포인트제를 기반으로 한 단일 국가연금 체제로 개편하는 기존 계획의 틀을 그대로 가져가겠다고 발표했다.
총리는 "보편적 연금체제를 구축할 때가 왔다. 새 체제가 공정하다고 믿기에 이 개혁을 완수할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 정면돌파 의지를 드러냈다.
새 체계를 1975년 이후 출생자들에게만 적용하고, 고소득자에게 기여금을 더 많이 내도록 하는 등의 양보책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현 수준의 연금을 수급하려면 더 오랜 기간 현역에서 일해야 한다는 틀은 그대로 둔 것이다.
연금개편은 마크롱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올해 하반기 최우선 과제로 밀어붙이는 의제다.
공무원, 예술가, 사기업 종사자, 교원 등 직종·직능별로 42개에 달하는 복잡다기한 연금체계를 단일 연금으로 전환하고, 수급액 산정 시 최고급여 기간의 평균을 내는 방식 대신 포인트제를 도입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개편 방향은 '연금을 제대로 받으려면 더 많이 더 오래 일하거나, 아니면 더 적은 연금급여를 감수하라'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연금개편을 통해 국가재정 부담을 줄여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 마크롱의 목표다. 이번에 연금개편에 실패하면 2025년까지 연기금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0.7%인 170억 유로(22조5천억원 상당)까지 불어날 것이라고 프랑스 정부는 예상한다.
또 단일연금 체제 도입으로 직업 간 이동성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경제구조에 활력을 준다는 구상이지만, 이런 방안들은 현재 전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다.


◇파리 대중교통 사실상 올스톱, 철도망도 마비…25년 만에 가장 강력한 파업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더 일하게 하고 연금은 덜 주겠다는 것"이라면서 지난 5일 총파업에 돌입했고, 11일로 일주일째 이어진 파업은 이미 프랑스, 특히 수도권 파리와 일드프랑스 지역의 교통망을 사실상 마비시켰다.
현재 전체 열차 노선의 80%가량이 취소됐고, 수도 파리는 버스·지하철·트램 등의 운행을 담당하는 대중교통공사(RATP)의 파업으로 대중교통이 실질적으로 올스톱됐다.
각급 학교도 교사 파업과 교통 마비를 이유로 휴교하는 곳이 많고, 직장인의 상당수가 연차를 내거나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직장인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경우도 많다.
파리 시내에는 공유 자전거·스쿠터 이용자가 급증했고, 차량공유 서비스인 우버는 수요가 크게 늘어 파리 시내 가격이 평소보다 2∼3배 이상 뛰었다. 정유 노조까지 파업에 가세해 석유 공급망에도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번 파업은 1995년 총파업 이후 프랑스에서 약 25년 만에 가장 강력한 파업으로 평가된다.
1995년 파업의 이유도 연금개편이었다. 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 재임 시 알랭 쥐페 총리의 중도우파 내각은 연금개편안을 만들어 밀어붙였지만, 3주간 이어진 대대적인 총파업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계획을 철회했고, 이후 시라크 정권은 심각한 레임덕에 빠졌다.
2003년, 2010년에도 프랑스 정부가 대대적인 연금개편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노동계의 대규모 저항에 직면해 흐지부지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재임 때인 2010년에도 은퇴 연령을 60세에서 62세로 올리는 법안을 겨우 통과시킨 것이 유일한 성과였다.
프랑스에서 연금개편에 반대하는 동력이 이처럼 강력한 것은 거의 전 국민에게 해당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크롱, 연금개편 문제 총리에 일임하고 침묵…사태 추이 주시
노후의 경제적 안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프랑스인들은 연금개편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가 8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3%가 연금개편 반대 파업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이번 총파업은 마크롱 대통령에게는 집권 후 최대 위기이기도 하다.
그는 취임 첫해 노동시장 유연화 방안을 주요 노조들의 강한 반발 속에 밀어붙여 관철한 데 이어, 작년 말과 올해 초 '노란 조끼' 연속시위 국면에서는 유류세 인상 철회와 최저임금 인상 등의 '당근' 제시와 대국민 토론 등의 방식으로 돌파했지만, 이번에는 예전과는 스케일이 다른 위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칸타소프르-원포인트가 총파업 시작 전날인 지난 4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에서 마크롱을 신뢰한다는 응답률은 27%로, 한 달 전보다 3%포인트 떨어졌다.
총파업을 주도하는 노동총동맹(CGT)의 뒤에서 사태를 관망해온 온건 성향의 민주노동연맹(CFDT)도 정부안을 "한계선을 넘어간 것"이라면서 파업 동참 여부를 저울질하는 등 사태는 더욱 확산할 기세다. 이미 CGT의 필리프 마르티네즈 위원장은 총리의 발표 직후 "정부가 국민을 농락한 것"이라면서 총파업을 이어간다는 뜻을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개편을 필리프 총리에게 일임하고서는 침묵 속에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총리가 제시한 양보안에 파업 열기가 가라앉을지, 아니면 정부의 정면돌파에 맞서 더 강력한 총파업이 이어질지 그 향방을 가늠하기는 아직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마크롱은 의회 내의 여당(중도)뿐 아니라 공화당 등 우파진영으로부터 연금개편 문제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개편안의 의회 통과는 무난하다고 보고, 시간이 지나면서 파업에 대한 여론의 피로감이 커질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IFOP의 프레데릭 다비 소장은 이날 르 몽드와 인터뷰에서 "마크롱은 현재는 여당과 우파진영의 강력한 '신성동맹'에 기대고 있다"면서 "국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인상을 주면서 개편은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정부로서는 패자로 보이지 않는 유일한 방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yongl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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