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걷고 명상하고 배우고 먹고 마시고…'오색찬란' 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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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12-08 08:00  

[여기 어때] 걷고 명상하고 배우고 먹고 마시고…'오색찬란' 울주

[여기 어때] 걷고 명상하고 배우고 먹고 마시고…'오색찬란' 울주

산업도시 이면에 숨겨진 관광 요소들 관광객 '유혹'

(울산=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산업도시로만 알려졌던 울산.

그러나 알고 보니 예로부터 먹을 것, 볼 것, 즐길 것들이 널린 곳이었다.

모든 것이 풍성하다 보니 굳이 관광에 집중하지 않아도 됐을 뿐, 실제로는 관광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한국관광공사는 울산시 울주군의 숨은 관광 매력을 개발하기 위해 관광두레 사업을 펼치고 있다.



◇ 억새 천국 간월재를 걷다

수년 전 알프스 자락인 이탈리아 북부의 한 고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평상복 차림의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스틱 하나를 들고 해발 4천m가 넘는 고봉을 오르는 장면을 목격했다.

마치 동네 뒷산 오르듯. 그렇다. 그들에게는 동네 뒷산이 알프스니까 말이다.

이번에 울주군을 방문했을 때였다.

'영남 알프스'라는 별명을 가진 간월재를 오르는 수많은 사람 중 상당수가 중장년층이었다.

그들이 마치 동네 뒷산 오르듯 해발 900m의 간월재를 오르는 장면에서 몇 년 전 알프스에서 본 노인들이 떠올랐다.

영남알프스는 울산 울주와 경북 청도 등 5개 시·군에 걸친 산군을 통틀어 말한다.

최고봉인 가지산(1,241m)을 비롯해 천황산(1,189m)·신불산(1,159m)·재약산(1,108m)·영축산(1,081m)·간월산(1,069m)·고헌산(1,034m) 등이 연결돼 있다.



간월재로 오르는 길은 다양하지만, 완만한 경사가 있는 임도가 가장 일반적이다.

임도는 잘 닦여져 노약자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건강을 챙기기에도 그만인 코스로, 2시간가량 걸린다.

간월재에는 무려 710만㎡(약 214만 평)에 달하는 면적의 억새밭이 있다.

황금빛 억새가 바람에 따라 춤을 추고, 거대한 억새 속으로 난 길로 사람들이 콩알만큼 작은 점처럼 움직였다.

평일이었지만, 간월재에 오르니 적지 않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운동장처럼 넓은 나무 데크의 테이블에서 앉은 사람들이 컵라면을 먹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스위스 알프스의 마터호른 정상에서 판매하는 한국 컵라면 생각이 났다.



◇ 관광두레에서 명상하다

웬만해서는 울주군에서 간월재를 벗어날 수 없다.

눈을 들어 저 멀리 서쪽을 바라보면 간월재 봉우리가 보인다.

상북면의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관광두레' 프로그램인 '와나스타' 회원들이 모여 요가를 한다.

관광두레는 주민들이 주체가 돼 지역 특색을 살린 관광사업체를 창업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관광두레 사업에는 전국 187곳 주민사업체가 참여하는데, 울산에서는 울주군이 올해 처음으로 합류했다.

와나스타는 언양읍 숲속의 수아스티숲요가명상센터에서 요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와나스타는 '숲에 머물다'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다.

원래 깊은 숲속에 있는 명상센터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날만큼은 따스한 햇볕 아래 간월재가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주민들이 모여 요가 동작에 심취했다.

한번 체험해 보자는 권유에 따라 데크 위로 올라가 참선 자세를 취했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눈을 감고 데크 위에 앉았더니 '징'하는 소리가 울린다. 마치 징이 울리는 듯 파동이 느껴진다.

싱잉볼이라는 악기다.



이 악기는 의식을 집중시키고 에너지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영적인 측면에서 울림을 주는 도구라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몸 아래쪽부터 명치와 복부까지 기의 흐름을 느끼라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산세 좋은 곳에서 이런 체험을 하니 아주 기분이 상쾌했다.

에너지 시스템을 뜻하는 '차크라'는 몸속 7곳에 있지만, 이날은 4개 차크라에만 집중했다.

몸 아래쪽에서부터 배꼽 주변, 가슴 등에 집중해 명상했다.

이날 명상 체험을 담당한 김은선 수아스티숲요가명상센터 고문은 "인간이 자유의 일부이기 때문에 근원으로 돌아가야 힐링이 된다"면서 "자연과 교감할 때 치유력이 확장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광두레인 '엠마오'에서는 이 지역에 산재해 있는 천주교 유적들을 둘러보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울주 성지 순례길'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산세가 험했던 울주 지역에는 예로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많이 숨어들었다고 한다.

간월재 아래 동굴인 죽림굴이 대표적인 곳이다.

기해박해(1839년) 때 영남과 멀리 충청도에서까지 이곳으로 많은 신자가 숨어들었다.

간월재 자락에 있던 '살티공소'를 방문했다.

핍박받던 천주교 신자가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살터'라고 불리다가 최근의 이름을 얻게 됐다.

이처럼 간월재 자락 이곳저곳에는 주임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공소가 많이 남아 있다.



◇ 반구대암각화에서 선조들의 삶을 배우다

고래를 빼놓고 울산을 이야기할 수 없다.

장생포항에서 1986년까지 포경이 이뤄진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울산 장생포 앞바다는 고래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었다.

언양읍 대곡리 계곡에는 신석기 시대 우리 조상들이 고래의 흔적을 기록한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가 있다.

반구대(盤龜臺)라는 이름은 바위가 거북이 엎드려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너비 8m, 높이 4m 수직 절벽에 새겨진 암각화에는 고래와 고래잡이와 관련된 그림이 새겨져 있다.

암각화에는 고래 52마리가 그려져 있다.

고래 숫자와 관련해 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울산암각화박물관은 52마리로 본다.

언론 보도를 통해 숱하게 들었던 반구대암각화를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울산암각화박물관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가면 반구대암각화가 새겨진 절벽을 만날 수 있는데, 가는 길이 예술이다.

대나무 숲과 습지 등을 거쳐야만 하는데, 때마침 황혼을 맞은 시각이라 붉은빛이 부서지는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먼저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일은, 현장에 도착하더라도 암각화를 가까이서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100m 거리에 있는 전망대에서 전자 망원경을 통해 암각화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가끔 암각화를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어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이날은 특별히 울산암각화박물관 김경진 관장이 동행해 암각화 바로 앞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곳에서 절벽을 살펴봐도 암각화가 잘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밖으로 나와 언덕 위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보니 암각화가 확연히 드러났다.

그런데 왜 바닷가까지 직선거리로 26㎞나 떨어진 이 반구대 계곡에 고래의 암각화가 새겨진 것일까.

당시에는 이곳에서 5.5㎞ 거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던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1965년 하류에 만들어진 사연댐 탓에 1년에 수개월 동안 암각화가 완전히 물에 잠겼다고 한다.

그래서 50년 전 발견됐을 당시보다 많이 부서져 내리고 형체도 흐릿해졌다.

최근에는 수량 조절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지만, 비가 많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물에 잠길 수밖에 없다.

걸어 나오는데 주민 한 명이 말을 건넨다.

겨울철에는 빛 각도가 나빠 암각들이 잘 보이지 않으니 봄에 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 신석기 생활상 전하는 '천전리 각석'

반구대암각화 주변에는 모양과 성격이 아주 비슷한 천전리 각석이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직선거리로 1.2㎞ 떨어진 두동면 천전리에 있는 천전리각석도 계곡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국보 제147호인 이 각석은 가로 9.5m, 세로 2.7m가량 되는 긴 바위벽에 새겨진 암각화다.

바위벽은 아래쪽이 비스듬히 안쪽으로 경사가 져 있어 비와 눈 등을 피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이곳은 신석기때 부터 청동기를 거쳐 신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양과 글씨들이 새겨져 있다.



마치 안데스 평원에서 발견된 문양처럼 다양하고 내용을 알 수 없는 동심원 마름모 등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김 관장은 이 두 유적이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같은 급으로 여겨도 될 만큼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알타미라가 유럽 후기 구석기 시대의 환경을 보여준다면, 울주 암각화는 동북아시아, 특히 한반도에 살았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유물이라는 것이다.

◇ 언양 불고기·수제맥주·손 막걸리…

예로부터 울주는 특히 풍성한 먹거리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 가운데 언양 불고기는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나선 노동자들을 통해 입소문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음식이다.

울주군 삼남면 일대를 조선 시대에는 언양현이라고 불렀다.



언양에는 언양불고기를 다루는 숱하게 많은 식당이 생겨났다.

식당을 찾아가 보니 언양읍 시장통 한가운데 있다.

시장 이름도 영남알프스를 머리에 이고 있는 고장답게 언양 알프스 시장이다.

언양 불고기는 전남 담양의 떡갈비와 비슷한 음식이다.

담양 떡갈비가 고기를 다져서 조리하는 반면, 언양 불고기는 얇게 썰어서 조리하기 때문에 식감부터 차이가 난다.

떡갈비는 잘게 다져서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며, 언양 불고기는 생고기처럼 씹히는 느낌이 좋다.

언양 불고기는 숯불로 미리 익힌 뒤 손님에게 낼 때는 화덕 안에 굵은 참나무 숯을 넣는다.

보온을 위한 것이지만, 숯 향을 유지하도록 한 배려다.

울주에서 빼놓으면 안 될 곳이 또 있다.

언양에 있는 수제 맥주 양조장 '트레비어'다. 이곳은 대한민국 수제 맥주 1세대로 분류될 만큼 전통 있는 브루어리다.

흥미로운 것은 양조장 앞에 직접 운영하는 펍에서 맛난 바비큐 요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칩이 내장된 팔찌를 차고 마시고 싶은 맥주 탭에 갖다 대면 자동으로 계산이 된다.



탭 모니터에 맥주 종류와 이름 등 다양한 정보가 표시된다.

맥주 가운데는 IPA(인디언 페일 에일) 맥주가 특히 맛났고, 수제 소시지와 감자튀김, 닭요리 등 안주도 좋았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울주군의 손 막걸리 양조장 '복순도가'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보통의 막걸리는 72시간 발효를 하는 데 비해, 이곳 막걸리는 25일간 70년 이상 된 독에서 발효시킨다.

이 과정에서 탄산과 막걸리 생균이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한 병 따서 따랐더니 보글보글한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웬만하면 기포가 멈출 때도 됐는데 다 마실 때까지 계속 올라온다.

한 모금 삼켜봤는데 탁 쏘는 탄산의 느낌과 달리 샴페인처럼 부드러운 맛이 느껴졌다.

이 술은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건배주로 선정되는 등 숱한 대형 행사장의 정찬 테이블에 올랐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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