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한스크주 요충지 사실상 점령…돈바스∼크림반도 잇는 육로 구축
전쟁의 시작과 끝 명분, 사활 건 공방…종전 상황 좌우할 듯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주·루한스크주) 지역에 러시아군이 총공세를 펼치면서 이 지역 전체를 장악할 가능성이 커졌다.
29일(현지시간) 외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이날 루한스크주의 보급 요충지인 세베로도네츠크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했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수일간 세베로도네츠크를 포위 공격한 데 이어 시내 진입 공격을 시작했다며 "포격이 너무 심해서 사상자 파악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군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퇴각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4년 루한스크주 주도인 루한스크시를 친러시아 반군이 장악하면서 세베로도네츠크는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정부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인구 약 10만의 이 도시는 최근 3면이 러시아군에 포위돼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최근 공격으로 민간인 1천500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한다.
규모가 작지만 우크라이나군의 주 보급로가 지나는 곳으로 이곳이 러시아에 함락되면 보급에 막대한 차질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세베로도네츠크를 빼앗기면 루한스크주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전면 철수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수도 키이우 북부 전선에서 퇴각한 러시아군은 동부 돈바스 지역에 전력을 집중, 이 지역의 80% 정도를 장악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측도 이런 전세를 인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베로도네츠크가 함락되면 루한스크주 전역이 러시아군의 손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군이 도네츠크주 미 점령지역에 집중 공세를 가할 수 있어 돈바스 전체를 점령할 가능성이 커진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러시아는 돈바스의 친러시아 반군 세력을 통해 이 지역의 3분의 1 정도만 장악했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자 돈바스 지역 친러 분리주의 세력도 동부의 산업 지역을 점령한 뒤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수립을 선포했다.
돈바스 지역은 우크라이나 전체 면적의 9%를 차지한다.
정확한 인구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에 각각 230만 명과 150만 명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는 개전 초기부터 '돈바스 해방'을 전쟁의 주목표로 천명했다.
개전 사흘전인 2월 21일 러시아는 DPR과 LPR의 독립을 승인한 뒤 우크라이나 '나치'에 의한 돈바스 주민의 대량학살을 막고 이 지역을 해방한다는 명분으로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석 달이 지나면서 장기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최우선 목표인 돈바스 점령이 실현되면 전쟁의 양상이 변곡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에서 퇴각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당초 계획한 전쟁의 목표에 근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최근 언론 회견에서 "러시아군 '특별군사작전'의 무조건적인 최우선 목표는 러시아가 독립국으로 인정한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를 해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돈바스를 장악하면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에서 남부 점령지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를 통과해 돈바스를 거쳐 러시아로 연결되는 육로가 구축된다.
러시아군이 전쟁 발발 후 크림반도와 돈바스 사이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 마리우폴을 점령하는 데 혈안이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러시아는 이들 점령지를 '러시아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곳에서 크림반도를 무력 점령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병합한 것과 같은 방식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병합할 것으로 보이는 곳은 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 헤르손주, 자포리자주 등 우크라이나 동남부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가 이미 이들 지역에서 친러시아 지방정부를 세우고 경제체제를 루블화 기반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지역 언론과 통신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돈바스가 전쟁의 시작이 된 것처럼 전쟁의 끝도 이 지역의 상황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군도 돈바스 전투에 사활을 걸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돈바스 지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데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내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 뼘의 영토를 위해서라도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세베로도네츠크와 리만이 점령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 돈바스는 앞으로도 계속 우크라이나 땅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방에 강력하고 신속한 무기 지원을 재차 촉구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러시아군이 70㎞보다 먼 거리에서 공격하면 우리는 대항할 방법이 없다"며 장거리포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우크라이나는 결사 항전의 의지가 굳건하지만 서방의 무기 지원만으로는 돈바스 지역의 전세를 역전시키기 어려우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가 남부 요충지 점령에 이어 동부 돈바스도 완전히 장악하면 우크라이나는 이미 러시아화가 진행되는 이들 영토를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단을 원하는 서방의 압력으로 크림반도∼돈바스로 이어지는 지역을 러시아군에 넘겨준 채 휴전에 들어가면 최악엔 우크라이나는 분단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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