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폭로' 리원량 떠난지 1년…'통곡의 벽' 찾는 중국인들

입력 2021-02-07 06:56  

'코로나 폭로' 리원량 떠난지 1년…'통곡의 벽' 찾는 중국인들
공식 추모 부재 속 인터넷서 조용한 추모 열기…중국서 외면받는 '열사'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우리 병원에서 7명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았다."
2019년 12월 30일, 중국 우한중심병원의 한 젊은 안과 의사가 스마트폰을 켜고 의대 동창 단체 대화방에 짧은 경고의 글을 올렸다.
이를 본 의사들이 놀라 각자 자기 지인들에게 이 소식을 퍼 나르면서 우한(武漢)에서 무서운 호흡기 질환이 확산 중이라는 소식이 중국 전역에 급속히 번져나갔다.
당국이 감추려 한 진실이 온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날 밤 우한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시 보건 당국은 철야 회의를 열고 '원인 불명 폐렴'이 유행 중이라는 사실을 대중 앞에서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의사는 곤란한 처지가 됐다. 새해 벽두인 1월 3일, 서슬 퍼런 공안이 그를 불렀다. 결국 그는 유언비어를 유포했다고 인정하는 '훈계서'에 서명하는 처벌을 받았다.

7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 자신 역시 이 병으로 숨지고 만 중국 의사 리원량(李文亮·1986∼2020)이 숨진 지 꼭 1년이 됐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는 사망 1주년을 맞아 '호루라기를 분 사람'(whistle blower·내부고발자)으로 불리는 그를 추모하는 공식적인 움직임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거꾸로 당국은 리원량 추모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홍콩 명보(明報)에 따르면 베이징 설치 미술가 왕펑(王鵬)은 최근 리원량 추모 전시회를 준비했지만 당국으로부터 "국가에 먹칠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고, 그의 작업실은 강제 철거됐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중국에서 최근 '호루라기를 분 사람' 같은 민감한 단어들이 삭제되는 일이 빈번하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이 스스로 '열사'로까지 추서한 리원량이 재조명받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그가 코로나19 확산 초기 은폐·축소에 급급했던 중국 당국의 어두운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민감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작년 2월 7일 리원량의 사망은 중국 당국을 향한 대중의 불만이 분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대중의 불만 표출 강도는 근래에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해 중국 공산당은 큰 위기에 직면했다.
중국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미국 등 선진국이 큰 혼란에 휩싸인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회주의 체제 우수성'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주입, 상황은 크게 반전시켰다는 점에서 리원량이 재조명받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당국의 철저한 외면에도 많은 중국인이 리원량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계정에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그가 병상에 있던 작년 2월 1일 마지막으로 남긴 웨이보 글에는 지금까지 총 100만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많은 중국 누리꾼이 그를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리원량의 마지막 글 밑에 매일 수천개의 댓글을 단다. 사람들은 이 댓글 창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零天**'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은 리원량의 웨이보에 "1년이 지났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던 당신 병원의 간부는 여전히 그대로고 이 세계는 어지러움으로 가득 차 있어 아무것도 투명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이 구름 위에서 아들딸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기 바랍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34세를 일기로 숨진 리원량에게는 어린 딸과 아들 두 자녀가 있다. 리원량이 숨질 때 부인의 배 속에 있던 아들은 작년 6월에야 태어나 아빠의 얼굴을 직접 보지도 못했다.
리원량 사망 1주기를 맞아 중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넓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누리꾼 '月移**'는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서 "리원량을 가장 잘 기리는 길은 어떤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사람이 다시는 처벌받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원량은 사망 전인 2020년 1월 30일 병상에서 SNS를 통해 한 마지막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헛소문을 퍼트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의 건강한 사회에서는 한목소리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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