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큰 고비 넘긴 런던…거리공연 흥겹고 식당 야외석 북적

입력 2021-04-14 07:00   수정 2021-04-14 12:16

[르포] 큰 고비 넘긴 런던…거리공연 흥겹고 식당 야외석 북적
봉쇄와 백신 효과로 일상에 한 걸음 다가서…곳곳에 상흔 남아
붙어앉아 밥먹고 야외선 노마스크…신규확진 2천명대로 줄었지만 재확산 우려도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로 세상의 종말이 온 듯 적막하던 영국 런던 거리에 음악 소리가 들리고 활기가 돌고 있다.
봉쇄 완화 이틀째인 13일(현지시간) 런던 빅토리아역 주변엔 가족, 친구들과 함께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또 다른 가게로 들어가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서점 안에는 몇몇이 책을 고르고 있고 차를 파는 가게는 다기를 예쁘게 전시해두고 손님들을 불렀다. 과일을 파는 간이 가게에선 점원이 호객을 했다.

봉쇄가 한창이던 두 달 전에는 지나는 차와 사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텅 비고 영국의 겨울 날씨만큼이나 스산했던 이곳은 아직은 한산하지만 그래도 고요하진 않았다. 사람들의 얼굴에 가득했던 불안과 긴장도 옅어졌다.

코번트 가든엔 평일인데다가 식사시간이 아닌 늦은 오후인데도 식당마다 야외석이 거의 차 있었다.
종업원들은 주문을 받고 식당 안에서 음식을 가져오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저녁이 다가오며 날씨가 쌀쌀해졌지만 테이블마다 다들 환한 표정이었다.
가게에서 나오는 흥겨운 음악이 분위기를 더욱 돋웠고 거리 공연은 발걸음을 잡아끌었다.
번화가가 아닌 동네에도 식당 밖에 자리를 마련하고 손님을 받았고 펍 야외석에서 맥주 한 잔을 앞에 둔 이들의 웃음소리는 멀리서도 들렸다.

미장원에선 미용사가 얼굴 가리개를 한 채로 머리카락을 손질하는 모습이 열어둔 문 너머로 보였다. 미장원 예약은 길게는 몇 달씩 밀려있다.옷가게들은 겨울 옷을 치우고 여름 옷으로 바꿔 걸었다. 얼마 전만 해도 크리스마스 스웨터들이 걸려있었다.
기차와 전철에선 종종 옆에 붙어앉거나 서 있어야 할 정도였다. 봉쇄 중에는 한 칸에 1∼2명 뿐이었다. 친구로 보이는 장년의 여성들은 백신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버킹엄궁 앞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의 명복을 기리는 행렬이 계속 줄을 이었다.
영국은 작년 겨울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며 상황이 심각해지자 올해 1월 5일부터 강력 봉쇄에 들어가서 이동을 제한하고 슈퍼와 약국 외 상점을 닫는 강수를 뒀다.
동시에 백신 접종에 혼신의 힘을 다 해서 3천만명 이상이 1차 접종을 마쳤고 이제 만 45세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그 결과 한때 7만명에 육박했던 하루 신규 확진자는 이날 2천472명으로 줄었고 거의 100일 만에 상점 영업이 허용됐다.


이렇게 큰 고비는 넘겼지만 곳곳에 상흔이 남았다. 시내엔 아예 폐점한 가게, 야외석이 없어서 여전히 테이크아웃과 배달 주문만 받는 식당, 우편물만 가득 쌓인 관광 기념품 가게 등이 들뜨는 공기를 가라앉혔다.
또 아직도 식당은 야외 운영만 가능하고 실내에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다. 필립공 장례식에도 참석자가 30명으로 제한된다.
많은 기업들은 계속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금융회사들이 몰려있는 시티 오브 런던은 점심시간 풍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봉쇄완화 조치는 대체로 큰 고비는 넘겼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지만 바이러스 재확산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확진자 숫자가 적지 않은 수준인데 식당 테이블은 다닥다닥 붙어있고 손님 상당수는 백신을 맞지 않았을 젊은 사람들이다.
런던 시내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어쩌다 보일 정도다. 영국 정부는 야외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 않는다. 혼자 흰색 KF94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외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실내 체육관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운동을 하곤 한다.


한 국내 금융기관 현지 법인장은 "식당에서 점심 먹는 것을 직원들이 내켜하지 않아서 예전처럼 사무실로 배달을 시켜서 먹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백신만으로 바이러스를 막을 수는 없으며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영국은 5월 17일부터는 식당 실내 영업과 해외여행을 허용하는 등 규제를 한 단계 더 풀 계획이다. 그러나 이 일정대로 갈지는 앞으로 몇주간 확진자 추세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6월에 개최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코로나19 규제를 어떻게 적용할지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다만 해외에서 입국한 자가격리자들을 경찰이 점검하는 등 영국 정부도 지난해 봉쇄를 성급히 풀었다가 호되게 당했던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듯하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13일 봉쇄 완화로 코로나19 입원과 사망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면서 "백신 접종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감염 감소의 대부분은 봉쇄 덕에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과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필립공 추모 분위기도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12일에 펍을 방문하는 등 봉쇄 완화를 성과로 크게 홍보할 계획이었지만 17일 장례식을 앞두고 일정을 취소했다.

mercie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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