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20년] ② 패권에 큰 상처…이젠 중국이 발등의 불

입력 2021-09-08 05:00  

[9·11 테러 20년] ② 패권에 큰 상처…이젠 중국이 발등의 불
중동 민주주의 확산정책 실패…치욕적 철군에 리더십 흔들·동맹 균열
대외정책 초점, 중동서 중국으로…중동 현안 많아 계속 발목 우려도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세계가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과 심각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아프가니스탄 철군 완료 후 아프간전 종전을 공식화하는 대국민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아프간에 더는 발이 묶여선 안 된다는 '바이든 독트린'의 발로이자 2001년 10월 아프간전 발발 이후 20년간 미국의 달라진 세계정세 인식을 반영한 말이다.
미국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구 소련과 숨 막히는 냉전을 치렀다.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마저 해체되자 미국은 유일 패권국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중동이 골칫거리였다. 2001년 미국인 약 3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 테러는 '팍스 아메리카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줬다. 결국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내걸고 아프간을 침공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1월 반(反)테러전쟁의 2단계 표적으로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고,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를 명분으로 2003년 3월 이라크전을 개시했다.



당시 부시의 '확대 중동구상'은 단순히 테러 소탕이 아니라 중동의 민주화를 증진하고 필요하면 정권교체를 위한 무력 사용도 가능하다는 공세적 노선이었다. 한마디로 중동을 미국과 닮은 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적극적 개입에도 중동에서 미국이 전파하려 한 자유민주주의의 꽃은 피지 않았다. 되려 아프간 정권은 미국이 20년 전 쫓아낸 탈레반에 다시 넘어갔다.
미국이 아프간, 이라크와 치른 전쟁 비용은 2050년까지 6조5천억 달러(7천52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전쟁이 길어지다 보니 미국 내에선 무력 개입에 대한 피로감이 점점 커졌다.
부시를 이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중동의 민주주의 확산 전략 대신 이슬람과 공존을 염두에 둔 정책을 펼쳤다. 2015년 타결된 이란 핵합의가 대표적이다.
그러면서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내걸고 신흥 대국 중국 견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기조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노골화했다. 중동의 미군 감축을 밀어붙이면서 중국을 겨냥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대외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뒀다. 미국과 중국이 이전에는 보지 못한 정도로 무역, 기술, 안보 등 전방위에서 거친 파열음을 낸 시기였다.



이런 배경엔 중국의 급부상이 있다. 아프간전이 발발한 2001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0조5천억 달러로 중국의 1조3천억 달러를 8배 넘게 앞섰다. 그러나 2019년 중국의 GDP는 14조3천억 달러로 미국의 21조4천억 달러를 67% 수준으로 따라잡았고, 2028년이면 미국까지 추월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몸풀기를 하면서 미국의 우선순위는 변화했다"며 "미국의 상대적 힘은 20년 전과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대중국 기조는 다르지 않다. 바이든은 현 상황이 미국식 민주주의와 중국식 권위주의 간 역사적 대결의 순간이라는 인식을 내비치기도 했다.
방법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 동맹 규합을 통한 협공으로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다자주의 전략에 공을 들인다. 바이든이 '미국이 돌아왔다'고 외치며 동맹 복원을 강조하는 근저에는 대중국 단일대오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일본, 호주, 인도와 협의체인 '쿼드'(Quad) 강화, 보편적 권리로서 인권 강조, 연말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 추진 등은 모두 중국을 배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윌리엄 갤스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한 기고문에서 "미국이 9·11 이후 중동에 과중하게 집중한 탓에 지정학적 힘이 미국에 불리하게 변화했다"며 "러시아가 회복하고 중국이 부상했으며 미국은 그 결과에 직면해야 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아프간 계속 주둔을 바라는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바이든의 인식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9·11 이후 20년이 미국에 남긴 외교안보 과제는 만만치 않다.
아프간전은 '회원국에 대한 군사 공격은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해 공동 대응한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조약의 5조가 처음으로 발동된 사례였다. 그만큼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진영이 똘똘 뭉쳤다는 얘기다.
하지만 미국의 굴욕적인 아프간 철군 및 대피 과정 이후 유럽에선 '자립론'이 다시 고개를 든다. 미국의 안보 그늘에 계속 숨어 지내는 것이 아니라 유럽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는 맥락이다.
동맹의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칼럼니스트인 크리스토퍼 칼드웰은 한 기고문에서 이전에도 미국과 나토 회원국 간 불신의 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유럽은 더는 미국의 전쟁에서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보편적 공감대가 있는 테러 소탕과 달리 중국 견제라는 문제는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갈려 서방이 단일대오를 이루기 더 쉽지 않다는 점도 미국의 부담을 키우는 부분이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히 얽힌 국가가 적지 않아 미국의 대중 강경 노선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동참할지 미지수라는 지적인 셈이다. 지난 6월 영국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중국의 인권문제 비판 수위를 놓고 의견이 갈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사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러시아와 경쟁의 중심축 역할을 해야 한다"며 "이는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빼고 있지만, 뜻대로 될지도 지켜봐야 한다.
당장 아프간의 미국인 및 현지 조력자 추가 대피가 발등의 불인 상황이고,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과 관계 설정에서도 미국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아프간이 다시 테러 소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밖에 이란 핵합의 복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 시리아 내전, 예멘 사태 등 미국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과제가 중동엔 숱하게 남아 있다.
AP통신은 9·11 테러 이후 20년간 미국의 지도력과 신뢰성에 대한 믿음이 약화했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회복하려 노력하지만 손쉬운 방법은 없다고 진단했다.
갤스턴 선임연구원은 "이제는 9·11 시대의 책을 덮어야 한다"며 "미국이 쇠퇴를 억제하면서 21세기 세계 질서를 규정하기 위한 싸움에서 완전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jbry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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