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 될 뻔한 한국의 수학 천재 필즈상으로 빛나다

입력 2022-07-05 16:26   수정 2022-07-05 21:31

'수포자' 될 뻔한 한국의 수학 천재 필즈상으로 빛나다
시인 꿈꿨던 늦깎이 학자 허준이 교수, 난제 정복하며 필즈상까지
"테니스 라켓 잡고 2년 뒤 윔블던 우승한 것과 같아"



(서울=연합뉴스) 이재림 기자 = 한국 수학자로는 처음으로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39. June Huh)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는 초·중·고교 시절 수학 점수로 칭찬받는 일이 드물었다는 '늦깎이 수학 천재'다.
허 교수는 아버지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어머니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과 명예교수의 미국 유학 시절인 1983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미국 국적자이지만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뒤 초등학교와 중학교 모두 한국에서 다닌 '국내파'다.
고등학교 자퇴 후 검정고시를 본 그는 2002년 서울대학교(물리천문학부)에 입학해 졸업 후 서울대 대학원 석사(수리과학부)를 마치고 미시간대에서 박사(수학) 학위를 받았다.
필즈상 수상자 대부분이 어렸을 때부터 번뜩이는 '천재성'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과 달리 허 교수의 초등학생 때 수학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 수학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허 교수는 2017년 온라인 수학·과학전문매체 '콴타매거진' 인터뷰에서 수학을 '논리적으로 필요한 진술이 산더미처럼 쌓인 메마른 과목'이라고 봤다며 "진짜 창조적 표현을 하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습작 활동을 하며 시인을 꿈꾸던 그는 '생계유지' 방편으로 과학 기자로까지 눈을 돌리다 갑작스럽게 인생의 대전환을 맞게 된다.

학부 졸업반 때 서울대의 노벨상급 석학초청 사업으로 초빙된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91)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면서다. 히로나카 교수는 1970년 필즈상을 받은 일본의 대표적인 수학자다.
자신의 첫 번째 과학 기사 인터뷰 대상을 히로나카 교수로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의 대수기하학 강의를 수강했고, 히로나카 교수와 점심때 수시로 만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20대 중반에 본격적인 수학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허 교수의 석사과정 지도교수인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앞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히로나카 교수 수업을 수강할 것을 독려해 초기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몰렸지만, 학기가 끝날 때 허 교수를 비롯한 몇 명만 남았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히로나카 교수가 눈에 띄는 학생 하나로 허 교수를 칭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히로나카 교수는 콴타매거진 인터뷰에서 "내가 일본에 귀국했을 때도 (허 교수와) 함께 지내기도 했다"며 "호텔에서 묵을 것이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호텔을 좋아하지 않는다기에 우리 아파트 방 한 칸을 내줬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허 교수는 박사과정 1학년 때인 2012년 리드(Read) 추측을 시작으로 강한 메이슨(strong Mason) 추측, 다우링-윌슨(Dowling-Wilson) 추측 등 난제를 하나씩 증명하며 수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허 교수가 '수학계의 정점에 섰다'는 평가를 받은 건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3년이 지난 2017년이다.
다른 두 명의 수학자와 함께 로타 추측을 증명하는 데 성공한 업적을 내면서다.
수학계에서는 허 교수같이 늦게 출발한 학자가 이런 성과까지 얻은 것에 대해 '18세에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은 선수가 20세에 윔블던에서 우승한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새로운 발견을 위해 길게는 수십 년간 연구해야 하는 수학 분야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을 법한 '뜻밖의 여정'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될 수도 있었던 허 교수의 경력은 필즈상 수상으로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walde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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