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인도·캄보디아, 미얀마 군정과 '잘못된 만남'?

입력 2022-01-01 07:00  

[특파원시선] 인도·캄보디아, 미얀마 군정과 '잘못된 만남'?
인도 외교차관 방문에 '군정 인정' 해석…반군 견제에 미얀마 군부 이용
캄보디아 총리 연초 미얀마 방문…경제 '절대적 의존' 중국 뜻 받들었나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미얀마 쿠데타 사태가 1일로 해를 넘겼다.
지난해 2월 1일 쿠데타 발발 이후 1년이 다 돼가지만, 군부는 꿈쩍 않는다. 국민의 희생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
53년 군부독재 끝에 어렵게 얻은 민주주의를 되찾을 가능성이 점점 엷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연말연시 잇따른 '잘못된 만남'이 우려를 더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22∼23일 하르시 바르단 슈링라 인도 외교차관이 미얀마를 찾아 쿠데타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을 만났다.
군정에 대한 국제사회 '외교적 왕따' 움직임이 힘 받는 상황에서 이뤄진 방문이다.
인도가 미얀마 군정을 인정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했을까.
인도 외교부는 언론자료에서 "슈링라 차관이 민주주의 복귀, 구금자 석방, 폭력 중단이라는 인도의 기존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얀마 군정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관영매체들은 두 사람 회동을 설명하면서 민주주의의 민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총선 부정과 반(反)테러 활동에 대해 환담했다고 설명했다.
'2020년 총선 부정'은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명분이다. 물론 국제사회는 인정하지 않는다.
'테러 단체'는 문민정부가 세운 임시정부나 주민 무장조직에 군부가 붙인 딱지다.
외교차관 방문을 인도 정부가 군정 입장을 지지했다고 보이게끔 포장하는데 이용한 것이다.

인도 정부도 이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 시점에 외교차관을 보냈을까.
양국은 약 1천700㎞의 국경을 공유한다. 미얀마 쪽 국경 지대에는 인도에서의 분리 독립을 원하는 반군 수 십여 개가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동북부 마니푸르주에서는 반군의 공격으로 인도군 대령 등 군인 5명과 민간인 2명 이상이 사망하기도 했다.
외교차관 방문은 이 지점과 연결된다는 게 인도 현지와 외교가의 해석이다.
인도 정부에 맞서는 반군들을 견제하기 위해선 미얀마 군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미얀마 대사를 역임한 가우탐 무코파타야는 인도 언론에 "원칙과 실용주의 사이에는 항상 갈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보 문제 등을 다뤄야 한다면 땃마도(미얀마 군부를 일컫는 단어)를 피할 수는 없다"고 언급했다.

인도가 중국과 긴장 관계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미얀마가 외교적으로 고립될수록 쿠데타 이후 대놓고 군부를 지지한 '뒷배' 중국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인도 안보전략기술센터(CCST) 책임자인 라제스와리 라자고팔란은 외교매체 디플로맷 기고문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지정학적, 안보적 이해를 고려하면 인도는 미얀마(군부)를 무시할 수도, 고립시킬 수도 없다."
오는 7∼8일에는 또 다른 '잘못된 만남'이 예정돼 있다.
캄보디아 훈센 총리의 미얀마 방문이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를 찾는 첫 해외 정상이 된다.
캄보디아는 미얀마도 회원국인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내년 의장국이다.
훈센 총리는 미얀마 배제가 계속되면 온전한 아세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명분이 무엇이건 간에 미얀마 군부엔 호재 중의 호재다.
군부는 쿠데타 이후 중국과 러시아 '빅2' 외에 독재·쿠데타와 같은 공통분모가 상대적으로 많은 아세안을 내심 원군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군정 비판 기류가 지난해 10월부터 커졌다.
같은 해 4월 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합의된 즉각적 폭력중단 등 5개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10월 아세안 정상회의에 이어 11월 중-아세안 정상회의에도 흘라잉 사령관이 배제됐다.
'외교 왕따'는 당분간 계속될 걸로 보였지만, 캄보디아가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작년 10월까지만 해도 훈센 총리는 군정을 비판했다. 왜 입장이 바뀌었을까. 여기서 '중국 입김론'이 거론된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찰스 던스트 선임 연구원은 아랍권 매체 알 자지라에 "중국이 미얀마 내 중국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군정을 지지하는 가운데, 중국이 캄보디아에 군정에 대한 입장을 바꾸도록 압박하는 건 가능한 일"이라며 "군정과 관계를 맺는 것이 중국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캄보디아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중국은 캄보디아가 외국에서 받은 원조의 36%를 제공했고, 캄보디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의 30%를 차지했다.
36년째 장기집권 중인 훈센 총리가 권력을 더 유지하려면 중국의 협조가 절대적이라는 뜻도 된다.
미얀마 군부 뒷배인 중국의 뜻이 훈센 총리의 미얀마 방문에 투영됐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해 보이는 이유다.
인도도, 캄보디아도 미얀마 방문에 대해 민주주의 복귀 강조나 아세안 합의사항 수용 촉구 등을 각각 거론했다.
그러나 군정은 생각이 다르다.
그런 점에서 두 잘못된 만남은 미얀마 군부에 '국제사회 비판엔 귀 닫고, 소수 친구와만 손잡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입장을 더 공고히 할 계기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쿠데타 직후 대다수 국가와 달리 중국과 러시아는 각각 에너지 안보 핵심국, 무기 수출의 핵심고객 관점에서 군부를 편들며 잘못된 만남을 이어왔다.
그런데 쿠데타 1년을 앞둔 시점에 인도와 아세안 의장국 캄보디아까지 그 대열에 합류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자국 이익 앞에 '민주주의 수호, 쿠데타 용인 불가'라는 원칙은 한낱 이상에 불과해져 버린 비정한 국제사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미얀마 군부가 지난달 유엔 미얀마 특사 사무실을 폐쇄하고, 카야주에서 아동 4명 등 주민 최소 35명을 불태워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 것도 국제사회의 이런 생리를 간파했기 때문은 아닐까.

sout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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