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위 70년' 영국 여왕…"영국인의 혼을 아는 정신적 지주"

입력 2022-02-06 14:01   수정 2022-02-06 14:48

'즉위 70년' 영국 여왕…"영국인의 혼을 아는 정신적 지주"
큰아버지 세기의 스캔들 덕에 왕위 계승…美 대통령 트루먼부터 겪어
2차대전 참전, 면세특권 포기…자식 문제로 골머리도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6일(현지시간) 즉위 70주년을 맞았다.
70년이란 재위 기간은 1천년가량 이어진 영국의 선왕 중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세계 군주정 역사를 통틀어 봐도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와 태국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리히텐슈타인의 요한 2세 대공 등만 재위 70년을 넘겼다.
현 군주 중엔 단연 최장수다.
조선시대 군주 중 가장 오래 왕위를 지킨 영조(52년)보다 오래됐다.
1926년에 태어나 올해 95세가 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5세이던 1952년 2월 6일 즉위했다.
우리나라 역사로 보면 여왕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중에 즉위해서는 11명의 전직 대통령이 모두 거쳐 간 셈이다.

◇ 뒤바뀐 운명…'사랑' 택한 큰아버지 덕에 왕위에
아이러니하게도 여왕은 애초 왕위에 오를 태생은 아니었다.
선대 왕위가 여왕의 아버지인 조지 6세가 아니라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인 조지 5세가 재위할 시기만 해도 여왕은 왕위계승 서열 3위였다.
당시 왕세자였던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젊었기에 여왕이 미래에 왕위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은 더욱 어려웠다.
그런데 에드워드 8세가 재위 직후 미국 평민 출신의 윌리엄 심프슨 부인과 세기의 스캔들을 일으키며 왕위를 버리자 1936년 아버지 조지 6세가 이를 승계하게 됐다.
조지 6세는 심한 말더듬증을 갖고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독일 나치와의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를 주제로 한 영화가 '킹스 스피치'다.
1952년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 중이던 여왕은 선왕이던 아버지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예상보다 일찍 왕관의 무게를 짊어지게 됐다.

◇ 트루먼부터 바이든까지…대영제국 종말 지켜
영국인들은 아이 둘을 둔 25세 젊고 아름다운 여왕의 즉위를 크게 반겼다.
여왕은 오랜 기간 왕위를 지키면서 영국 내외의 굵직한 사회, 경제, 정치적 변화를 지켜봤다.
윈스턴 처칠부터 14명의 영국 총리를 겪었고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등 역사를 뒤흔든 주요 인물들을 만났다.
미국의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14명 중 린든 존슨 대통령만 제외하곤 모두 면담했다.
1997년 대영 제국의 종말로 평가된 홍콩의 중국 반환을 지켜보며 제국의 끝을 지킨 군주가 되기도 했다.
1999년엔 방한해서 안동 하회마을 등을 둘러봤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해 여왕과 만났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9년 여왕의 방한 당시 그를 맞았다.
이어 2014년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투표 사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영국의 미래가 달린 최근의 굵직한 사안들도 모두 겪었다.

◇ 영국의 정신적 지주…전쟁 참전에 자진 납세까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여전히 뜨거운 인기를 누리며 영국과 영연방을 지탱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왕실 자체가 영국의 막강한 소프트 파워이기도 하지만, 여왕 개인이 여러 차례 사회 귀감이 되는 결정을 한 덕이다.
그런 까닭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가장 인기 있는 영국 왕족을 뽑는 설문조사에서 매번 1위를 차지한다.
여왕은 즉위 전인 1945년 공주 신분으로 군에 입대해 2차 대전에 참전했다. 그는 트럭 운전병으로 복무하면서 타이어를 직접 갈아 끼웠으며, 점화 플러그를 갈 줄 아는 몇 안 되는 왕족 중 한 명이다.
전쟁 직후 내핍 시절에는 웨딩드레스를 마련하기 위해 배급 쿠폰을 모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에는 당시 화재로 타버린 윈저성의 복원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것이라 추산되자, 여론을 고려해 스스로 왕실의 면세 특권을 포기하고 소득세를 내기로 했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의 정치학 교수인 버넌 보그대너는 "여왕은 사실상 비판할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그는 "여왕이 실수한 적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라면서 "여왕은 영국인의 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신을 본능적으로 이해한다"라고 덧붙였다.

◇ 70여년 해로한 남편과 작년 사별…자식 문제로 골머리
지난해 4월 여왕은 남편 필립공(에든버러 공작·99세)과 작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여왕은 70여 년간 자신의 곁을 지키며 외조를 해왔던 필립공과 큰 잡음 없이 해로했다.
그러나 자식들 문제로는 골치를 앓아왔다.
아들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불화를 겪고 이혼하는 것을 지켜봤으며, 다이애나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는 왕실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최근엔 손자 해리 왕자가 왕실을 떠난 뒤 부인 메건 마클이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아들 앤드루 왕자가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으로 고소를 당하며 왕실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여왕은 최근 아들 중에서도 가장 아끼던 앤드루 왕자의 군 직함을 박탈하고 전하 호칭도 떼는 가슴 아픈 결정을 해야 했다.
손자 윌리엄 왕자는 호평을 받는 분위기지만 왕위를 바로 넘겨받을 찰스 왕세자를 향한 여론의 반응이 미지근한 점이 불안을 키운다.
pual0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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