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기본소득 이슈가 정치권의 쟁점적 논제로 떠올랐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공식회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비해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화두를 던졌다. 청와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조건 없이 매월 생활비를 주는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시기상조라며 선을 그었다. 전 세계적으로 사례도 많지 않고 많은 돈이 들어가는 만큼 재원 등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고민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우리 여건상 기본소득제 도입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렇더라도 진보진영의 배타적 담론으로 여겨졌던 이슈를 보수정당 대표가 들고나온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기본소득 논의의 화살은 시위를 떠난 셈이다. 여기에 여야의 대선주자급들도 앞다퉈 기본소득 문제에 한마디씩 거들고 있어 여야의 이슈 선점 경쟁이 불붙을 향후 대선정국에서 기본소득 문제는 자연스레 정치권의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기본소득의 공론화는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김 위원장의 말처럼 코로나19 충격으로 전 세계는 사실상 공황 상태에 빠져 있고 이 충격파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잘사는 나라, 못사는 나라 가릴 것 없이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가 기업을 살리고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넘는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 사태 이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펼쳐질 '직업의 종말'이나 플랫폼 노동 일상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보편적 복지에 기초한 기본소득의 공론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기본소득은 말만 무성할 뿐이지 실체가 없다. 수혜집단이 전 국민인지 아니면 특정계층 혹은 연령층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월급처럼 매월 지급하는 방안, 상황에 따라 한두 번 일시 지원하는 방안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결이 다르다. 기존의 복지체계를 그대로 두고 추가로 주자는 것인지, 복잡한 복지체계를 기본소득으로 통합하자는 것인지에 대한 주장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방식의 개념을 도입하느냐에 따라 소요되는 재원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김 위원장이 공론화한 기본소득은 얼핏 보기엔 얼마씩이든 꽤 광범위한 기본소득을 의미하는 것 같다. 3차례의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한 적자재정 상황에서 기본소득의 당장 시행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말에서 그런 속내가 비친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3차 추경안이 나오기 며칠 전에 모든 국민에 20만원씩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건의했다. 그는 경제의 원활한 순환을 위해 2∼3차례 재난 기본소득을 지원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생활비를 매달 지급하는 기본소득 개념과는 다르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광의의 기본소득으로 볼 수 있다. 여권의 김부겸 전 의원은 김 위원장의 기본소득 공론화에는 찬성하면서도 다른 복지를 없애고 기본소득으로 대신하는 개념이라면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각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소득 논의에 찬성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기본소득 담론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이미 비옥해질 대로 비옥해졌다.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취지에는 일정 부분 공감대가 이뤄졌다고 본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가 문제다. 전 국민에게 20만원씩을 지급하는 이 지사의 방식으로도 한 번에 10조원이 넘는 예산이 든다. 코로나19 극복과정에서 우리 재정은 이미 사상 유례없는 100조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당분간 경기회복은 기대하기 힘들고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정상적인 성장 궤도를 회복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세금이 덜 걷히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가채무비율은 43.5%로 선진국들보다 낮다고는 하지만 올라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급대상이 광범위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범위와 지급액에 따라 증세나 기존 복지제도 개혁을 동반해야 하는 고차원의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따라서 정치권은 미래 복지를 위해 당파적 이익이나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시간을 두고 해외사례와 국내 재정 상황을 넓고 깊게 연구하고 논의해야 한다. 다만, 민생 구제나 경제활력 제고 차원의 긴급 재난지원금 성격의 기본소득은 필요하면 당장이라도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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