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 네타냐후 밀어내고 이스라엘 총리 예약한 베네트는(종합)

입력 2021-06-03 16:07  

'멘토' 네타냐후 밀어내고 이스라엘 총리 예약한 베네트는(종합)
네타냐후 수석보좌관으로 정계 입문…시오니즘·정착촌 운동으로 기반 다져
'증오와 갈등을 정치수단으로 활용하지는 않겠다' 공언해 오기도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이스라엘의 최장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71)를 밀어내고 차기 총리 자리를 확보한 극우 정당 '야미나'의 나프탈리 베네트(49) 대표는 네타냐후의 수석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불과 7석의 의석을 가진 소수당 대표지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반(反)네타냐후 블록'의 부족한 의석을 채우는 대가로 순번제 총리의 첫 주자 자리를 꿰찼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직후 이스라엘로 이주한 미국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최정예 특수부대인 '사이렛매트칼' 지휘관으로 복무하며 다수의 작전에 참여했다.
전역 후엔 미국으로 건너가 소프트웨어 회사 사이오타(Cyota)를 설립했고, 이를 매각해 큰돈을 벌었다.
이스라엘로 돌아와서는 2006년부터 2년간 당시 야당 대표였던 네타냐후의 수석보좌관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군 복무 시절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전투를 치르면서 느꼈던 정치권의 서투른 대응이 자신을 정치로 이끌었다고 밝힌 바 있다.
베네트는 이후 시오니즘(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민족주의 운동)과 유대인 정착촌 운동 지도자로 우파 색채를 굳혔다.
이후 리쿠드당에서 탈당, 정통파 유대교도 정당인 '주이시 홈'(The Jewish Home)에 들어가 당권을 잡고 2013년 총선에서 당의 원내 진출을 이끈다.



크네세트(의회) 의원이 되기 위해 미국 국적을 포기한 그는 네타냐후가 주도한 우파 정부에서 경제, 종교, 디아스포라(재외동포) 담당 장관도 맡았다.
2015년 총선 이후에는 교육부 장관과 예루살렘 담당 장관도 지냈다.
교육부 장관 시절에는 요르단강 서안 내 군사 활동을 비판하는 비정부기구(NGO) 회원의 학교 강사 초빙을 금지했고, 고대 유대 및 사마리아 유적지 방문을 늘리는 방향의 교육과정 개편도 단행했다.
베네트는 2018년 공석이 된 국방부 장관 자리를 노렸으나, 네타냐후 총리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베네트는 네타냐후와 반목했다.
같은 해 몇몇 동료 의원들과 함께 탈당해 새로운 정당인 '뉴라이트 당'을 창당했지만, 이듬해 총선에서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정치적 혼란 속에 의회가 해산되고 조기 총선이 예고되자, '주이시 홈', '독실한 시온주의자 당' 등과 함께 '우파 연합'을 결성했다.
이 우파 연합은 현재의 '야미나'로 이름을 바꿨고 그해 선거에서 7석의 의석을 확보해 원내 진출 정당이 됐다.
평소 네타냐후보다 자신이 더 강력한 우파 정치인이지만 증오와 갈등을 정치 수단으로 활용하지는 않겠다고 공언해 왔다. 또 2012년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극우 성향으로 보는 시각이 잘못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3월 총선 이후 베네트는 친네타냐후도 반네타냐후도 아닌 '제3지대'에 머물면서 '킹 메이커' 역할을 자처했고, 결국 반네타냐후 진영과 권력분점을 통해 자신의 멘토인 네타냐후를 밀어내고 차기 총리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그는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네타냐후와 연정을 논의하면서 지난 3월 총선에서 원내 제2당이 된 중도 성향 '예시 아티드'의 야이르 라피드 대표가 총리가 되게 하지는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결국 라피드 대표가 제안한 순번제 총리를 수용했고, 연정이 불발되면 또다시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네타냐후는 이런 베네트와 라피드의 거래를 '세기의 사기"라고 비판했다.
베네트를 반네타냐후 연정에 끌어들인 라피드의 경우 아버지를 이어 언론인으로 출발해 정치인으로 전환한 사례다.



군 복무 중 헬기가 일으킨 먼지바람 때문에 천식을 앓은 뒤 전투병에서 군 주간지 기자로 전환했고, 전역 후 히브리어 신문 마리브에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25세에 지역 신문 편집장을 거쳐 1994년 이스라엘 채널1의 토크쇼 사회자로 방송활동을 시작, 채널3과 채널2에서 토크쇼를 진행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라피드는 2012년 정계 입문을 위해 방송일을 중단하고는 '미래가 있다'는 뜻의 예시 아티드를 설립했다.
그해 네타냐후 주도의 연정이 깨지면서 이듬해 1월 치러진 총선에서 그의 당은 19석의 의석을 확보해 원내 2대 정당이 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구성된 연정에서 재무장관도 지냈다.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왔고, 공무원 부패 척결, 초정통파 유대교도에 대한 특혜 폐지 등을 주장해왔다.
그는 증오와 갈등을 정치에 이용했던 네타냐후를 권좌에서 끌어내린다는 목표 아래, 순번제 총리직 등 유연한 제안으로 연정 합의를 끌어냈다.
meol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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