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바닥에 구멍난듯 물없어져"…튀르키예 최대 소금호수

입력 2022-08-22 08:02   수정 2022-08-28 17:49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바닥에 구멍난듯 물없어져"…튀르키예 최대 소금호수
한때 '꿈의 도시'로 불려…서울 6배 내륙호 완호수 가뭄에 말라붙고 썩어가
3년 새 광활한 면적 초지화…물가 곳곳에 검붉은 웅덩이와 오염된 거품
어족 자원 감소에 생계 어려워져 고향 등지는 주민도

[※ 편집자 주 =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의 수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특파원망을 가동해 세계 곳곳을 할퀴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기후재앙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현장을 취재한 특파원 리포트를 연중기획으로 연재합니다.]

(완[튀르키예 완주]=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튀르키예(터키) 완 호수는 청명한 하늘 아래 은빛으로 빛나는 잔잔한 물결 옆으로 초지가 광활히 펼쳐져 끝없는 푸른색의 연속이었다.
튀르키예 동쪽 국경의 쿠르드족이 바다처럼 넓은 이 소금호수와 푸른 풍경 때문에 완을 '꿈의 도시'로 부른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완 호수가 면적이 무려 3천700㎢로 서울의 6배, 제주도의 2배에 달하는 거대한 내륙호이자, 80만 년간 켜켜이 쌓인 퇴적물로 기후학자의 성지로 불린다는 설명까지 접하고 보니 경외심마저 들었다.


◇ 쩍쩍 갈라진 바닥 옆에는 초록색 이끼와 썩은 악취
그러나 완 호수는 하늘에서와 땅에서의 모습이, 땅에서도 멀리서와 가까이에서의 모습이 확연히 달랐다. 아름다운 풍광 뒤로 심각한 중병의 증상이 다가갈수록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공항에서 차를 달려 도착한 완 항구는 완 호수의 관문이지만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이 한산했다.
차 문을 열자 해발 1천600m의 고지대가 무색하게 30도에 달하는 후끈한 공기와 함께 비린 냄새가 밀려들었다. 소금 호수의 특성상 날 수 있는 바다 냄새와는 확연히 다른 악취였다.
호수로 가까이 가자 물이 빠진 둑은 2m 높이의 담벼락처럼 보였고, 선착장은 앙상한 나무 기둥만 남아 있었다.
호수 가장자리에서부터 축구장보다 넓은 땅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절반은 말라서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얕게 고인 물이 이끼와 함께 녹색으로 썩어가고 있었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물가에는 누런 거품이 빽빽했다.
완 항구의 이런 낯선 모습은 불과 1년 만에 생긴 변화라고 한다.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스멧 테미즈에르는 "10년 전에 여기 자리 잡은 뒤로 물이 이렇게 낮아진 것은 처음"이라며 "원래는 비가 오면 물이 넘치던 곳인데 작년 여름부터 비가 안 오더니 이렇게 돼 버렸다"고 말했다.
옆의 고깃배를 개조한 식당은 원래 물에 뜬 채로 영업을 했는데, 지금은 뭍으로 끌어 올려져 가건물 신세가 됐다. 이 식당 종업원 세르벳 세이한은 "물이 낮아지고 배가 손상되면서 더는 둑 옆에서 장사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물이 없어진 호수에서 놀이용 오리배 장사가 잘 될 리 없다.
오리배 주인 테오만 잔틀르는 "이곳의 물이 피부에 좋다고 소문 났는데 이제는 물이 마르고 악취가 나니까 손님이 오지 않는다"며 "예년 같았으면 하루에 50명은 찾았지만 오늘은 단 한명도 없다"고 했다.


◇ 물놀이터가 초지로 변해…물고기 사라지자 파리떼 창궐
현지 완 위준즈을 대학(YYU) 연구원이자 사진작가인 페르젠데 조샤르는 과거 인근 주민들이 여름마다 즐겨 찾는 물놀이장이었던 곳으로 안내했다.
도착한 곳은 인적이 아예 없는 황량한 풀밭이었다. 차 문을 열자 이번에는 파리 떼가 새까맣게 들이닥쳤다.
조샤르는 "원래는 물고기가 벌레를 잡아먹으면서 개체 수가 유지됐는데 물과 함께 물고기가 사라지면서 벌레가 크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파리떼를 헤치고 물가로 다가가는 길은 풀이 자라 애초 물이 있었던 곳인지도 의심스러울 만큼 이미 육지화가 상당히 진행돼 있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진흙처럼 질퍽한 땅이 나왔고 물가에는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인 웅덩이가 여럿 있었다. 이들은 퇴적물 탓이라고는 보기 힘든 검붉은 색의 물에 거품이 둥둥 떠 있을 정도로 오염이 심각했다.
새들이 먹을 것을 찾느라 분주했지만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먹이를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물가까지 100m 남짓 걷는 동안 새 사체 5구가 눈에 띄었다.
조샤르는 "예전에는 이곳을 찾는 새가 400~500종에 달했는데 이제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며 "전에 쉽게 볼 수 있었던 홍학도 이제는 안 보인다"고 말했다.


◇ 수심 10m 호수가 3년 만에 평야로…"호수바닥에 구멍 난 듯 물 없어져"
완 호수 북쪽의 셀축루 공원묘지는 넓은 초지 한가운데 언덕 위에 있었다.
"3년 전만 해도 원래 섬이었습니다."
조샤르의 말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도로와 전봇대가 묘지로 이어졌고 주변에서는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이제는 많은 이가 전망을 감상하기 위해 찾는다는 이곳 언덕을 오르자 사방으로 드넓은 초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청량한 풍경에 가슴이 뚫리는 느낌도 잠시, 그 넓은 땅이 원래 모두 호수 바닥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언덕을 중심으로 족히 5, 6㎞는 넘게 펼쳐진 광활한 땅이 불과 3, 4년 전에 호수였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에 이곳 주민 파룩 첼릭도 이 언덕이 과거에는 수심 10m에 달하는 호수였다고 거들었다.
"45년 토박이로 사는 동안 과거에도 물이 줄었다 늘었다 한 적이 있었지만 최근 수년처럼 이렇게 물이 많이 준 적은 없었어요. 호수 바닥에 구멍이 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물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와 함께 들어선 초지는 멀리서 본 아름다운 풍광과는 전혀 다르게 삭막했다.
물이 마른 땅은 모래 아니면 진 땅이었고, 소가 뜯지 않은 곳에는 사람 키보다 훨씬 큰 풀이 솟아있었다.
소들이 지나간 곳에는 배설물과 파리떼가 끊이지 않았고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 완 호수 증발량이 강수량 3배…튀르키예 호수 60%가 고갈 위기
오랜 기간 이곳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3만 명에 달하는 주민의 삶도 호수만큼이나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첼릭도 과거 어부였지만 어족 자원 감소로 어획이 제한되자 이제는 그물을 내려놓고 학교 사무원이 됐다.
함께 배를 탔던 주변 지인들은 아예 고향을 떠나거나 건축업이나 자영업 등으로 전업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튀르키예 전체 어획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완 호수의 어족 자원 감소는 전체 수산업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이곳 기후의 안정성 유지에 큰 역할을 해 온 호수가 말라가면서 주변 기후 변화를 가속하는 악순환도 우려된다.
특히 이런 상황이 일시적이고 국지적 현상이 아니라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완 호수를 포함한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의 강수량은 평년 대비 39% 줄어 다른 지역보다 감소 폭이 훨씬 컸다.
완 호수의 연간 평균 강수량은 500~600㎜인데, 최근 수년간 증발량은 1천500㎜다.
여기에 튀르키예의 전체 호수 300여 개 중 60%가 고갈 위기에 처해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무스타파 아크쿠쉬 완 위준즈을 대학 교수는 온라인 인터뷰에서 "튀르키예가 지중해성 기후에서 건조 기후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현재와 같은 과정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어업과 농업, 관광업 등 모든 측면에 걸쳐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jos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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