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강요하고 거부하면 괴롭혔다…호주 광산업계 성범죄 만연

입력 2022-06-23 19:50   수정 2022-06-23 20:30

성관계 강요하고 거부하면 괴롭혔다…호주 광산업계 성범죄 만연
정부 보고서 발표…"업체별 최근 수년간 확인된 것만 수십건"
세계 최대 업체 BHP그룹 포함 리오 틴토, 셰브론 등
"호주 탄광산업의 실패이자 정부 관리 감독의 실패"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 "상사가 자신과 성관계를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성적 요구에 응하지 않는 여성 직원들의 차 안에는 철광석 덩어리가 버려졌다."
호주의 광산업계에서 여성 직원들에 대한 성폭력이 만연한 사실이 호주 지방정부 조사 결과 드러났다고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서호주 정부는 이날 배포한 조사 보고서에서 BHP 그룹과 리오 틴토 등 호주 탄광업계에서 여성 직원들을 상대로 다수의 성추행과 성적 학대가 저질러진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에너지기업 셰브론과 우드사이드 등도 포함됐다.
최근 수년간 확인된 피해 사례만 업체별로 수십건에 달했다. 조사 대상을 넓히면 훨씬 많은 피해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보고서는 세계 최대 광산 업체인 BHP 그룹에서 2019년 7월 1일부터 2021년 6월 말까지 제기된 성희롱 및 성폭행 피해 신고 91건 중 79건이 사실로 확인됐고, 리오 틴토에선 2020년 1월부터 작년 8월까지 제기된 51건 중 성폭행 1건, 성희롱 29건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탄광산업의 특성상 수주일간 오지에서 숙식하며 작업하는 '플라이-인 플라이-아웃'(fly-in fly-out·FIFO) 근무 형태가 많은데, 이 근무지에서 여성 직원을 상대로 한 각종 성범죄가 저질러졌다는 것이다.
한 상사는 안전 문제를 호소한 한 여성 직원에게 자신과 성관계를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또 다른 여성은 숙소에서 자고 나서 깨어보니 바지가 발목까지 내려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여성 직원들의 숙소에는 섹스 인형과 장난감 등이 버젓이 놓여 있었고, 이들은 남성 직원으로부터 원치 않는 문자 메시지를 받는 등 스토킹을 당해야 했다. 일부는 도발적인 사진 촬영을 강요받기도 했다고 한다.
한 남자 직원은 다른 직원들 앞에서 한 여성의 윗도리 위로 수차례 손을 밀어 넣기도 했고, 성적인 요구에 응하지 않는 여성 직원의 차 안에는 철광석이 마구 버려지는 일도 있었다.


보고서는 이번 '끔찍한' 사건을 호주 탄광산업의 실패이자, 정부 관리 감독의 실패로 규정하고 회사와 가해자의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 여성들에 대한 배상을 권고했다.
또 정부가 직장 성희롱 피해자의 고충을 듣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포럼을 설립할 것도 권고했다.
리비 메탐 조사단장은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이번 사건의 규모와 강도에 매우 충격받았다"며 "21세기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앞서 BHP 그룹은 자체 조사에서 성범죄 가해자 48명을 해고했다. 리오 틴토의 조사에서는 여성 직원 4명 중 1명꼴로 성추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오 틴토는 "보고서 권고 사안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BHP 그룹은 즉각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taejong75@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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