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숨 쉴 산소가 없다는 것…코로나19가 만든 디스토피아

입력 2021-01-31 07:07  

[특파원 시선] 숨 쉴 산소가 없다는 것…코로나19가 만든 디스토피아
멕시코·페루 등 환자용 산소 수요 폭증으로 품귀현상 지속
멕시코 한인도 '산소난'…잊고 지낸 '산소' 단어, 핵심 키워드로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초록색 금속 산소탱크가 줄지어 늘어선 모습이 외신 사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쯤이었다.
남미 페루의 어느 도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을 위한 산소를 충전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였다.
의료용 산소를 직접 사다 날라야 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늘어났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점도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공기 중에 늘 있는 산소가 부족하다는 것이 무언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비현실적인 장면은 시차를 두고 중남미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다.
볼리비아, 브라질 등에 이어 기자가 머무는 멕시코에서도 '산소 부족'이 현실이 됐고, 산소 충전을 위해 늘어선 줄, 산소탱크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는 먼 곳의 일이 아니었다.



인구 1억2천600만 명가량의 멕시코에선 최근 하루 2만 명 안팎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1분에 1명꼴로 환자들이 사망한다.
감염자가 쉴 새 없이 늘어나자 병상은 포화상태가 됐다. 집에 머물다 증상이 갑자기 악화한 환자들이 급히 부른 구급차는 빈 병상을 찾아 몇 시간을 헤매야 하는 상황이다.
병상이 없어 입원하지 못하거나 비싼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집에 머무는 이들의 상태가 악화해 산소포화도가 낮아지면 집에서라도 의료용 산소를 공급받아야 한다.
수요가 갑자기 늘자 산소탱크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그나마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가 됐다. 정부는 다 쓴 산소통을 다른 이들을 위해 반납해 달라고 여러 차례 호소했다.



멕시코에 사는 한인들도 '산소난'을 피해 가지는 못하고 있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지난해 9월 급히 예산을 받아 한인들을 위한 산소탱크 4개를 급히 구입했다. 도저히 산소탱크를 구하지 못한 한인들이 빌려 가 요긴히 쓰고 있지만, 지금은 그 4개도 부족한 상황이다.
박재일 주멕시코 대사관 영사는 "당시에도 구하기 쉽지 않아 웃돈을 주고 겨우 샀는데 더 늦었으면 구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산소탱크 문의와 요청이 꾸준히 온다"고 전했다.
산소탱크가 있어도 산소가 계속 충전돼야 한다. 수요가 폭증해 출장 충전은 여의치 않고, 가족 중 누군가가 충전소에 가서 줄을 서야 한다.
코로나19에서 회복 중인 지인을 위해 15ℓ 산소탱크를 이틀에 한 번씩 충전했던 한 남성은 "오전 7시에 가면 4시간쯤 기다려 받을 수 있다. 더 늦으면 산소가 떨어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좀처럼 뉴스에 등장할 일이 없던 '산소'라는 단어는 요새 멕시코에서 핵심 키워드다.
'산소'와 '산소탱크'는 구글 주요 검색어가 됐고, 언론은 "산소 충전하는 곳", "산소포화도 측정하는 법" 등의 정보 기사를 보낸다.
산소탱크를 놓고 강도나 절도, 판매 사기 등 다양한 범죄도 잇따른다.
그런가 하면 할아버지가 쓸 산소탱크를 사기 위해 고이 기른 머리카락을 판 10대 소녀, 산소탱크 살 뭉칫돈을 잃어버렸다 경찰 덕에 극적으로 찾은 청년의 사연도 전해진다. '미담'이지만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의료 인프라가 열악하고 코로나19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한 일부 국가에선 병원에서조차 의료용 산소가 부족해 확진자들이 죽어 나가기도 한다.
너무 당연해서 잊고 지낸 산소의 중요성을 코로나19는 잔인한 방식으로 일깨우고 있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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