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골' 이란의 이례적 책임 자인…'스모킹건' 나온 듯

입력 2020-01-11 16:21   수정 2020-01-11 17:11

'강골' 이란의 이례적 책임 자인…'스모킹건' 나온 듯
"미와 대치 속 격추 확인되면 국제 여론 악화 판단"
미 무인기 격추 혁명수비대, 대공 방어능력·국민 지지 '퇴색'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8일(현지시간) 새벽 이란 테헤란 부근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여객기 추락 사건과 관련, 이란군이 사흘만인 11일 격추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이란 민간항공청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여객기가 격추된 것이 아니다"라고 단정했으나 하룻밤 만에 180도 태도가 바뀐 것이다.
비록 이라크 미군 기지에 대한 이란 혁명수비대의 미사일 공격 직후 미국의 반격을 예상해 전군이 최고 경계태세를 유지한 상황에서 발생한 의도치 않은 실수라고는 했지만, 민항기를 군이 격추했다는 치명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중동에서 일어나는 각종 무력 사태와 분쟁을 이란 탓으로 돌리는 서방의 전방위 공세에도 흔들리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던 이란이 여객기 추락과 같은 대형 사건에 신속히 책임을 자인한 것은 이례적인 모습이다.

이란은 이번 여객기 추락을 놓고 서방 정부와 언론이 격추설을 제기하자 '이란을 겨냥한 악의적 심리전'이라고 일축하면서 기계적 결함을 사고 원인으로 사실상 확정했다.
사고 조사를 총괄하는 이란 민간항공청장은 10일 오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조사 결과가 나와야 사고 원인을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격추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격추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란 측은 "격추 의혹을 들먹이는 서방은 증거를 이란에 달라. 미국 보잉사(제조사)도 조사에 초청했다"라며 자신의 결백을 자신하기도 했다.



이런 태도에서 급변해 이란이 고개를 숙이게 된 배경엔 부인할 수 없는 결정적 증거, 즉 '스모킹 건'이 확인됐고 이를 더는 감출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을 실시간으로 정밀 감시하는 미국의 군사 정찰 위성의 자료와 추락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외국 언론에 의해 공개되면서 음모론 수준이었던 격추설이 대세론으로 굳어지는 흐름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와 관련, 미국이 이란 내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는 주 테헤란 스위스 대사관을 통해 격추를 증명하는 자료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는 터키 주재 자국 총영사관에서 자말 카슈끄지가 사우디 정보팀에 살해되자 관련성을 극구 부인하다 터키와 미국에서 조금씩 기밀 정보가 흘러나오면서 일방적으로 궁지에 몰린 적이 있다.
'미사일 격추'라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한 이란 정부와 군부는 미국 등이 어느 정도로 확실한 자료를 확보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카슈끄지 사건 때처럼 서방 언론을 통해 격추를 증명하는 정보가 조금씩 흘러나와 자신을 옥죄는 상황을 우려했을 수 있다.
사우디는 그나마 친서방 외교와 무기 구매 등으로 국제 여론전을 주도하는 미국과 서방을 달랠 수 있었지만, 이들과 사실상 외교가 단절된 이란으로서는 격추설을 계속 부인했다가는 국제무대에서 회복할 수 없는 고립을 맞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빼도 박을 수 없는 증거를 외부에서 먼저 제시해 '외통수'에 몰리기 전에 자인하는 게 국제 여론전에서 그나마 유리하다고 이란 지도부가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대이란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제3국의 동참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이란은 우군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처지다.



이란이 신속히 책임을 인정한 데는 1988년 미국의 이란 민항기 격추 사건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란-이라크 전쟁 중이던 당시 이란항공 소속 여객기가 테헤란에서 두바이로 향하던 중 걸프 해역 상공에서 미 군함이 쏜 미사일에 격추돼 이란 국민 290명이 죽었다.
당시 미국은 적기로 오인했다고 해명했지만, 이란은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손해 배상뿐 아니라 지금껏 정치적으로 미국을 압박하는 재료로 사용한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979년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에 444일간 억류됐던 미국인 52명과 같은 수의 이란 내 표적을 특정했다고 하자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숫자 290'을 기억하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란은 이 사건에 대해 미국은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공격하는 불법적이고 비인도적인 행태를 하는 곳이라고 비판하고 미국과 비교해 도덕적, 법적 우월성을 과시하곤 했다.



이번 사건으로 이란 군부도 국내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지난해 7월 호르무즈 해협 부근 상공에서 미군의 첨단 무인기를 격추, 국내외에 깜짝 놀랄만한 대공 방어 전투력을 증명했다.
이란 내부에서도 혁명수비대의 대공 방어 능력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또 미국의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살해를 미사일로 보복한 혁명수비대에 대한 이란 내 지지도도 높은 편이다.
지난해 11월 휘발유 가격 인상으로 지도부를 향한 이란 국민의 불만이 커졌지만 솔레이마니 사령관 폭사, 미사일 대응이 이어지면서 다시 지지 여론이 결집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런 우호적인 여론이 무르익기도 전에 같은 날 발생한 민항기 격추로 이런 국민적 지지는 물론 혁명수비대가 자랑하는 대공 방어능력도 퇴색되고 말았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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