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현장을 가다] 가장 건조한 곳 美데스밸리서 만난 '홍수' 경고판

입력 2022-08-30 08:02   수정 2022-08-30 08:14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가장 건조한 곳 美데스밸리서 만난 '홍수' 경고판
3주전 '1천년만'의 집중호우 강타…진입 국도 3곳중 2곳 아직도 폐쇄
"데스밸리 더 뜨거워져…강수 패턴 바뀔 수도"

[※ 편집자 주 =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의 수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특파원망을 가동해 세계 곳곳을 할퀴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기후재앙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현장을 취재한 특파원 리포트를 연중기획으로 연재합니다.]



(데스밸리=연합뉴스) 김태종 특파원 = '가장 뜨겁고, 건조하고, 낮은 국립공원'
미국 국립공원공단의 홈페이지는 이곳을 이렇게 한 줄로 소개했다.
이름은 더욱더 직관적이다. '데스밸리'(Death Valley), 죽음의 계곡이다.
이런 곳에서 마주친 노란색의 '돌발홍수'(flash flood) 경고판은 반어법을 즐겨쓰는 미국식 유머인가 싶을 만큼 모순적이었다.
국립공원공단의 소개대로 이곳은 여름이 되면 섭씨 50도가 넘는 기록을 세우며 전세계에서 '죽을만큼 더운 곳'의 대명사가 됐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주에 걸친 모하비 사막에 속해 여름철 습도가 낮아 고온 건조해 건식 사우나와 같은 기후다.
24일(현지시간) 낮 이곳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뜨겁고 마른 공기가 폐 속으로 훅 빨려 들어왔다. 온도계는 여지없이 섭씨 48도를 찍었다. 태양빛은 질량이 없을 텐데도 그 '압력'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지구상 최고 기온'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지만 3주 전엔 전혀 다른 뉴스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5일 데스밸리의 퍼니스 크리크에 37.1㎜의 비가 한꺼번에 내렸기 때문이다. 절대량으론 얼마 안 되는 양이지만 데스밸리의 연 평균 강수량(49.7㎜)을 감안하면 1년 치 내릴 비의 75%가 몇 시간 만에 온 것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은 '1천년에 한 번 일어날 사건'이라고 기록했다.
홍수 경고판이 유머가 아닌 '실화'였던 셈이다. 가장 건조하다는 곳에서 만난 홍수 경고판이라니….



물 한방울 남김없이 모두 말려버릴 것 같은 이날 날씨 속에 불과 3주전 이곳이 홍수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지만 여전한 수해의 흔적이 그날을 증명하고 있었다.
데스밸리 국립공원으로 이어진 127번이나 374번, 190번 국도 중 190번만 최근에 통행이 재개됐다.
특히 가파른 산과 인접한 374번을 통한 진입로의 피해가 컸다. 비가 오자 산에서 토사가 쏟아져 내려 도로를 덮친 탓이다. 도로 통제로 취재 일정을 몇 차례 미루다 190번 국도가 어느 정도 재개돼 데스밸리 안쪽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된 뒤에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홍수 경고판은 홍수가 났던 곳인 만큼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실제 포장도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걷기가 힘들 정도로 질퍽거려 신발이 흙에 파묻혔다.
차도 좌우로는 도로 옆으로는 길게는 폭이 20m 이상 되는 '물길'이 생겼고, 길과 차도 사이에는 중장비로 일부러 깎아낸 듯 층이 만들어져 있었다. 집중 호우로 순식간에 불어난 물이 도로 주변의 흙과 자갈을 휩쓸고 갔기 때문이다.

데스밸리 지역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자마자 도로 복구에 투입된 불도저 여러 대를 볼 수 있었다.
운전자 존 스미스 씨는 "며칠 전만 해도 도로가 흙으로 완전히 덮여 있었다"며 "도로 곳곳이 아직 완전하지 않아서 마지막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복구 작업에 동원된 불도저는 데스밸리 내에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비포장도로는 대부분 들어가는 것 자체가 금지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포장도로도 어느 지점부터는 형체가 없어지면서 '도로 폐쇄'(ROAD CLOSED) 팻말이 길을 가로막았다.
진입로를 지나 데스밸리 깊숙이 들어갈수록 홍수의 흔적은 더 선명했다.
5일 퍼니스 크릭에서 기록된 강수량 37.1㎜는 1911년 기상 관측 시작 이후 두 번째 기록이다. 1988년 4월 15일에는 37.7㎜가 내렸다.
34년 전엔 온종일 비가 내렸지만 이번 비는 단 3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내려 데스밸리에 준 피해는 더 컸다. 경고판에 쓰인 '돌발 홍수'라는 용어는 이번 처럼 비가 예고없이, 좁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린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데스밸리 인근에 사는 저미 월터 씨는 "정말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다. 그렇게 많이 오는 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막 협곡인 데스밸리는 길이만 약 220㎞, 너비는 6~25㎞에 달해 제주도의 7배 크기와 맞먹는다.



도로를 떠받치는 철조망은 강한 물살에 힘없이 무너져 있었다. 밑으로는 자갈이 씻겨져 내려가는 바람에 기둥을 더는 지탱하지 못했고, 위로는 범람하는 물살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였다.
폭우는 산도 할퀴고 지나갔다. 오랫동안 산 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바위를 덮은 흙과 자갈이 이번 홍수에 씻겨나가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데스밸리 내 자브리스키의 산등성이 사이로 보이는 물길은 짙은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자브리스키는 수억 년 전에는 바닷속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물은 없어지고 퇴적물은 침식과 풍화 등으로 산등성이 모습을 띠는 지형이 됐다.
그런데 이번 홍수로 산 위의 흙과 자갈이 휩쓸려 내려가면서 더 검게 변한 것이다.
이례적 '폭우'라고는 하지만 40㎜도 채 되지 않는 비에 이렇게 큰 피해와 변화가 생긴 것을 두고 여러 가설이 나온다.

땅이 너무 건조해져 흡수력이 떨어진 탓에 약간의 집중호우에도 홍수가 났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고, 워낙 비가 드문 곳이어서 도로의 배수 시설이 아예 없는 탓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데스밸리의 해발고도가 낮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이번 홍수의 원인인 집중호우에 대해선 이상기후라는 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데스밸리는 최근 이상기후의 조짐이 자주 감지되고 있어서다.
지난해 7월에는 기온이 54.4도를 기록해 1913년 이 지역 최고 기온인 56.7도에 근접하기도 했다.
니콜 앤들러 미 국립공원 대변인은 "데스 밸리의 기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면서도 "점점 더 뜨거워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기의 기온이 높아지면 그만큼 수증기를 더 많이 품을 수 있고, 이런 환경이 계속되면 국지적인 집중호우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게 기후학자들의 추정이다.
앤들러 대변인은 "지구상에서 이미 가장 뜨거운 곳의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강수 패턴이 바뀔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에 내린 1천년 만의 폭우가 앞으론 500년, 100년으로 주기가 점점 짧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taejong75@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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