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한국에 식민지배 사과한 간 나오토 담화 10년

입력 2020-08-22 07:07  

[특파원시선] 한국에 식민지배 사과한 간 나오토 담화 10년
한일관계 '격세지감'…징용문제 왜곡 일상화·일본 정부는 보복 시사
아베 총리 패전일 추도식에서 가해 역사 8년째 언급 안해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많은 손해와 고통에 대해 이에 다시금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2010년 8월 10일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일본 총리가 한국 국권 침탈(한일병합조약) 100주년을 앞두고 발표한 담화의 일부다.
이 담화가 특히 주목받은 것은 한국을 특정해 내놓은 사과의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가 이른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해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과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 후 역대 총리가 이를 계승한 담화를 내놓았지만 일본 제국주의 정책으로 피해를 본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간 나오토 담화는 식민지 지배가 한국인의 의사에 어긋나는 것이었다는 점을 명시했으며 민족의 자긍심에 큰 상처를 낸 일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물론 한일 병합 조약의 불법성이나 원천 무효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 한계라는 지적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한국을 위한 별도의 담화를 발표해 식민지 지배를 사과하고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한일 간 역사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간 나오토 담화의 약속에 따라 조선왕실의궤가 다음 해 한국에 반환되기도 하는 등 한국과 일본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였다.
과거사를 대하는 최근 일본의 태도나 한일 관계를 살펴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 몰라보게 변해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최근 도쿄에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한국인 징용 피해자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는 주장이 버젓이 전시돼 있고 인터넷에는 징용이 고급 돈벌이였다는 식의 역사를 왜곡하는 기술이 난무하고 있다.

일본 기업은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 이행을 거부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 진행 중인 한국 내 자산 매각 절차에 대해 일본 정부는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넣고" 대응하겠다며 보복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다.
일본이 정부 공식 담화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표명했다는 사실이 무색한 시절이 된 것이다.
한국을 비방하고 헐뜯는 혐한(嫌韓) 잡지 등이 판매 부수 상위에 오르는 일은 일상이 됐다.
우익 사관을 추종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7년 넘게 이어진 것이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아베 총리는 2013년부터 올해까지 8년 연속 패전일(8월 15일) 전몰자추도식 메시지에서 일본의 가해 행위, 아시아 여러 국가가 당한 손해와 고통, 이에 대한 반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1차 집권기였던 2007년 전몰자 추도식에서는 타국에 대한 가해의 역사를 언급하고 반성의 뜻을 표명했는데 2012년 12월 재집권 후에는 태도를 바꿨다.
자신을 포함해 앞서 역대 총리 10명이 걸어온 길을 뒤집은 것이다.

아베 총리는 올해 추도식에서는 "오늘 우리들이 향유하는 평화와 번영은 전몰자 여러분의 고귀한 희생 위에 쌓아 올려졌다는 것을 종전 75년을 맞은 지금도 우리들은 결코 잊지 않는다"며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고 말했다.
일본이 행한 가해의 역사를 언급하지 않고 침략 전쟁을 수행하다 목숨을 잃은 자국 전몰자의 공만 기린 셈이다.
아베 총리는 중일전쟁이나 태평양 전쟁 등이 침략 전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도 매우 인색했다.

무라야마 담화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며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고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베 총리도 무라야마 담화를 포함해 역사 인식과 관련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밝힌 적은 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행했다는 사실과 이에 대한 사죄를 직접 언급하는 것을 꺼렸다.

패전 70주년인 2015년에 발표한 이른바 '아베 담화'에서는 일본이 "거듭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 왔다"며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입으로 사죄하는 것을 피한 것을 물론이며, 사죄의 역사를 종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방점을 찍은 듯한 인상을 준다.
아베 총리는 올해 전몰자 추도식 메시지에서는 지난 7년 동안 사용했던 '역사를 겸허히 마주하고', '역사의 교훈을 깊이 가슴에 새기고' 등의 표현을 아예 삭제해 버렸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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