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수에즈 운하 우회로 다시 주목받는 희망봉을 가다

입력 2021-03-27 07:00   수정 2021-03-27 18:03

[르포] 수에즈 운하 우회로 다시 주목받는 희망봉을 가다




(희망봉[케이프타운]=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최근 수에즈 운하에서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좌초에 따른 정체 사태로 해운사들이 우회 항로로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 노선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6일 수에즈운하 통행 재개가 불투명해지면서 일부 화물선과 유조선들이 희망봉 우회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직접 찾아간 남아공 남서단 희망봉은 그러나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희망봉 바로 옆 바다에서는 서핑족 2명이 햇살 속에 한 폭의 그림처럼 푸른 파도를 가르고 있었다.
희망봉 앞바다에는 갈색 다시마가 가득하고 해변에까지 밀려와 있었다.
하지만 희망봉 노선이 만약 수에즈 운하 노선으로 대체된다면 희망봉 앞바다로 한층 더 많은 컨테이너선이 지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희망봉 노선은 과거에도 수에즈 운하의 우회 항로로 이용된 적이 있다.
26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수에즈 운하는 1967년부터 무려 8년간이나 폐쇄돼 희망봉을 우회하는 아프리카 노선이 대신 이용된 바 있다.
당시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6일 전쟁'으로 수에즈 운하를 사이에 두고 양군이 대치했고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당시에도 다시 맞섰기 때문이다.
1975년이 돼서야 운하에 가라앉은 배들이 치워지고 재개통됐다.
이 기간 해운사들은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세계 교역에서 시간과 비용이 추가됐다.



그러나 희망봉 노선은 역사적으로 각광받는 곳이었다.
1488년 포르투갈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1497년 바스쿠 다가마 등이 발견해 둘러 간 이래 이곳은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유럽 배들이 인도에서 향신료를 구해 유럽으로 나르기 위해 주로 이용하던 노선이었다.
그러나 1869년 수에즈 운하 개통으로 희망봉 노선은 점차 이용 선박이 줄어들었다.
희망봉 근처 걸어서 약 20분 거리에는 큰 등대가 언덕에 서 있다. 1911년 당시 포르투갈 배가 희망봉 앞바다에서 침몰해 해발 87m 높이에 새로 세워진 이 등대는 전망 좋은 관광지이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이날 찾는 사람은 어쩌다 삼삼오오 보일 뿐 많지 않았다.
희망봉 앞바다는 통상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에 따르면 더 정확히 말해 이곳은 대서양 권역이되 인도양의 따듯한 아굴라스 해류와 대서양의 찬 벵겔라 해류가 만나는 곳이라고 한다.
당초 희망봉은 워낙 비바람이 거세 디아스에 의해 '폭풍의 곶'으로 명명됐으나 나중에 당시 포르투갈 왕인 후앙 2세가 미래의 희망을 기원하며 '희망봉'(Cape of Good Hope)으로 바꾸었다.
이곳을 돌면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접어들면서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항해의 한 고비를 넘었다는 안도감이 들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지금 배들이 주로 정박하는 곳은 희망봉에서 차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케이프타운 항구다. 과거 이곳에는 배들이 항해 중간에 정박해 식량과 물을 구했다.
현재 케이프타운은 호화 크루즈선과 작은 컨테이너 선박의 기항지로 알려져 있다.

26일에도 케이프타운 항구 앞바다에 큰 배들이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 현지 가이드 등에 따르면 희망봉 노선을 해운사가 대체 노선으로 이용한다고 해도 당장 케이프타운 항구가 크게 붐비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케이프타운 항구는 남동부 더반항에 이어 남아공 제2의 항구다.
딱 1년 전 도입된 록다운(봉쇄령)으로 인해 크루즈 등의 입항이 금지되고 항구가 폐쇄됐다가 록다운이 완화되면서 다시 개항해 지금은 일부 러시아인을 빼고 주로 국내 관광객들이 비교적 많이 찾고 있다.
왕년의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유럽으로 가는 해운 물동량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sung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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