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뒤 역사] 비주류 영국 총리 디즈레일리…유대인 핏줄에 고졸

입력 2022-07-23 07:07   수정 2022-07-23 14:21

[뉴스 뒤 역사] 비주류 영국 총리 디즈레일리…유대인 핏줄에 고졸
지주 중심 보수당을 중산층 아우르는 전국적 대중정당으로 혁신
보수 이념 신봉했지만 사회개혁·선거권 확대 앞장
보수당 300년 생존 비결은 디즈레일리가 보여준 '개혁하는 보수'

[※편집자 주 : '뉴스 뒤 역사'는 주요 국제뉴스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건, 장소, 인물, 예술작품 등을 찾아 소개하는 부정기 연재물입니다.]



(파리=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 영국 보수당의 기원은 맹아적 형태의 정당 정치가 시작된 17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찰스 2세의 후계자 문제 등을 두고 대립했던 양대 정파 가운데 휘그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는 정치 세력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지만 토리의 뒤를 이은 보수당은 지금도 그 이름으로 불리면서 300년 이상 집권 여당 또는 제1야당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왕정과 국교회, 귀족제 등의 구시대적 제도를 옹호하고 농촌 지역에 기반을 둔 극소수 대지주의 권익을 대변하던 정당이 대중 민주주의가 굳건히 뿌리를 내린 오늘날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보수당 역시 수많은 존폐의 위기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이를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단순한 대답일 수 있다. 그리고 별처럼 많은 보수당의 역사적 영웅들 가운데 이런 지도자 단 한 명을 들라고 한다면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를 꼽는 이가 많을 듯하다.



디즈레일리가 정치에 입문할 무렵인 1830년대부터 영국 정계는 격랑에 휩싸였고 당시 막 보수당으로 불리기 시작하던 토리의 운명은 어디로 향할지 불확실했다. 1832년 개혁법(Reform Act 1832)에 따라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유권자가 거의 배로 늘어나면서 농촌을 주된 지지기반으로 삼는 보수당에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여기에 곡물법이라는 난제가 등장했다.
곡물 수입을 규제함으로써 대지주의 이익을 보장했던 곡물법의 폐지는 산업혁명 이후 공업국으로 변신해 가던 영국에는 절실한 시대적 과제였지만 대다수 보수당 의원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디즈레일리 이전 보수당의 걸출한 지도자였던 로버트 필 당시 총리는 1846년 휘그와 손잡고 곡물법 폐지안을 통과시켰다. 아무리 명분이 정당하다고 해도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경쟁 정파의 힘을 빌려 논쟁적인 법안을 강행 처리한 데 반발이 인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곡물법 폐지 직후 치러진 선거에서 보수당은 명목상 제1당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필과 지지자들이 사실상 당에서 떨어져 나간 상태여서 총리 자리를 휘그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3년 뒤 필의 사망으로 구심점을 잃게 된 곡물법 폐지론자들 가운데 일부는 보수당으로 복귀했으나 다수는 휘그와 합쳐 자유당을 출범시켰다. 이후 영국 정치의 주도권은 자유당으로 넘어갔다.



장래가 암담해 보였던 보수당을 추스르고 다시 일으켜 세운 인물은 출신부터 당 주류와는 완전히 이질적인 디즈레일리였다. 필 역시 귀족은 아니었지만 이미 영국에서 상층 계급으로 편입되고 있던 자본가 집안 출신이었고 명문 기숙학교 해로 스쿨과 옥스퍼드 대학을 나오는 등 교육적 배경이나 정치인으로서 이력은 보수당 주류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할아버지 대에 영국에 정착한 유대인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디즈레일리는 명문 기숙학교를 다니지도 않았고 대학은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당시 영국에서 유대인은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의원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정치적 제약이 심했다. 디즈레일리는 아버지가 유대교계와 분쟁 끝에 다니던 시나고그(유대교회당)에서 떠난 까닭에 13세 때 국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우연한 사건이 자칫하면 정계에 발도 들여놓지 못할 뻔한 디즈레일리의 인생 행로를 크게 바꾼 셈이다.
디즈레일리는 젊어서 변호사 수업을 받기도 했으나 곧 중도 포기하고 소설을 써서 이름을 얻었다. 정치에 뜻을 두고 여러 차례 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번번이 낙선하다 1837년 하원 의원에 처음으로 당선됐다. 디즈레일리는 곡물법 폐지들 둘러싼 보수당 내분 과정에서 보호무역주의자 그룹의 중심으로 부상했으나 오래도록 정부에서 요직을 맡을 기회는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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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유당이 선거권 확대를 둘러싼 분열로 실각한 뒤 1868년 빅토리아 여왕에 의해 소수파 정부를 이끌 총리로 지명됐다. 소수당의 한계로 인해 그의 집권은 1년을 채 넘기지 못했지만 이후에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13년 동안 보수당의 당수직은 굳건히 지켰다. 1874년에는 자신의 주도 치러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어 총리에 복귀했고 6년 동안 정부를 이끌었다.
중산층 출신답지 않게 디즈레일리는 상공업자와 중산층을 불신했고 토지를 가진 귀족이 나라를 이끌 책무를 지닌다고 봤으며 제국의 일체감과 애국심을 신조로 삼았다. 영락없는 보수주의자였으나 그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과감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특히 노동자의 권익 옹호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정책 개발에 주력했다. 이는 지배 계급이 이들 계층을 따뜻이 품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보수주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일련의 정치 개혁으로 유권자 수가 크게 늘어나고 도시 지역의 의석 비중이 확대된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디즈레일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아동 노동이나 도시 위생, 노동조합의 권리 등 주요 사회 현안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입법 활동을 펼쳤다. 중산층과 노동자들은 보수당의 이러한 노력을 보면서 신뢰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1874년 총선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보수당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해 원하기만 하면 자유무역 등 자유당의 정책을 뒤집을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이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디즈레일리는 또 하나의 거스를 수 없는 조류인 선거권의 확대에 관해서도 적극적인 입장이었다. 이 문제를 둘러싼 당 내분으로 자유당 정부가 붕괴하자 디즈레일리는 보수당 소수정부의 각료로서 당초 자유당이 제안했던 것보다 더 폭넓은 선거권 확대를 담은 1867 개혁법(Reform Act 1867)의 입안과 의회 통과를 주도했다. 물론 이런 행보에는 다음 선거 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재산과 관계없이 누구나 선거권을 갖는 것이 역사적 당위라는 확신이 없이 단순히 정치공학적 셈법으로만 이런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디즈레일리는 새로운 정치 환경에 맞게 당 조직도 혁신했다. 효율적으로 유권자를 관리하고 선거운동을 진행하기 위해 지역 당 조직과 전국연맹, 중앙사무국 등 지금도 보수당의 근간 역할을 하는 기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이러한 외연 확대와 당 체제의 정비를 통해 보수당은 비로소 근대적 대중 정당, 전국 정당의 면모를 갖출 수 있었다. 디즈레일리의 '피'는 보수당 주류와 너무나 달랐으나 그의 이념은 지극히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 과제에 직면했을 때 그는 전혀 보수적이지 않았다.
영국의 다음 총리가 될 보수당 대표 경선 최종 후보 두 사람이 모두 유색인종 또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비주류 출신 디즈레일리를 떠오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보수당의 중흥과 개혁을 이끌어야 할 차기 총리 겸 당 대표가 닮아야 할 것은 디즈레일리의 출신 배경이 아니라 필요할 때 개혁을 주저하지 않겠다는 그의 자세다. 이런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지가 갈림길에 선 보수당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cwhy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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