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해진 화웨이…"미국 더 제재하면 중국 정부가 반격할 것"

입력 2020-04-01 17:38  

독해진 화웨이…"미국 더 제재하면 중국 정부가 반격할 것"
제재에 코로나19 겹악재…"미국이 판도라 상자 열면 우리만 안 죽는다"
"미국 반도체 안 팔면 한국 삼성, 대만 미디어텍 것 쓰면 그만" 주장도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미국이 일단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부서지는 것은 우리만이 아닐 것이다."
중국 통신장비 제조사 화웨이(華爲)의 쉬즈쥔(徐直軍·에릭 쉬) 순환 회장이 지난달 31일 작년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처럼 미국을 겨냥해 노골적으로 거친 말을 내뱉었다.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되면서 큰 위기에 처한 화웨이가 더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미국에 맞서며 발신하는 메시지에 독기가 서려 있다는 느낌을 준다.
화웨이는 작년 5월 이후 미국의 제재를 받으며 미국산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게 돼 큰 어려움에 처했으면서도 겉으로는 애써 '끄떡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태연한 척하려 했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1일 차이신(財新) 등에 따르면 쉬 회장은 전날 실적 발표회에서 자사를 향한 제재 강도를 높여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미국을 겨냥해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쉬 회장은 미국이 만일 최근 언론 보도에서 나오는 것처럼 화웨이 반도체 부품 공급을 막는 추가 제재를 시행한다면 중국 정부가 반격 조처를 해 화웨이가 남에게 유린당하지 않도록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쉬 회장의 이 같은 말은 공개적으로 자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는 화웨이가 미국 정부에 당하는 것처럼 중국 정부 역시 미국의 5G 반도체 칩이나 이것이 포함된 스마트폰 등의 자국 내 판매를 금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일 이렇게 된다면 중국 기업들이 한국의 삼성전자나 대만 미디어텍, 중국의 유니SOC 등에서 5G 칩을 조달하면 그만일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끝내 이렇게 한다면 세계 산업 사슬 상의 누구도 혼자만 온전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면 세계 산업 사슬은 궤멸적으로 붕괴하고 부서지는 것은 화웨이 하나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이터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반도체 조달을 막아버리는 다양한 추가 제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미국 상무부는 제3국 기업 제품에 적용하는 미국 기술 비율 기준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방안을 다시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한국 등 제3국 기업이 미국의 제재 대상인 화웨이에 부품을 팔려면 미국 기술이 25% 이하로 계산될 때에만 가능하다. 이 기준이 다시 15%로 낮아지면 많은 기업이 추가로 화웨이에 물건을 팔 수 없게 된다.
나아가 미국은 화웨이의 반도체 수급을 통째로 틀어막는 더욱 치명적인 제재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차이신은 로이터를 인용해 미국 정부가 '외국직접상품규칙'을 수정해 미국산 반도체 생산 장비를 쓰는 제3국 회사가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화웨이에 반도체 제품을 팔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업계에서는 일련의 제재 구상이 특히 화웨이의 핵심 파트너인 대만 TSMC를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화웨이는 자회사인 하이실리콘(海思半導體)을 통해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 각종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지만 생산은 대부분 파운드리 업체인 TSMC에 맡긴다.
작년 5월부터 이어진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서서히 효과를 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웨이의 2019년 매출 증가율은 19.1%로 여전히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화웨이가 상당히 선전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속내를 자시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내상'의 흔적이 역력하다.
우선 작년 매출 증가율은 2018년 매출 증가율 19.5%보다 0.4%포인트 낮아졌다. 특히 순이익 증가율은 5.6%로 2018년의 25.1%에서 급감했다.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가 공급망을 긴급히 재편성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나가게 되면서 순이익 증가율이 크게 낮아졌다고 쉬 회장을 설명했다.
작년 하반기로 갈수록 매출 증가율도 떨어지고 있다.
작년 1·2·3분기 매출 증가율은 각각 39%, 12.83%, 26.74%였지만 마지막 4분기에는 매출 증가율이 7.73%에 그쳤다.
미국의 제재 중 화웨이가 가장 뼈아픈 부분은 구글의 정식 버전 안드로이드 OS를 쓰지 못하게 된 점이다.
구글 모바일 서비스(GMS)가 지원되지 않는 바람에 메이트 30을 비롯한 화웨이의 신작 스마트폰들은 유럽 등 기존 핵심 해외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중국에서는 '애국 소비'에 힘입어 작년 매출이 36.2% 늘었지만 유럽·중동에서는 매출 증가율이 0.7% 증가했다. 아시아·태평양에서는 13.7%나 감소했다.
14억 인구를 자랑하는 자국 시장에 기대 성장세는 어느 정도 유지했지만 화웨이가 새로 사활을 걸고 있는 소비자 가전 부문에서 거대한 '로컬 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위기감도 존재한다.
작년 초 만해도 화웨이는 2019년에 삼성전자를 따라잡고 출하량을 기준으로 세계 1위 스마트폰 제조사로 도약하겠다고 외쳤다. 그러나 캐널리스에 따르면 해외 시장 부진이 서서히 효과를 나타내면서 작년 4분기에는 도리어 삼성, 애플에 이어 3위로 내려앉았다.
중국에서 시작돼 세계로 번진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은 미국의 제재로 고통받는 화웨이에 더 큰 위기 요인이 되고 있다.
시장 정보 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화웨이는 코로나19 충격이 가장 극심했던 2월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 순위에서 샤오미(小米)에까지 밀려 4위로 떨어졌다.
코로나19로 유럽과 중동 등지의 경제가 크게 위축됨에 따라 현지 5G 네트워크 사업 수주 확대를 노리는 화웨이에도 악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쉬 회장은 "2020년은 힘을 다해 살아남아야 한다"며 "그래야 내년에 연간 사업보고서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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