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정책 대전환 나서는 일본…타격능력 확대·개헌 가능성

입력 2022-05-09 09:05   수정 2022-05-12 08:44

안보정책 대전환 나서는 일본…타격능력 확대·개헌 가능성
자민당 "'반격 능력' 보유…타격 범위에 상대국 지휘통제기능도 포함" 제안
방위비 대폭 증액도 제안…헌법 9조·전수방위 원칙 일탈 논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안보 불안감 고조…찬성 여론 확대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안보 정책을 전환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안보 불안감이 고조한 가운데 집권 자민당은 적국 중추를 타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을 보유하자고 정부에 공식 제안했으며 일본 정부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패전 후 수십 년간 유지해 온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이 사실상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아베 신조 등 강경파가 총리 재임 중 이루지 못한 헌법 9조 개정까지 성사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자민당 반격 능력 보유 제안…지휘통제 기능까지 타격 대상
자민당이 지난달 26일 확정해 다음 날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제출한 '새로운 국가안전보장전략 등의 책정을 향한 제언'에선 향후 일본의 안전보장 체계가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엿볼 수 있다.
제언은 중국의 급격한 군비 확장, 북한의 미사일 능력 향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배경으로 안보 정책을 가다듬고 방위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취지다.

A4용지 16쪽 분량인 이 문서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그간 '적 기지 공격 능력'으로 불린 타격력 강화 구상이 '반격 능력'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어 반영됐다는 점이다.
자민당은 "이런 엄중한 상황에 입각해 헌법 및 국제법의 범위 안에서 일미(미일)의 기본적인 역할 분담을 유지하면서 전수방위의 사고방식 아래서 탄도미사일 공격을 포함한 우리나라에 대한 무력 공격에 대한 반격 능력(counterstrike capabilities)을 보유해 이런 공격을 억지하고 대처한다"고 문서에 기술했다.
기존에 논의되던 적 기지 공격 능력과 달리 타격 범위를 적국 중추로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문서는 "반격 능력의 대상 범위는 상대의 미사일 기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국의 지휘통제기능 등도 포함하는 것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자민당은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아래서 상대 영역 안쪽으로의 타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미국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미사일 기술의 급속한 변화·진화에 의해 요격이 곤란해져 왔으며, 요격만으로는 우리나라를 완전히 방위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반격 능력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선제공격이라는 지적을 피하도록 반격 능력이라고 이름을 바꿨지만, 기존에 거론되던 적 기지 공격 능력보다 타격력을 더욱 확대하는 구상이다.
일본 정부는 연말에 예정된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안보 관련 문서 3종을 개정할 때 자민당의 제언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의 제언에 대해 "제대로 받아들여서 논의를 추진하고 싶다"고 반응했다.
기시 방위상은 제언을 받은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전후 최대라고도 할 수 있는 심각한 위기 속에서 장래에 우리나라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한층 더 나아간 대응이 요구된다"며 "매우 강력한 제언을 받았다"고 말했다.

◇ 'GDP 대비 2% 이상' 거론하며 방위비 증액 공론화
자민당의 제언에서 또 주목할 대목은 방위비 증액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문서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여러 나라의 국방예산 대(對) 국내총생산(GDP) 비율 목표(2% 이상)도 염두에 두고서 우리나라로서도 5년 이내에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 수준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한다"고 기재돼 있다.
일본 정부는 방위비가 GDP의 1% 이내라고 통상 간주해 왔다.
하지만 최근 GDP 대비 방위비 비율을 산정하는 기준이 나토와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방위성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쓰는 비용, 옛 일본군과 군무원 및 유족 등에게 지급하는 연금의 일종인 '온큐'(恩給)' 비용, 연안 경비를 담당하는 해상보안청 예산 등을 반영했더니 2021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 방위비가 추가 경정 예산을 포함해 GDP의 약 1.24%라고 재산출한 바 있다.
2022년도 방위비는 본예산 기준으로 약 5조4천5억엔(약 52조7천억원)이며 이는 일본 정부의 기존 기준으로 따지면 GDP의 0.96% 수준이었다.
자민당이 제안에서 밝힌 2%라는 것이 어떤 기준에 따른 것인지 명확하지 않고 '염두에 둔다'처럼 모호한 표현이 사용돼 이들이 목표로 하는 방위 예산 금액을 정확하게 산출하기 어렵지만, 맥락상 대폭 증액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일본이 막대한 사회보장 비용을 지출하고 있고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방위비를 5년 사이에 2배 수준으로 늘리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은 2022년도 본예산을 기준으로 연금·의료 등 사회보장에 역대 최대 규모인 36조2천735억엔(약 354조원)을 반영했다.

◇ 반격 능력, 헌법 9조·전수방위와 충돌 가능성
반격 능력은 헌법 9조나 전수방위 원칙과 충돌한다는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전쟁 포기, 전력(戰力) 비보유, 교전권 불인정 등을 규정한 헌법 9조와 그간 일본 정부가 내놓은 견해는 타국의 중추를 타격한다는 개념과는 꽤 거리가 있다.
헌법 9조 1항은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이를 영구히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9조 2항은 "전항의(1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육해공군이나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나라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기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헌법 9조를 토대로 전수방위를 방위의 기본 방침으로 삼아 왔다.
방위성은 전수방위가 "상대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 비로소 방위력을 행사하고, 그 태양(態樣)도 자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에 그치며, 또 보유하는 방위력도 자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의 것에 한정하는 등 헌법의 정신에 따르는 수동적인 방위 전략의 자세"(2021년 방위백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수방위 원칙의 역사는 매우 길다.
1955년 7월 열린 중의원 내각위원회에서 스기하라 아라타 당시 방위청 장관이 전수방위라는 용어를 처음 국회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스기하라는 "일본으로서는 정말 엄격한 의미로 자위의 최소한도의 방위력을 가지고 싶다"며 "결코 다른 나라에 대한 공격적인, 침략적인 공군을 가진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므로, 오로지 일본을 지키는 것이 된다. 즉 오로지 전수방위라는 생각"이라고 언급했다.
1970년 방위청이 처음 발간한 방위백서에도 전수방위가 방위 정책의 기본으로 기술됐으며 이런 흐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전수방위 원칙에 따라 금지되는 장비까지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개개의 무기 가운데서도 성능상 오로지 상대국 국토의 괴멸적 파괴를 위해서만 쓰이는, 이른바 공격적 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곧 자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도의 범위를 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는다"(2021년 방위백서)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중거리 전략폭격기, 공격형 항공모함 등을 금지 사례로 열거했다.

만약 일본 정부가 반격 능력 보유를 결정하는 경우 어떤 장비를 채택할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다만 상대의 영역 바깥에서 타격한다는 구상을 고려하면 금지 사례로 열거된 것에 버금가는 장비의 도입이 추진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일본 정부가 상대의 위협권 밖에서 타격하는 '스탠드오프' 능력을 갖추겠다며 앞서 도입 방침을 밝힌 장거리 순항미사일의 경우 전수방위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자민당이 제언에서 '헌법 및 국제법의 범위 안에서', '전수방위의 사고방식 아래서'라고 굳이 전제한 것은 반격 능력 보유 구상이 헌법에 저촉되며 전수방위 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필요 최소한의 자위력의 구체적 범위에 관해 "그때그때의 국제정세나 과학기술 등의 여러 조건을 고려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기술하는 등 전수방위 훼손 논란을 차단하려고 고심한 흔적도 제언에 남아 있다.

방위성은 자위력 보유 범위는 국회가 판단할 일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현재의 정치 지형을 고려하면 결국 자민당의 결정에 따라 보유 가능한 타격력의 종류는 꽤 바뀔 수 있다.
방위백서는 "여러 조건에 따라서 변할 수 있는 상대적인 면이 있어 매년도 예산 등의 심의를 통해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에서의 판단된다"고 보유할 자위력의 범위를 정하는 방식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 중국 견제하는 미국, 일본 방위력 증강 '지지'
미국은 일본의 방위력 확대를 지지하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차 대전 때 적국이던 일본과 일찌감치 동맹을 형성해 냉전 시대부터 공산 진영의 확대를 막는 교두보로 삼아왔으며 냉전이 끝난 후에도 일본을 전략적 거점으로써 중시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자료에 의하면 일본에 파견된 미군은 2020년 기준 5만3천732명으로 단일 국가로는 가장 많았으며 2위인 독일(3만3천959명)과도 큰 차이를 보였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대결이 격해지면서 미국은 일본에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양상이다.
일본은 앞서 아베 신조 정권 시절 헌법 해석을 변경하고 안보 법제를 손질해 동맹국인 미국을 위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계기로 일본의 안보 체계는 또 한번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으로 피해를 본 국가에서는 일본의 안보시스템 변화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미국 정부가 안보 전략에서 일본을 대하는 태도는 전쟁·식민지 지배 피해자의 시각과는 사뭇 다르다.

제프리 호넝 미국 랜드연구소 선임 정치연구원이 지난달 말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 내놓은 발언이 이런 분위기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는 "현재의 일본·독일은 예전의 제국주의 일본이나 나치스 독일이 아니다. 문민 통제가 확립했으며 오랜 역사를 지닌 민주주의 국가다. 일본·독일이 더 큰 안보 상의 역할이나 임무를 맡는 것에 대해 어떤 우려도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기시 방위상이 이달 초 미국을 방문해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회담한 후 방위성이 내놓은 발표문에서 미국 정부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기시 방위상은 국가안전보장전략 등을 책정해 일본의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강한 결의를 표명했고 이에 대해 오스틴 장관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자민당이 요구한 반격 능력 보유를 추진하게 될 경우 미국의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오스틴 장관에게 미리 설명한 셈이다.

◇ 변수는 여론…안보 불안감 커지면서 개헌 찬성도 확산
일본의 안보 정책 변화에서 중요한 변수는 일본 내 여론이다.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을 내세우며 최장기 재임 기록을 세웠던 아베 전 총리가 개헌을 비롯해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완성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여론의 반대였다.
전쟁의 공포·참혹함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전후 일본 사회가 헌법 9조 및 전수방위를 유지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대공습으로 도쿄, 오사카 등 주요 도시가 잿더미가 되고 51만8천여명이(2021년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전몰자 명부 등재 기준) 원폭으로 목숨을 잃는 등 전쟁의 상처는 컸고 오래 이어졌다.

하지만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가 줄어드는 가운데 일본 정치권은 역으로 전쟁의 위협을 지렛대로 삼아 개헌을 주장하거나 전수방위 원칙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간은 전쟁이 다시 벌어질 우려 때문에 헌법 9조를 개헌하지 못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사태를 계기로 안보 불안감이 커지자 전쟁을 막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개헌이나 안보 체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여론 변화는 일본 주요 언론의 조사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
아사히신문과 도쿄대 다니구치 마사키 교수 연구실이 올해 3∼4월 일본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우편 조사에서 일본의 방위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64%였으며 반대 의견은 10%였다.
2003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방위력 강화에 찬성하는 이들이 60%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보면서 일본이 실효 지배 중인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를 되찾기 위해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는 상황을 떠올리는 일본인도 꽤 많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교도통신이 올해 3월 19∼20일 일본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대만이나 센카쿠열도에 대한 중국의 무력 행사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 이들은 응답자의 75.2%에 달했다.
개헌하자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이 일본 유권자를 상대로 3∼4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답변은 60%를 기록해 2015년 이후 가장 높았다.
헌법 9조에 규정된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에 관해서는 50%가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고 47%가 개정 필요가 없다고 반응했다.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는 헌법 9조의 전쟁 포기, 전력 비보유를 유지하되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자민당의 개헌안에 관해 응답자 67%가 찬성했고 30%가 반대했다.

전력이나 군대를 보유하는 방향의 개헌이 당장 유력한 것은 아니지만 헌법 9조 개정이 과거처럼 금기시되는 상황은 아닌 셈이다.
기시다 총리는 헌법기념일인 이달 3일 자민당이 도쿄에서 주최한 집회에 보낸 동영상 메시지에서 시행 75년을 맞은 현행 헌법에 대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 그리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개정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며 자민당이 앞서 내놓은 개헌안이 "매우 현대적인 과제이며 조기 실현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자민당이 올해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2024년 개헌안 발의, 2025년 개헌 투표가 실시된다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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