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일촉즉발] 미·러 중재 자처했지만…머쓱해진 마크롱

입력 2022-02-22 17:51   수정 2022-02-22 18:12

[우크라 일촉즉발] 미·러 중재 자처했지만…머쓱해진 마크롱
'마크롱 주선으로 미·러 정상회담 원칙적 합의' 하루 만에 사태 급변
국제사회 '피스메이커'로 그동안 적극 행보…트럼프-로하니 중재 '불발' 전력도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결사'를 자처하며 최근 러시아와 서방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중재를 해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체면을 구기게 됐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의 주선으로 정상회담 개최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촉즉발로 치닫던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환점이 마련되는 듯했으나 하루 만에 상황이 오히려 악화하면서다.
푸틴 대통령이 21일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지역에 친러시아 반군 세력이 선포한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분리독립을 전격 선포하고, 해당 지역의 '평화유지'를 위해 러시아군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운은 한층 짙어졌다.
AFP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독립 승인 발표 직후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한 마크롱 대통령은 푸틴의 이 같은 행동을 강력 규탄하고, 러시아를 상대로 한 유럽 차원의 제재를 촉구했다.
프랑스 대통령실의 한 관리는 DPR과 LPR의 독립을 승인한 푸틴 대통령의 연설을 "융통성 없고, 편집증적인 생각들이 뒤섞인 것"이라고 혹평하고, 푸틴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에게 한 약속을 존중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AFP는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은 대선을 채 2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운을 걷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해온 마크롱 대통령의 당혹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오는 4월로 예정된 프랑스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들어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하자 해결사를 자처하면서 서방과 러시아 사이를 중재하는 데 부쩍 공을 들여왔다.

그는 이달 초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차례로 방문해 푸틴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사이에서 셔틀회담을 하고, 지난 20일에도 푸틴 대통령과 1시간 45분 동안 통화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유럽연합(EU) 상반기 의장국 수장으로서 미국을 필두로 하는 서방과 러시아가 대립하는 국면에서 유럽의 목소리를 내는 데 앞장서 온 마크롱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상대적으로 미온적이었던 주변 유럽국 지도자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면서 존재감을 키웠다는 평가를 낳았다.
작년 말 앙겔라 메르켈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그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대러시아 강경책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아왔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코로나19 봉쇄령이 한창이던 시점에 총리실에서 방역 규정을 어기고 파티를 벌였다는 의혹으로 궁지에 몰려 외치에 힘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이같은 '피스 메이커'로서의 광폭 행보에 주변국들이 곱지만은 않은 시선을 보낸 것도 사실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티격태격해온 영국의 평가는 박했다.
영국 정부 소식통은 마크롱 대통령이 미국과 러시아 정상회담을 주선하면서 우크라이나는 빼놓은 데 대해 영국 일간 가디언에 "두 정상 간의 직접적인 협상이 이뤄지려면 우크라이나가 긴밀히 개입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도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 지역의 분리독립을 승인하기 직전에 실은 기사에서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평화를 중재하려는 마크롱 대통령의 의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텔레그래프는 "아무도 마크롱 대통령의 (중재) 노력을 나무랄 수는 없다"면서도 "마크롱 대통령의 접근은 푸틴 대통령에게 호전적인 의도를 감추는 외교라는 외피를 유지할 수 있게 허용함으로써 득보다는 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유럽 외교관들은 또한 대선을 코앞에 둔 마크롱 대통령이 2차 대전 후 미국과 거리를 두고 소련과 직접 협상하면서 프랑스 '예외주의'에 입각한 외교를 하려 한 샤를 드골 전 대통령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면서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그러면서 드골의 이 같은 예외주의의 결과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약화로 이어졌다고 짚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최근 회의석상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두고 "드골과 같이 되고 싶어 한다"는 뒷담화를 했다는 후문이 미국 언론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파란을 일으키면서 30대의 나이에 집권한 마크롱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생긴 미국의 '리더십 공백'을 메우는 스타 정치인으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국제 외교 무대에서 여러 차례 중재자 노릇을 해온 전례가 있다.
미국이 파기한 이란 핵 합의 유지를 위해 미국을 제외한 유럽 주요국들을 규합해 이란 핵 문제에 대처해 온 것을 비롯해 엘리제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상을 잇달아 초청해 정상회담을 하면서 트럼프 체제 출범 이후 심각해진 양측의 갈등을 중재하는 등 세계 무대에서 중재자 역할을 공격적으로 확장해 왔다.
그는 2019년 8월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회담을 주재한 직후에는 유럽의 장기적 생존을 위해서는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일원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국 외교의 대전환을 요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편, '중재자'를 자처한 마크롱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머쓱한 처지에 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핵 합의 이행을 둘러싸고 이란과 미국의 갈등이 고조되던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사이의 '다리' 역할을 자처하면서 양측의 접촉을 은밀히 주선하려 했으나 로하니 대통령이 이 같은 접촉을 거부한 탓에 체면을 구겨야 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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