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취임] '제2의 냉전' 미·러 관계 더 악화할 수도

입력 2021-01-21 03:18   수정 2021-01-21 08:11

[바이든 취임] '제2의 냉전' 미·러 관계 더 악화할 수도
바이든 "러시아 '미국에 가장 큰 위협', 푸틴은 '폭력배'" 비판
러시아도 비우호적…인권문제·국제 현안 등 두고 대립 격화 예상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과 러시아 관계에도 일정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다수 전문가는 대선 운동 기간 바이든의 대러 강경 발언 등을 근거로 냉전 이후 최악 수준으로 평가돼온 미·러 관계가 나아지기보다는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러시아를 응징하려는 미 행정부 내 전문 관리들과 의회,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고집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불협화음이 사라진 점도 이 같은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러 관계는 그의 대선 운동 기간 발언들을 통해 상당 정도 예견됐다.

바이든은 지난해 10월 자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국가가 어디냐'는 질문에 "우리의 안보와 동맹 훼손이라는 측면에서 현재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러시아라고 생각한다"고 강한 경계심을 드러낸 바 있다.
그에 앞서 다른 행사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의 모든 '폭력배'를 포용하고 있다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소위 '스트롱맨'으로 불리는 권위주의 지도자들과의 친분을 강조해온 트럼프의 외교 접근법을 비판했다.
푸틴의 '정적'으로 통하는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독극물 중독 사건과 관련해서도 "푸틴이 시민사회와 언론인을 박해하는 동안 트럼프는 계속 러시아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더 비타협적인 대러 정책을 펼칠 것임을 짐작게 하는 대목들이다.
바이든 대통령을 바라보는 러시아의 시선도 곱지 않아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미 대선 개표 결과 발표 이후 이어진 주요국 정상들의 바이든 당선인 축하 대열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다 선거인단 투표에서 바이든이 승리를 확정지은 뒤인 12월 15일에야 뒤늦게 축전을 보냈다.
러시아와 푸틴에 비판적인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을 달가워하지 않는 러시아가 일부러 축전을 미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18일 연초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 방향에 대해 "미국 우월주의 노선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국과 러시아 억제가 (미국) 대외정책의 현안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라브로프는 바이든 대통령이 오바마 정권(2009~2017년)의 대외 정책 노선을 상당 부분 계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바이든이 토니 블링컨을 초대 국무장관에 지명하고, 웬디 셔먼과 빅토리아 눌런드를 각각 국무 부장관과 차관에 지명하는 등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했던 인사들을 대거 기용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오바마 정권은 지난 2009년 출범 이후 한동안 미·러 관계 개선을 위한 '리셋'(Reset·재설정)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시도가 실패하자 양국 관계는 '제2의 냉전'으로 불릴 정도로 악화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아의 민주화와 인권 운동을 지지하는 조치를 계속 내놓으면서 양국 관계가 틀어졌고,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 최악의 상태로 나빠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반적으로 오바마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를 이어받아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 국제 현안 등에서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러 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던 트럼프 정권 때보다 러시아에 대한 적대 분위기가 커지면서 대러 제재가 더 강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바이든은 지난달 말 러시아 정부가 배후로 지목된 미 정부기관 및 기업 해킹 사건과 관련한 보복을 경고한 바 있다.
동시에 지난 2016년 대선에 이어 지난 대선에서도 러시아가 자국에 유리한 후보(트럼프)를 당선시키려는 사이버 정보전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라 러시아의 선거 개입 시도를 응징하는 차원의 제재를 취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러시아 당국이 야권 운동가 나발니를 독살하려 했다는 의혹과 독일서 치료 후 귀국한 그를 구금한 데 대해서도 제재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우회해 독일로 직접 연결되는 '노드 스트림-2' 가스관 건설과 관련한 제재를 한층 강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등 분쟁 지역과 미국이 개입을 시도하는 우크라이나, 몰도바, 조지아(그루지야) 등의 옛 소련권에서도 미·러 양국이 충돌할 위험이 있다.
바이든 정권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의 선제적 비핵화 조치를 더욱 단호하게 요구하며, 유엔 안보리 제재와 일부 국가들의 독자적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하는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바이든이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 때 파기한 국제조약에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만큼 서방과 이란의 핵 합의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계속 유지하는 문제에선 러시아와 보조를 맞출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와 함께 다음 달 만료되는 신 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New Start) 연장 등 군축 및 핵전력 통제 분야에서도 미-러가 합의를 할 확률이 트럼프 정권 때보다 더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cjyo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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