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화해·역사적 진실 알리기' 일본 속 고려박물관 20돌

입력 2021-02-08 14:14  

'한일 화해·역사적 진실 알리기' 일본 속 고려박물관 20돌
새단장 거쳐 재재관…첫 기획전시 주제 '메이지일본 산업혁명 유산'
日정부 차원서 왜곡 '조선인 강제노동' 등 어두운 역사 집중 조명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시민이 만드는 한일 교류의 역사박물관'을 표방하는 고려박물관이 출범 20돌을 맞아 새 단장을 거쳐 다시 문을 열었다.
이름 때문에 한국의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고려박물관은 일본에서 한인타운으로 유명한 도쿄 신주쿠(新宿)구 오쿠보(大久保) 거리의 '한국광장' 건물 7층에 들어서 있다.
박물관 이름은 '코리아'(KOREA)의 어원인 '고려'(高麗·일본어 발음은 고라이)에서 따왔다.
박물관 측은 한국과 조선을 하나로 담은 말이라고 의미를 설명한다.
일본 시민과 재일 코리안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는 이 박물관은 무려 1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01년 12월 7일 문을 열었다.
이 박물관의 지향점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1598)의 두 차례 조선 침략과 일제 식민 지배의 죄책을 반성하고 역사적 사실을 마주하면서 한일 양국의 화해를 도모하는 것이다.
아울러 일본에 사는 조선·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 공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다.



NPO(비영리단체) 법인으로 등록된 이 박물관은 자원봉사 하는 활동가들의 손으로 지탱된다.
작년 11월 현재 회비를 내는 회원이 일본 전국에 691명이나 되고, 그중 120명은 자원봉사자로 등록돼 있다.
전시와 강연 등 이벤트를 기획하고 조직하는 일에 참여하면서 박물관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활동가는 63명이라고 한다.
이들의 힘으로 2001년 개관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까지 마련된 기획 전시 횟수는 45차례에 달한다.
전시 행사 외에 한일 우호 등을 주제로 한 음악회와 공연회는 17차례, 강연회와 강좌는 55차례나 열렸다.



고려박물관은 개관 20주년을 앞두고 새 단장(리뉴얼) 공사를 거쳐 이달 3일 다시 문을 열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일 간의 뜨거운 이슈에 집중해 역사적 사실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현대토픽 코너를 신설하는 등 전시 내용을 한층 풍성하게 꾸몄다.
재개관을 기념해 올 7월 4일까지로 일정이 잡힌 첫 기획 전시의 주제는 '왜, 한국은 일본의 유네스코 등재 취소를 요구할까?-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과 강제노동'이다.
이 전시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 왜곡을 서슴지 않고 있는 일제의 조선인 강제노동 역사를 있는 그대로 조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연합뉴스는 고려박물관의 무라카미 게이코(村上啓子·78) 이사장과 현대토픽 코너 담당인 오기하라 미도리(荻原みどり·72) 씨를 만나 개관 20주년의 의미 등에 대해 들어봤다.
공무원 출신인 무라카미 이사장은 자원봉사 경력 20년 차로, 고려박물관의 역사를 써온 산증인이다.
여성인권 운동에 몸담기도 했던 오기하라 씨는 이 박물관 자원봉사 경력 7년 차의 중진이다.



--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은 소감은.
▲(무라카미 이사장) 그동안 이런저런 경험을 쌓아왔고 그중에는 자산도 있다. 그런 것을 전시에 활용하고,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리모트(온라인 강연 등) 행사도 늘려나갈 생각이다. 재개관하면서 현대 토픽 코너를 새로 만들었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한) 1965년 이후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유야무야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그런 행태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 당사자들의 생각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상상할 수 있는 전시를 해 나갈 계획이다.
▲(오기하라) 나는 전후 태생인데, '일본은 왜 전쟁했고, 어떻게 졌는지' 등 그런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전쟁을 시작한 사람들이 전후에는 책임을 회피하려고 제대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하드라마나 언론을 통해 피해의 역사를 배웠지만, 가해의 역사는 배우지 않았다. 가해의 역사가 있어야 마땅한데 모르고 살았다. 아마 나보다 젊은 사람은 더 모를 것이다.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역사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되길 바란다.



-- 이전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간토(關東)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 등 지금까지 논란을 일으키는 역사 문제를 전시 주제로 많이 다뤘는데 재개관하면서 현대 토픽에 특화된 코너를 별도로 만든 이유는.
▲(오기하라) 미디어가 우경화해 한국 때리기가 심해진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역사적 과오를) 반성한다면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보상·배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피해 본 사람이 '괜찮다'라고 말할 때까지 가해자는 용서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입으로만 사과해 봐야 다른 정치인이 번복해 버리면 그만이다. 일본은 제대로 (사죄하고 반성)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도록 하기 위해서다.
▲ (무라카미) 그동안 자민당 소속이 아닌 총리 등이 몇 차례인가 사죄의 말을 했다. 하지만 자민당이 집권하면 다른 말을 하므로 정권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역사적 소양이 있는) 정치인이 총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1993년 8월 담화를 통해 옛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시절에는 아이들에게 역사를 제대로 전해야 한다는 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가 이어지지 못했다.



-- 신설된 현대 토픽 코너가 다루는 첫 주제가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과 조선인 강제노동'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오기하라) 일본 정부 예산지원을 받는 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가 작년 6월 정식으로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는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 등에서 '조선인 차별이나 강제노동은 없었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나는 작년 7월 거기에 갔었는데, 군함도 출신이라는 50대 정도의 남자 가이드가 붙었다. 그는 군함도를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선 곳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면서 낚시를 즐길 수 있는 등 아주 좋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듯해 전후세대인지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전쟁 말기에 강제로 끌려와 일하고 반항하면 죽음에 이르는 폭력을 당했던 상황을 알 리가 없는 사람이 가이드를 하고 있었다.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록은 역사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이고, 그것을 위해 정부 예산을 들여 산업유산정보센터도 만든 것이다. 가토 고코(加藤康子) 센터장은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군함도를 부(負)의 역사라고 말하지 말라. 일본을 떠받친 산업의 빛나는 역사가 서린 곳이다. 조선인도 그 일을 도왔다. 역사를 정(正)과 부(負)의 대립으로만 보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토 센터장 본인의 인식 속에 조선인 강제노동은 없는 것이다. 유네스코 회의 때 '제대로 그것을 표현하겠다'라고 해서 등록이 허용됐지만, 정작 건립된 것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산업유산정보센터다. 가이드가 강제로 붙어 자유롭게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은 일본의 근대화와 그 당시의 일본인이 대단했다고 생각해 버린다. 그래서 첫 주제로 이 토픽을 골랐다.



-- 현재의 한일 관계가 역사 인식의 차이로 최악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 (오기하라) 지금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신오쿠보(新大久保)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우리 세대는 한국 드라마에 빠졌고, 자녀 세대는 케이팝(K-POP)에 빠져 있다. 젊은 층은 한국의 문화, 사회로부터 활발하고 좋은 에너지를 받고 있다. 민간 차원의 교류가 중요하다. 민간교류를 통해 역사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신오쿠보를 찾는 젊은 사람들이 우리 박물관에도 들어와 전시물을 보면 좋겠다.
▲(무라카미) 두 나라 국민 간의 교류는 이뤄지고 있지만 (일본에는) 한국을 좋게 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미력이나마 사실을 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을 알리는 장소가 늘어 조금씩 역사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의 불시착'으로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주고 싶다.



(취재보조: 무라타 사키코 통신원)
parks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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