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전 동서독 경계에서 선보인 리얼 DMZ 프로젝트

입력 2022-05-21 06:07   수정 2022-05-31 11:09

33년전 동서독 경계에서 선보인 리얼 DMZ 프로젝트
김선정 감독 "리얼 DMZ프로젝트 10년…북측과 교류전시 못해 안타까워"
양혜규 "DMZ는 상상·개념적 공간…잠재적 에너지 존재"

(볼프스부르크=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33년전 동서독 경계도시였던 구서독의 볼프스부르크에서 남북한의 경계 비무장지대(DMZ)에 관한 미술작품들이 선보였다.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DMZ와 그 접경지역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전세계 각국 예술가와 학자, 건축가들이 진행해온 동시대 미술 프로젝트인 리얼 DMZ 프로젝트는 올해 통일 이후 일상의 공간으로 바뀐 독일 접경지역에서 10주년을 맞는다.


독일 볼프스부르크 현대미술관은 21일부터 9월 18일까지 리얼 DMZ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체크포인트: 한국에서 온 경계에 대한 시선' 전시를 연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주독일한국문화원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지원과 스페이스 포 컨템포러리 아트와의 협력을 통해 성사됐다.
안드레아스 바이틴 볼프스부르크 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독일의 역사, 그리고 32년 전까지 동서독의 경계에 있는 지역의 역사와 맞닿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면서 "독일의 DMZ 근처에 살았던 지역주민들에게는 이런 형태의 경계가 널리 알려져 공감대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양혜규, 이불, 제인 진 카이젠, 최찬숙, 오형근, 지뷔리, 미샤 라인카우프 등 19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번에 처음 리얼 DMZ 프로젝트에 참여한 양혜규 작가는 벽지에 비무장지대의 에너지를 표현한 '디엠지 비행(2020)'으로 전시의 대미를 장식했다.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음향 설치 작업인 '진정성 있는 복제(2020)'는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남북 정상이 걸으면서 대화를 나눈 도보다리 회담 당시 녹음된 새소리에 인공지능 기술로 복제된 작가의 목소리를 삽입한 작품이다.
양 작가는 "DMZ는 내게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상상속, 개념적 공간"이라며 "사실적, 현실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에너지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지뷔리 작가는 38선 남측 근처 다섯개의 나무를 탁본한 작품인 '절개(Inzision 2018)'를 선보였다. 분단 이전부터 이곳에 머물러온 나무들은 분단과 한국전쟁을 생생히 기억하는 살아있는 증인이다. 바닥에는 흑과 백의 자갈이 대각선으로 경계를 이루게 설치한 작품 '골절(Fraktur)'을 선보였다.
관람객들은 절개를 감상하기 위해 자갈밭 위를 걷게 되며 이에 따라 흑과 백의자갈은 서서히 섞이게 된다.
지뷔리 작가는 "38선에 직접 가서 나무들을 탁본하다가 만난 지역토박이 어르신에게 갑자기 38선이 생기면서 가장 친한 친구를 못보게 된 사연 등을 듣고 많은 것을 배웠다"면서 "한지가 나무결에 밀착되면 붓으로 인내심을 갖고 딱딱 두드려 탁본을 하는 과정이 살아있는 증인과 접촉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불 작가의 4m에 달하는 대형조형물 오바드V는 전시장의 중심에 자리했다. 이는 2018년 남북군사합의에 의해 철거된 비무장지대 감시초소에서 나온 재료를 활용해 제작된 작품이다. 조형물에 달린 깜빡이는 신호는 불안과 불확실성을 상징한다.
오형근 작가는 가장 전형적인 대한민국 남성상의 초상일지도 모르는 군인의 모습에서 개인과 국가라는 중간 자리에서 느낄 막연한 불안감을 담아낸 중간인 시리즈 4점을 선보였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샤 라인카우프 작가는 2채널 영상작업 '북방한계선(NLL)(2019)'에서 드론을 활용해 한강물을 따라 바라본 경계를 선보였다.
2011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10년여째를 맞는 리얼 DMZ 프로젝트는 한반도의 DMZ와 그 접경지역에서 예술가들이 짧게는 열흘, 길게는 두세달을 머무르며 연구해 작품을 선보이는 프로젝트로, 건축가나 학자들도 참여해 전시뿐만 아니라 컨퍼런스, 연구, 출판작업도 이어나가고 있다. 2015년부터는 해외 초청이 시작돼 미국과 영국, 프랑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브라질 등에서 전시가 이어졌다.


리얼 DMZ 프로젝트와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원래 10년을 하기로 결심했던 프로젝트인데, 결심을 지키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면서 "민간차원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 커져서 2막으로 새로운 도약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DMZ문제를 다루는 만큼, 북측과 교류하고 함께 전시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못해서 안타깝다"면서 "남북관계 때문에 못 하고 있는 작업이 많아서 나중에 할 수 있도록 자료를 모아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은 동서독 분단 경험이 있어서 관람객들이 많은 공감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전시를 통해 우회적으로 형상화된 전쟁이 남긴 상처나 트라우마 등도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조현옥 주독일대사는 20일 전시회 개막식 축사에서 "동서독 분단을 직접 경험한 독일 관객들에게 이번 전시회가 특별한 시의성이 있기를 바란다. 이번 전시는 한반도와 전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는 전시"라면서 "한국의 DMZ도 독일의 동서독 경계처럼 동식물에게 삶의 공간을 제공하는 평화의 장소로 바뀌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yuls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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